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26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말장난으로 그친 <사과>놀음이 무엇에 필요한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알려진바와 같이 얼마전 일본수상 간 나오또가 8.15와 《한일합병》 100년이 되는것을 계기로 《담화》라는것을 발표하였다. 흘러온 한세기의 력사를 돌이켜보는 담화라기보다 과거 범죄력사에 대한 평가를 내릴수 있다는데로부터 여론들은 간 나오또의 《담화》발표를 주시하였다. 그런데 그의 《담화》는 국제사회가 기대했던바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진실성이 없는 겉발림식의 말치레인것으로 하여 여론의 조소거리로 되고있다. 그것은 성근한 반성과 사죄의 립장에서 한 담화가 아니라 과거죄행을 약화시키고 그 청산을 유야무야하기 위한 기만적인 말장난에 불과하였다.
간 나오또의 《담화》는 8.15와 《한일합병》 100년이 되는것을 계기로 삼은것만큼 응당 과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끼친 죄악을 력사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원칙에서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해부학적으로 밝히고 그에 대한 일본의 진실한 조치를 취하는것으로 되여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그의 《담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론을 눅잦히고 과거죄악을 어물쩍해 넘기려는 간특하고 낯간지러운 너스레였다.
간 나오또는 《담화》에서 과거 일제의 조선침략과 지배가 누구에게 가져다준 손해와 고통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명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번에 일본의 과거범죄에 대해 《사과》라는 표현으로 굼땐 이전 일본수상 무라야마의 《담화》를 답습하는 놀음을 연출하였다. 그가 말한 《사과》(일본어표현-오와비)는 죄행이 아니라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빈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그런즉 그의 이번 《담화》는 일본의 과거죄행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반성, 사죄가 아니라 일종의 어휘유희이다.
올해는 일제의 패망 65년이 되는 해이자 《한일합병》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가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 때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에 와서 일본이 진실성이 없는 《사과》놀음을 벌리는것은 저렬하고 민망스러운 처사이다. 그것은 일본이 아직까지도 과거 일제의 조선침략죄행을 성근하게 청산하려는 립장에 있지 않다는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몇마디의 겉치레말로 과거청산을 유야무야해버리려는 낡은 사고관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간 나오또의 《담화》는 오히려 우리 인민의 커다란 불만을 자아내고있다. 우리 인민은 비록 늦은감은 있지만 일본이 이제라도 지난날의 죄과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에 따른 응당한 배상을 따라세울것을 요구하고있다. 그런데 일본수상의 《담화》는 이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간 나오또의 《담화》는 이전 일본수상 무라야마나 고이즈미의 《담화》에 비해 오히려 크게 퇴보하였다. 무라야마와 고이즈미는 1995년과 2005년의 《담화》에서 우리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나라 전반을 《사과》대상으로 하였었다. 그런데 이번 《담화》에서 간 나오또는 그 범위를 남조선에만 국한시켰다.
과거 일제는 남조선만 지배한것이 아니라 전조선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침략하고 지배하였다. 일본이 과거죄행에 대해 진정으로 사죄하려 한다면 우리 인민과 아시아인민들에게 지난날의 죄과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빌어야 하며 그와 관련한 차후대책적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와는 달리 간 나오또의 이번 《담화》는 매우 불성실하고 기만적인것이여서 사람들의 혐오감만을 자아낼뿐이다. 때문에 간 나오또의 《담화》는 발표되자마자 여론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있다. 지금 남조선사회에서도 일본수상의 이번 《담화》는 과거죄행에 대한 성근한 반성이나 사죄가 아니라 궁지에 빠진 리명박을 추어주고 저들의 더러운 정치적목적을 달성해보려는 기만극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속에 없는 겉발림의 사죄는 누구에게서도 인정을 받을수 없고 오히려 사람들의 반발과 증오심만을 자아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사죄와 반성의 진실성은 그에 대한 배상이 따라설 때만이 나타난다.그러나 그의 《담화》에서는 그러한 문구를 찾아볼수 없다. 사죄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비는 첫 조치라면 배상은 피해자에게 입힌 마음의 상처와 손실의 대가를 치르는 필수불가결한 후속조치이다. 일본이 백번 《담화》를 발표해도 과거죄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것은 한갖 빈말로만 될뿐이다. 간 나오또의 《담화》도 역시 그렇게 되였다.
