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23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더욱 드러난 <평화국가>의 핵야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최근 일본이 수십년전부터 핵야심을 품고 그것을 극비밀리에 추진시켜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외신보도에 의하면 일본정부가 1964년에 《일본이 어느때든 핵무기를 보유할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비밀리에 작성하였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내각조사실이 여러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작성한 보고서에는 일본이 원자력이나 로케트의 기술개발에 힘을 넣어 《핵무기를 보유할수 있는 <잠재적능력>을 다른 나라들보다 항상 높은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이 이미 오래전에 핵무기보유를 꿈꾸어왔다는것을 립증해준다.
더욱 놀라운것은 일본이 실지로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 했다는것이다.
일본정부가 1960년대 말엽에 핵무기보유에 대해 비밀리에 검토한 사실이 최근에 드러났다. 일본의 NHK방송이 입수한 이전 서부도이췰란드외무성의 기밀자료에 그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1969년 2월 일본이 서부도이췰란드에 핵문제와 관련하여 비밀회담을 가질것을 제안하였으며 일본의 호텔 등에서 회담이 진행된데 대한 내용이 담겨져있다.
알려진것처럼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게 미국에 의해 원자탄피해를 입은 나라이다. 그후 일본은 자기 나라가 핵피해국이라고 하면서 전후문제처리 등에서 국제사회의 동정을 사보려고 하였다. 그와 동시에 일본은 그것을 전범국으로서의 자기의 책임을 무마시키는데 유리하게 써먹으려고 하였다. 한편 일본은 《비핵3원칙》을 제창하면서 《평화국가》로 자처해나섰다.
1960년대에 아시아의 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한 미제의 핵위협공갈책동이 더욱 로골화되였다. 그에 대처하여 아시아의 일부 나라들에서 핵무기개발이 추진되였으며 결국 핵무기보유국이 출현하게 되였다. 그후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이 체결되였다. 이것은 미국의 지지비호밑에 전후 군국주의부활의 길을 걷고있는 일본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전후 패망의 앙갚음을 할 기회만을 노리고있던 일본은 핵무기보유에서 그 출로를 찾으려 하였던것이다.
이로부터 일본은 서부도이췰란드와의 협력을 통해 핵야망을 실현할것을 타산하였다. 그래서 마련된것이 일본, 서부도이췰란드사이의 비밀회담이였다. 회담에서 일본은 아시아에서 핵무기보유국들이 늘어나는 경우 저들의 영향력이 약해질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핵무기보유와 관련한 협력을 서부도이췰란드에 요청하였다. 일본은 또한 자국의 기술로 핵무기원료를 충분히 만들수 있다는것을 상대방에게 암시하였다. 그런데 서부도이췰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동서로 갈라진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일본과의 협력에 난색을 표시하는 바람에 일본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핵야망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 한것은 엄중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전범국인 일본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할 위험천만한 범죄적기도인것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원인이 핵무기가 없었기때문이라고 여겨왔다.
1941년 일본에서 비밀리에 100여명의 학자그루빠가 조직되여 《우라니움탄제조》를 위한 연구사업이 진행되였으며 1943년에는 원자탄제조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보고서》가 정부에 제출되였었다는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악명높은 군국주의우두머리였던 수상 도죠는 륙군, 공군본부에 핵폭탄제조를 다그쳐 미국, 도이췰란드의 《핵계획》을 따라잡을것을 지시하였으며 그에 따라 《니시나계획》이 작성되여 추진되였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의 한 교수가 1990년대 중순에 있은 《태평양전쟁에 관한 토론회》에서 《일본의 원자탄시험은 1945년 8월 12일 조선의 흥남앞바다에서 진행되였다.》라고 증언한것은 일본의 핵계획이 일제패망이전부터 추진되여왔다는것을 말해준다.
일본은 1967년부터 핵무기의 《보유, 제조 및 반입을 금지》한다는 《비핵3원칙》을 내들었다. 하지만 음흉한 일본이 《비핵3원칙》의 병풍뒤에서 세상이 모르게 무슨짓인들 안했겠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이번에 밝혀진 사실을 놓고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오늘 수많은 플루토니움을 비축해놓고있는 일본의 정객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수천개의 핵무기를 만들수 있다고 내놓고 말하고있다. 이것은 많은것을 시사해준다. 일본의 속심은 핵무기를 휘둘러서라도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기어이 실현하자는것이다.
사실들이 보여주는것처럼 일본은 검은 속심을 가지고 위험하고 야심적인 흉계를 추구하고있는 나라이다.
알려진바와 같이 올해에 들어와서만도 일본이 1960년 《일미안보조약》개정시 미국과 미군의 함선이나 비행기가 자국에 들어올 때 핵무기탑재를 가능하게 하는것을 밀약한 사실이 드러나고 이전 일본수상 사또의 집에서 1969년 일미사이에 합의한 극비핵문서가 발견됨으로써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이 핵야망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서부도이췰란드와 비밀회담까지 진행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짐으로써 일본을 보는 국제사회의 눈초리는 더욱 예리해지고있다.
이번 일을 두고 일본이 어떻게 나오겠는지는 두고보아야 할 일이다.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일본집권자들은 실지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고 머리를 기웃거리며 《어리둥절》해하는 태도를 취하고있다. 일본외상이 《핵보유검토》문제와 관련한 조사를 지시하는 등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사태를 수습할 목적밑에 일본내각관방장관이 나서서 《회담》이 어느 명령계통하에서 진행된것인지 알수 없다느니, 외무성의 조사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느니 뭐니 하고 딴전을 부렸지만 그것은 오히려 속이 검은 일본의 정체를 더욱 드러내보여줄뿐이다.
만일 이번 사실자료가 확인되는 경우 겉과 속이 판판 다른 일본의 흉심이 국제사회앞에 더욱 낱낱이 드러나게 될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일본에서 본격화되고있는 군사대국화, 해외팽창책동은 국제사회의 커다란 우려와 경계심을 자아내고있다. 일본의 핵야망까지 까밝혀지게 되는 경우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와질것이며 일본은 세계민심의 신망을 단단히 잃고 국제적고립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여론들은 이번 일을 놓고 일본의 《비핵3원칙》은 핵야심을 감싸기 위한 허울이며 일본이 떠들어대는 《평화국가》타령은 일종의 말치장이라고 비평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