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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비핵국가>의 허울을 쓴 <핵독수리>》
(평양 1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28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비핵국가>의 허울을 쓴 <핵독수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일본은 《비핵국가》를 표방해왔다.그들은 핵무기의 반입, 제조, 보유를 금지하는 이른바 《비핵3원칙》을 《국시》로 내세웠으며 《반핵평화》에 대해 곧잘 운운하였다.일본은 저들이 세계에서 유일한 핵피해국으로서 《핵을 증오한다.》고 하면서 목청을 돋구어 《핵무기반대》를 떠들어댔다. 이로 하여 일본은 표면상 《비핵국가》로 인정받았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일본수상으로 있은 사또는 《비핵3원칙》을 내놓고 《핵무기를 반대하고 평화에 기여》한것으로 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여받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반핵평화》타령은 완전히 거꾸로 된것이였다. 실지로 일본은 용납될수 없는 핵문제를 안고 세계평화에 도전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여왔다.

일련의 사실들이 그것을 립증하여주고있다.

일본이 지금까지 《비핵국가》로서 《핵무기를 반대하고 평화에 기여》하였다고 하는 주되는 근거는 《비핵3원칙》이다. 그들은 《비핵3원칙》을 《비핵국가》의 지참품으로 내들고 《반핵평화》를 광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겉치레에 불과하였다.《 비핵3원칙》은 어느것 하나 실천된것이 없다. 일본의 《비핵3원칙》은 세계의 눈을 속이고 핵야망을 품은 저들의 범죄적정체를 은페하기 위한 병풍이였다.

일본은 체계적으로, 계통적으로 미국의 핵무기반입을 허용해왔다. 일본은 이미 미국이 자국령토에 핵무기를 끌어들일 때에는 사전에 저들과 《협의》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일본은 이 《사전협의제》에 따라 일본에 들어오는 미군함선들에 핵무기가 있는가 없는가를 단 한번도 확인해본적이 없다. 그들은 미군함선들에 핵무기가 있어도 미국이 《없다.》고 하면 그대로 인정하였다. 미국은 아무런 제한도 받음이 없이 핵무기를 실은 함선과 비행기를 때없이 일본에 들이밀었다.

1960년 일본과 미국은 《일미안보조약》개정시 극동《유사시》에 대처한 미군의 핵무기탑재함선의 일본기항과 령해통과는 《사전협의》대상에서 제외시켰다.이 밀약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묵인밑에 핵무기를 일본에 계속 반입하여 비축하였으며 그것은 동북아시아지역에 엄중한 핵위협을 조성하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일본은 시치미를 떼고 미국과의 핵밀약을 부인하면서 《비핵3원칙》을 계속 내흔들었다.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행동은 겉과 속이 다른 그들의 철면피성과 허위기만성만을 보여주었다.지난 시기 일미사이에 있은 핵밀약은 계속 드러나고있다.

얼마전 전 일본수상 사또의 집에서 미국의 대일핵무기반입에 관한 일미밀약을 확증해주는 문서가 발견되였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붕》이 전한데 의하면 전 일본수상 사또와 전 미국대통령 닉슨의 서명이 있는 극비핵문서에는 미국이 《중대한 긴급사태》에 대비하여 일본의 오끼나와에 핵무기를 반입하며 핵무기저장고를 언제든지 사용할수 있는 상태로 유지해둘 필요가 있다고 명백히 기록되여있다고 한다.

일본의 《니홍게이자이신붕》 2009년 12월 27일부는 《핵을 탑재한 미항공모함의 모항정박 등을 허용하는 밀약, <미드웨이>호 <사전협의>의 대상밖》이라는 제목밑에 1973년에 미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요꼬스까항을 주요기지로 삼고있을 때 핵무기를 탑재하고 기항 및 정박하는 경우에도 《일미안보조약》의 《사전협의》의 대상밖으로 한다는 밀약을 일미 두 나라가 하였다는것을 폭로하였다.

지난해 9월 지난 시기 일본의 외교정책을 작성하는데 관여하였던 한 이전 고위관리는 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핵무기를 탑재한 미군함선의 일본령해통과와 기항을 묵인하기로 한 밀약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지금도 외교적으로 유효하다는 견해를 표시하면서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의 보호를 받는 이상 그러한 약속을 하는것은 불가피하였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사실들은 일미사이의 핵밀약의 내막을 까밝혀주는 극히 일부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은 《비핵3원칙》의 간판밑에 핵무장화의 길을 열어놓고 그것을 다그쳐왔다.

