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9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20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반드시 계산되여야 할 일제의 날강도적인 조선침략범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일제가 《운양》호사건을 조작한지 135년이 되는 날이다. 한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인민에게 단순히 지나간 하나의 력사적사실로만 남아있지 않다.《운양》호사건은 일본제국주의의 정체와 그들이 악랄하게 감행한 조선침략력사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였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일본군국주의가 세상에 생겨나면서부터 들고나온 《정한론》이 강도적인 조선침략교리였다면 《운양》호사건은 그 《정한론》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 위한 로골적인 첫 시도였다.《정한론》이 일본군국주의의 호전적이고 침략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면 《운양》호사건은 일본군국주의의 날강도적인 행동방식과 야수적인 체질을 드러내보여주었다.
일본에서 《명치유신》으로 알려진 부르죠아개혁이 수행된것은 1868년이다. 일제는 그 이후 군국주의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발광하면서 《정한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미쳐날뛰였다. 그로부터 불과 7년만에 《운양》호사건이 일어났다.
침략과 략탈은 제국주의의 속성이며 제국주의나라치고 침략과 략탈을 일삼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러나 일본군국주의자들과 같이 세상에 생겨나자부터 그것도 제도적으로 매우 미숙하고 해외침략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는 처지에서 《정한론》과 같은 류례없이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침략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미쳐날뛴 실례는 제국주의의 침략력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였다. 이것은 일본군국주의의 조급하면서도 포악한 침략성을 떠나 절대로 설명할수 없다. 초기 일본자본주의는 불철저한 부르죠아개혁으로 하여 군사봉건적인 성격을 띠게 되였으며 해적질과 싸움질, 략탈을 업으로 삼은 사무라이들의 호전성과 포악성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였다.
일제는 《운양》호사건을 조작하기 전에 사전준비를 갖추었다.
1873년 가을에 이미 우리 나라에 대한 무력침공을 결정한 일제는 그후 여러척의 침략선들을 우리 나라 동남해안일대에 들이밀어 정탐과 무력시위를 감행하게 하였다. 1875년 5월에는 침략선 《운양》호를 부산에 불법침입시켜 그 무슨 《발포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를 힘으로 굴복시키려 하였다.그러나 일이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그해 9월 일제는 《항로측량》의 구실밑에 《운양》호를 우리 나라 연해에 또다시 침입시켰다.
이 시기 우리 나라에 불평등적인 조약을 강요하는것을 당면목표로 내세우고있던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운양》호의 침입으로써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해 《운양》호에 될수 있는대로 더 횡포하고 포악하게 행동할것을 지시하였다.《운양》호에 탄 침략무리들은 이 지시를 그대로 받아물고 강도적으로 행동하였다. 9월 19일 강화도앞바다에 불법침입하여 월미도일대에서 수로 등을 정찰하는 침략행위를 감행한 침략선 《운양》호는 그 다음날인 9월 20일 우리 나라 서해의 중요군사요새이며 서울을 지키는 요충지였던 초지진포대가까이로 기여들었다. 초지진의 조선수비병들은 침략자들에게 일제사격으로 세찬 불벼락을 안기였다. 이것은 불법침입한 침략자들에게 가한 응당한 징벌이였다.
애초부터 무장도발구실을 찾지 못해 발광하던 침략자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초지진포대에 맹렬한 포사격을 감행해나섰다. 초지진전투에서 패배한 침략무리는 방어시설이 약한 항산도와 영종도를 습격하여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살륙하였으며 야만적인 파괴략탈만행을 감행하였다.
이것이 바로 력사에 기록된 일제의 《운양》호사건내막이다.
그후 교활하고 파렴치한 일제는 《조선측이 일본에 대해 적대행위를 하였다.》고 생트집을 걸면서 1876년 1월 또다시 7척으로 무어진 침략함대를 강화도에 침입시키고는 불평등조약을 강요해나섰다.
일제는 무력으로 《조약》을 체결할 심산밑에 함포까지 쏘아대면서 《〈운양〉호에 끼친 손해배상을 내라.》, 《손해배상을 못하겠으면 대신 〈조약〉을 체결하자.》고 조선봉건정부를 로골적으로 위협공갈하였다. 그들은 만일 자기들의 요구가 실현되지 않으면 부득불 조선과 전쟁을 하는수밖에 없다는 최후통첩까지 하였다. 이렇게 일제는 대포와 군함에 의한 로골적인 협박, 공갈로 1876년 2월 27일 12개 조항으로 된 불법무효한 《강화도조약》을 강압적으로 조작하였다. 일제는 이 《조약》을 통해 우리 나라의 항구들을 개방하고 조선연해에 대한 측량과 해도작성권을 일본에 허용하게 하는 등 우리 나라에 침략의 검은 손을 깊숙이 뻗쳤다.
일제는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코에 걸고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깊숙이 침투하였다. 1905년 《을사5조약》을 날조하고 조선을 무력으로 가로타고앉은 일제는 40여년동안 류례없이 악랄한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 재난을 들씌웠다.
일제는 중일전쟁발발이후에만도 840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 랍치하여 중세기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였고 전쟁대포밥으로 내몰았다. 또한 100여만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살해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어다가 성노예로 만드는 천추에 용납 못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반동들은 침략적《강화도조약》에 의해 그 무슨 조선의 《자주독립》이 《보증》되였다느니, 《일본은 쇄국조선의 한 모퉁이에 개국의 서광을 비쳐주었다.》느니, 《조선은 처음으로 일본의 손에 끌려 세계를 알게 되였다.》느니 뭐니 하면서 저들의 날강도적인 과거 조선침략죄행을 미화분식하려 하고있다.
이것은 력사에 대한 파렴치한 외곡날조이며 우리 인민에 대한 용납할수 없는 모독, 우롱행위이다. 일제의 《운양》호사건과 비법적인 《강화도조약》조작은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과 야만적인 식민지폭압통치의 서막으로서 우리 인민의 의사와 국제법에 완전히 배치되는 극악한 범죄행위였다.
《운양》호사건으로부터 조선강점통치 전기간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저지른 갖은 악행은 인류력사에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지난날 일제침략자들이 수많은 조선인민을 무참히 살륙하고 우리 나라의 귀중한 재부들을 닥치는대로 략탈, 파괴하면서 조선민족말살에 미쳐날뛴 죄악은 력사에 기록되여있으며 세계가 공인하고있다.
지금 일본은 과거죄악을 감싸기 위해 로골적으로 력사외곡행위를 감행하고있으며 과거청산을 한사코 회피하고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하여 일본이 과거청산책임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일본의 과거청산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일제가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군사적으로 가로타고앉아 감행한 모든 죄악은 무조건 계산되고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어느때든 일본의 과거죄악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