일본수상의 이번 《담화》가 현실을 외면하고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한 말치장에 불과한것이라고 비난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간 나오또의 《담화》에는 과거죄행을 흑막속에 묻어버리고 그 청산을 회피하려는 흉심이 짙게 깔려있다. 이런데로부터 그는 《담화》에서 과거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 일본군위안부범죄 등 특대형반인륜범죄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것이다.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 일본군위안부범죄는 력사에 전무후무한것이다.일본이 과거 일제의 조선침략과 지배에 대해 말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이 부분이다. 조선의 청장년들은 물론 어린 소년들과 늙은이, 녀성들을 닥치는대로 랍치, 강제련행하여 대륙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또는 탄광, 광산 등 죽음의 고역장들에 내몰아 마소와 같이 부려먹다가 집단적으로 살해한 일제의 죄행은 지금도 만사람의 치를 떨게 하고있다. 한 민족의 청장년들을 모조리 끌어가다싶이 한 일제의 치떨리는 조선인강제련행만행을 과연 간 나오또가 모르거나 그 죄과가 작아서 《담화》에서 빼놓았는가. 이것은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우리 인민과 아시아인민들에 대한 또 한차례의 모독, 우롱행위로밖에 되지 않는다.가해자인 일본이 어떻게 이를 외면하고 스쳐보낼수 있겠는가.
간 나오또가 과거력사를 똑바로 보는 립장에 있다면 이번 《담화》에서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그에 대한 일본정부의 옳바른 립장을 명백히 밝혀야 했을것이다. 속에 없는 빈소리, 누구에게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겉치레말로 범죄적과거를 얼버무린 간 나오또의 《담화》는 혐오스럽기만 하다. 우리 인민은 일본수상의 《담화》에서 환멸감만을 느끼고있다.
사람은 솔직해야 하며 특히 정치가는 정치문제, 력사문제를 공정성과 과학성, 정치적예리성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너절한 기만놀음으로 40여년간에 걸치는 일제의 조선식민지지배를 어물쩍해 넘기려 하는것은 우리 인민에게 마음의 상처를 더 크게 입히는 범죄행위로 된다. 간 나오또의 《담화》는 일본의 과거죄행에 대한 성근한 반성이나 사죄가 아니라 범죄의 력사를 묻어두고 국제정치무대에 나서는데 필요한 발판을 닦기 위한 하나의 연막에 불과하다. 그는 이번 《담화》를 통해 정치도덕적으로 저렬하고 속이 트이지 못한 일본의 내면세계를 다시한번 세계에 드러내보였다.
일본은 과거죄행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 청산에 나서는것을 그토록 싫어하고있다.일본은 과거죄악을 약화시키거나 력사속에 묻어버리려는 얕은 수를 쓰지 말아야 한다.
과거청산은 일본이 어느때든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할 력사적과제이고 책임이다.이것이 없이는 조일관계가 언제 가도 개선될수 없다.
일본은 또 한번의 사기극으로 시대를 외면하고 우리 인민을 속여넘긴것으로 하여 저지르지 말아야 할 죄를 또 저질렀다.과거죄행에 대해 계속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일본은 언제 가도 세계의 조소와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날수 없다. 또한 조일관계는 악화일로만을 걷게 될것이다. 속시원히 과거죄악을 씻지 않는것은 일본으로서는 시한탄을 안고있는것만큼이나 괴로운 일로 되지 않을수 없다. 일본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겠는가. 일본에 앞날을 내다볼줄 아는 정치가가 있다면 과거 조선침략과 지배에 대한 옳바른 평가를 내리고 그를 청산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이것은 시대의 요구이자 일본의 회피할수 없는 선택이다.
일본은 세계가 저들의 과거청산태도를 지켜보고있다는것을 명심하는것이 좋을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