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2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16일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겨울명월구회의를 소집하신 때로부터 79돐이 되는 날이다.
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1931년의 겨울명월구회의는 항일무장투쟁의 시초를 열어놓은 회의이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과 공산주의운동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인 회의였다고 쓰시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그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한 일제는 이를 계기로 조선인민에 대한 폭압만행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이에 대처하여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은 급격히 앙양되였으며 점차 폭력투쟁으로 이어졌다.
조성된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주석께서는 주체20(1931)년 12월 연길현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서 그이께서는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였다.
주석께서는 회의참가자들에게 정규군과 유격대의 차이를 설명해주시면서 일본침략군과 싸워이기자면 소부대와 대부대의 령활한 배합작전, 기습전, 매복전, 정치활동, 정치공작, 생산활동 등 군사, 정치, 경제활동을 다 벌려야 하며 그러자면 자유자재로 분산과 집중을 거듭하면서 전쟁을 할수 있는 유격대를 조직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밝혀주신 유격전에 관한 사상은 자체의 력량을 보존하면서 적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주고 적은 력량을 가지고도 능히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을 소멸할수 있는 정당한 로선이였다.
회의에서는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이 제시되였다.
력사적인 겨울명월구회의가 있은 그 다음해에 혁명적무장대오가 창건되였으며 조선혁명은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하게 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