(평양 10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8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 《피에 절은 죄악의 력사를 고발하는 <을미사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114년전인 1895년 10월 8일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력사에 씻을수 없는 죄악을 남긴 날이다.
바로 이날 날강도 일제는 총칼을 빼들고 리조봉건국가의 왕궁을 습격하여 26대왕인 고종의 처 민비를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1895년이 을미년이라고 하여 일명 《을미사변》이라고도 하는 이 범죄사건은 일제야말로 우리 인민의 백년숙적이며 국제법도 인륜도덕도 모르는 포악무도한 살인마이라는것을 세상에 명백히 고발해주고있다.
민비살해사건은 철두철미 일제의 조선침략정책에 따라 계획되고 집행된 야만적인 범죄사건이였다. 19세기말 우리 나라는 리조봉건통치배들의 극심한 외세의존정책에 의해 렬강들의 첨예한 각축전장으로 전변되였다. 일제는 당시 청일전쟁의 결과 조선에서 청나라세력을 밀어내고 우리 나라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확립할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마련했으나 일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시기 우리 나라에서는 갑오농민전쟁을 비롯한 여러 계기들을 통하여 반일감정이 날로 높아가고 그에 따라 반일투쟁이 강화되고있었다.
한편 정세흐름의 변화를 타고 짜리로씨야가 리조봉건정부의 실제적인 권력자였던 민비와 결탁하여 우리 나라에 세력권을 뻗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에 들떠있던 일제에게 있어서 큰 타격으로 되였다.
당시 로씨야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고 하는 민비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일제는 민비를 제거하기 위한 본격적인 범죄적흉계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그 조치의 일환으로 일제는 군국주의일본에서도 가장 음흉하고 악착하기로 소문난 군벌출신인 미우라를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임명하여 우리 나라에 파견하였다. 륙군중장이였던 미우라를 이노우에 대신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파견한 일제의 목적은 조선에서 득세하고있던 친로세력을 군사적힘으로 밀어내고 친일세력을 되살려 우리 나라에 대한 정치적지배를 실현하자는데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조선봉건정부를 가로타고앉을데 대한 비밀훈령을 받고 서울에 기여든 미우라는 한달동안이나 우리 나라의 정치정세를 내탐하고나서 흉악한 음모를 꾸미였다. 그 음모가 바로 저들이 조선강점정책의 《화근》으로 주목한 민비를 살해하는것이였다. 미우라가 《왕비를 제거하지 않으면 이 나라(조선)에서의 우리의 세력은 몇달도 못 가서 깨끗이 사라질것》이라고 줴친것만 놓고보아도 일제가 이 사건조작을 얼마나 중요시하고 또 절실한 문제로 여기였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1895년 10월 3일 서울주재 일본공사관 밀실에서는 악명높은 미우라의 주관하에 서기관, 조선정부의 궁내부《고문》, 공사관 무관 등 일제의 살인두목들이 모여 구체적인 민비살해계획을 면밀히 준비하고 토의결정하였다.그 결정은 다음과 같다.
《1)국왕측근자들중에 간신들을 제거하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는다. 2)대원군을 추대하고 왕궁에 들어가 민비를 살해한다. 3)〈훈련대〉를 표면에 내세움으로써 그들이 <정변>을 일으킨것으로 한다. 4)행동대의 정면에는 일본민간인이 나서고 일본군대는 그들의 행동을 엄호하고 전투의 주력을 담당한다. 5)대원군호위의 별동대로서는 경찰이 담당한다.》
보는바와 같이 이 계획은 민비의 적수였던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을 정치적희생물로 리용하여 민비를 살해하고 그것을 조선의 《내부정변》으로 꾸밈으로써 내외민심의 반항을 무마시키고 이 류혈참극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제의 교활한 모략이였다.그러나 일제가 제아무리 발뺌하려고 획책하였어도 민비살해사건계획의 직접적인 작성자, 집행자로서의 죄행은 결코 감출수 없었다.
이 비밀모의에서 민비살해사건의 날자를 10월 8일 새벽으로 결정한것도 일리가 있었다. 그것은 리조봉건정부가 일제에 의하여 조직된 《훈련대》를 해산시키고 10월 8일부터 무장해제시킬 계획이라는것을 일제가 사전에 내탐하고있은것과 관련된다.민비살해사건의 총알받이로 나서야 할 《훈련대》가 해산되면 저들의 음모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다는것을 일제가 모를리 없었다.
드디여 1895년 10월 8일 미우라의 총지휘밑에 피비린 민비살해극의 막이 올랐다.이날 이른새벽 일본군대, 경찰, 민간인깡패 등으로 무어진 살인무리들이 살기를 번뜩이며 고요한 서울의 거리를 무섭게 내달렸다. 경복궁의 광화문에 다달은 그들은 왕궁을 지키고있던 시위대와 총격전을 벌려 시위대 련대장을 사살하였으며 이미 준비한 사다리로 담장을 넘어 성문을 열어제끼고 국왕과 왕비가 거처하고있던 건청궁을 포위하였다.
