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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의 조선문화재파괴략탈행위(1)
(평양 1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

1. 건축문화유산의 파괴소각


일본침략자들은 전쟁기간 조선각지의 귀중한 건축문화유산들을 마구 파괴방화하였다.

1592년 4월 13일 전쟁을 개시한 일본군대는 한성(서울)에 들어와 먼저 성을 파괴하고 동대문을 불태웠다.

후에 조선군대의 공격앞에 한성에서 쫓겨갈 때에는 건축물들에 불을 질러 온 성안을 재더미로 만들었다.

일본군대에 의해 근 200년력사를 자랑하던 봉건정부의 정궁인 경복궁과 별궁인 창덕궁의 호화로운 건물들이 모두 불타없어졌으며 한성의 모든 성문들이 다 파괴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또한 력대의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를 두는 왕실의 사당인 종묘도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종묘에 지휘처를 정하고있던 침략군두목 우끼다 히데이에가 그곳에 있던 사졸들이 련이어 죽자 불태워버리고말았던것이다.

평양에 기여들어서는 고구려시기인 393년에 세웠다고 하는 영명사의 부벽루와 고려시기에 세운 숭인전을 불태웠으며 영숭전과 대동문루, 련광정, 진서각, 풍월루, 대동관과 청화관 등 수많은 건축물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였다.함경도에서는 함흥본궁을, 황해도에서는 벽성의 소현서원 등을 불태워버렸다.개성에서는 목청전과 학문의 전당으로 불리우던 성균관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였다. 당시 기록인 《쇄미록》(오희문 1539년-1613년)에 의하면 성균관의 여러 건축물들중 《대성전, 명륜당, 존경각, 정록청이 모두 불타없어졌으며 단지 남은것은 성전협문 및 전사청뿐이며 좌우의 재방은 절반쯤 타고 성전앞의 비석은 세동강이 났으며 질구(거북모양의 받침돌)또한 뽑혀져서 부러진채 내동댕이쳐있었다.》고 하였다. 이것만보아도 성균관의 파괴상이 어떠했는가를 잘 알수 있다. 그리하여 전후 성균관과 4부학당에서 인재를 키우는 일은 중단되였다.(다음호에 계속)(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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