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지금으로부터 75년전인 주체24(1935)년 3월 하순 왕청현 요영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여시고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당시 정세는 참으로 엄혹하였다.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분렬와해시키려는 일제의 간교한 책동과 좌경배타주의자들,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망동으로 사납게 휘몰아친 《민생단》숙청이라는 《숙반》바람에 유격구는 큰 피해를 입었다.
뿐아니라 일제는 방대한 정예무력으로 유격구들을 겹겹이 포위하고 항일근거지의 모든 생명체들을 없애버리기 위한 《토벌》작전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었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무턱대고 《유격구사수》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혁명적인것 같지만 사실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것과 같은 무모한 행동이였다.
주석께서는 회의에서 이에 대하여 명철하게 밝히신 다음 혁명정세의 요구에 맞게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과 그 관철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들을 제시하시여 준엄한 위기를 가시고 항일혁명의 새로운 앙양기를 열어놓으시였다.
요영구회의의 정당성은 그후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전반적발전과정을 통하여 뚜렷이 확증되였다.
유격구의 주동적인 해산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은 유격구역의 협소한 범위를 벗어나 남북만주와 북부조선의 광활한 판도에서 적극적인 대소부대활동을 벌려 적들의 수적, 기술적우세를 타승해나갔다.
이 과정에 조선인민혁명군대오는 급속히 확대강화되였으며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의 국내진출이 더욱 강화되고 혁명의 불길은 넓은 지역에서 더욱 거세차게 타번지였다.
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요영구회의는 인민혁명군이 유격구역을 사수하기 위한 전략적방어로부터 전략적공격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적계기로 되였다고 쓰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