일제살인마들은 국왕에게 왕비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다가 저들이 직접 민비를 찾기 위해 침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민비의 얼굴을 알수 없었던 악당들은 궁녀들이 있는 방문을 닥치는대로 짓부시고 들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하는 그들의 머리태를 잡아끌고 대청마루에 내다가 마구 죽이였다.
왕궁은 삽시에 일제날강도들의 살인, 파괴, 략탈의 란무장으로 변하였다. 살인깡패들에 의해 민비도 수많은 궁녀들과 함께 칼에 맞아 쓰러졌다. 그야말로 왕궁안은 피바다로 되였다.
일제의 죄행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일제깡패무리들은 40대의 녀성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민비를 재확인하자 숨이 채 지지 않은 그를 이불로 둘둘 감싸 미리 준비하여놓은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불태워버리였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다 타버린 민비의 유골마저 못속에 집어던지였다. 민비살해사건에 직접 관여한 일본인 기꾸찌는 후에 자기의 수기에서 《선혈로 물든 민비의 시체에는 석유가 뿌려지고 불이 달렸다. 순식간에 시체는 화염에 싸여 이상한 냄새를 풍기였으며 참으로 귀곡추추(귀신도 서글프게 운다는 뜻)하였다.》라고 고백하였다.
《을미사변》조작의 원흉인 일본공사 미우라는 저들의 목적을 달성하자 《이것으로써 조선은 드디여 일본의것으로 되였다.》라고 뻔뻔스럽게 뇌까렸다. 주권국가의 상징으로 가장 신성시되고있는 왕궁안에서 그것도 왕비의 침실에까지 뛰여들어 당시 우리 나라 국가권력의 대표자의 한 사람인 민비를 무참히 학살한 일제살인귀들의 죄행은 력사에 보기 드문 불법무도한 반인륜적행위였으며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조직적으로, 강도적으로 침해한 특대형의 반민족적, 반국가적범죄였다.
일제는 야수적방법으로 민비를 학살하였을뿐아니라 이 사건의 진상을 은페하는데서도 날강도적인 파렴치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였다. 당시 일제는 범죄행위의 증인들과 흔적들을 없애버리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일제는 민비살해사건의 모든 책임을 대원군과 《훈련대》에 넘겨씌우고 저들은 다만 《국왕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출동하였을뿐이라고 내외여론을 기만하였다. 그러나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듯이 일제의 피비린내나는 살륙만행은 사건당일로 온 서울장안과 서울주재 각 외교대표부들에 퍼져나갔다.
짜리로씨야공사는 10월 9일 자기 나라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서에 《…나는 이번 사건이 세계력사에서 류례가 없는 범죄적인 사건이라는것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평화시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 군대와 지어는 공관의 비호와 지도밑에 무리를 지어 남의 궁성에 몰려들어가 왕비를 죽여 불사르고 이외에도 온갖 비렬한 살인행위와 폭행을 감행하고도 만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기가 한짓을 부정하는 철면피한 행동은 아직까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을것이다.》라고 썼다.
일제가 감행한 민비살해사건은 점차 국제적문제로 번져졌으며 세계도처에서 일제를 규탄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일제는 짜리로씨야와의 정면충돌을 막고 나아가서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적지반을 더욱 확대강화할 목적밑에 일본외무성 고위관리였던 고무라를 우두머리로 하는 《조사단》을 서울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진상조사》과정을 통하여 민비살해만행의 주모자인 미우라를 조선주재 일본공사직에서 소환시키고 사건관계자 수십명을 우리 나라에서 빼내여 히로시마감옥에 림시《구금》하는 기만적인 놀음을 벌리였다. 그후 1896년 1월에는 《증거불명》의 리유로 그들전원을 《무죄석방》하였다.
민비살해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렇다. 이 모든것은 《을미사변》의 주범이 다름아닌 일본정부이며 전대미문의 이 테로사건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독점적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침략의 전주곡이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을미사변》이 일어난 때로부터 한세기가 훨씬 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본반동들은 이 범죄사건의 진상을 영원히 흑막속에 묻어버리려고 어리석게 책동하고있다.일제에 의해 감행된 불법무도한 조선왕비살해범죄는 그 무엇으로써도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일본이 피로 얼룩진 과거 조선침략사를 외곡하며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책동을 악랄하게 벌릴수록 우리 인민의 대일적개심은 더욱더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다.
일본은 우리 인민의 대일감정과 민족자주정신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 인민은 세기를 이어 우리 민족앞에 저지른 일본의 과거죄악을 반드시 결산하고야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