력대 일본집권계층들속에서는 핵무기보유를 합법화, 정책화하기 위한 망발들이 끊임없이 튀여나왔다.

전 일본수상 사또는 1965년 1월 미국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일본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그는 《비핵3원칙》을 내놓은 후인 1969년 6월 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비핵3원칙>이라는것은 정책이 변하거나 내각이 바뀌거나 하면 언제나 변경될수 있다.》고 거리낌없이 말하였다.이것은 결국 《비핵3원칙》이 한갖 허울에 불과하며 언제든지 핵무장을 하겠다는것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이러한 망발들은 일본의 력대 자민당집권자들속에서 계속 울려나왔다.

1978년 3월 당시 일본수상 후꾸다는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나라의 무장력을 핵무기로 장비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할수도 있다.》고 로골적으로 줴치였다.1980년대에 수상을 하면서 군국주의부활바람을 일구는데 앞장섰던 나까소네는 여러차례에 걸쳐 핵무기보유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지어 핵무기보유는 헌법에 부합된다는 망언까지 하였다.

1990년대에도 일본집권자들은 핵무장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면서 일본은 핵무기를 보유할 능력이 있다고 공언하였다. 그런가 하면 2002년에 일본집권계층들은 핵무장화를 극구 제창하는 여론깜빠니야를 벌리였다. 당시 일본의 한 고위관리는 기자회견에서 《<전수방위>라면 핵무기를 가질수 있다. 가져서는 안된다는 리유는 없다.》고 뻐젓이 떠벌이였다. 이보다 앞서 내각관방부장관이였던 아베는 비공개강연에서 《소형이라면 원자탄의 보유도 문제가 없다.》고 줴쳤다.

일본반동계층들은 말로만 핵무장화에 대해 떠든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책동에 기를 쓰고 매달리였다.

일본은 1967년부터 1970년에 걸쳐 핵무장가능성을 모색하는 극비연구를 진행하였는데 그것은 내각 정보조사실이 국내의 주요국제정치학자들에게 위탁하여 벌린 《일본의 핵정책에 관한 기초연구》였다. 그들은 1995년부터는 핵무장화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였다. 당시 일본정부는 방위청의 전문가들에게 랭전종식의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여 일본의 핵무장문제를 연구하도록 지시하였다.

일본은 핵무장을 위한 물질적준비도 착실히 추진시켜왔다. 그들은 플루토니움확보를 위해 국내에서 첫 고속증식원자로인 《몬쥬》를 가동시켰다. 일본은 농축, 재처리, 저축의 핵물질처리체계를 완전히 갖추기 위해 아오모리현의 록가쇼무라에 새로운 우라니움농축공장을 건설하여 가동시켜오고있다. 이것들은 다 핵무장화를 위한것이다.

2002년 4월 일본자유당 당수가 한 강연에서 《우리가 핵탄두를 생산하는것은 쉬운 일이다. 우리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들에는 수천개의 핵탄두를 제조할수 있는 충분한 량의 플루토니움이 있다.》고 말한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일본은 프랑스, 영국 등 유럽나라들에서도 플루토니움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저축해오고있다.벌써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본은 비밀리에 영국으로부터 10여차례에 걸쳐 재처리하여 나온 1t이상의 플루토니움을 운반해왔다.

1992년 11월부터 1993년 1월초까지는 수송선 《아까쯔끼마루》를 리용하여 프랑스로부터 대규모적이며 련속적인 플루토니움수송을 진행하였다.그후에도 일본의 플루토니움확보는 계속되였다.

1999년 9월에 공개된 주일미국대사관의 비밀문서에는 《현재 일본이 핵무기 4,000개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니움을 보유하고있다.》는 내용이 서술되여있다.일본은 올해까지 100t의 플루토니움을 확보할것을 계획하고있는데 이것은 미국과 로씨야의 핵탄두를 합친것보다 더 많은 핵탄두를 만들수 있는 량이라고 한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플루토니움을 보유하고있다.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때든 짧은 기간에 많은 핵무기를 제작, 보유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놓고있다.

이미전에 미중앙정보국은 일본의 핵무기보유가능성에 대해 인정한바 있다.

최근시기 일미핵밀약의 흑막이 줄줄이 드러남으로써 일본이 지금까지 표방해온 《비핵국가》의 허울은 완전히 벗겨졌다.

일본은 《비핵국가》가 아니라 위험한 《핵독수리》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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