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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략탈의 척후병들
(평양 1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에 대한 침략의 길에 나선 첫 시기부터 일제는 조선의 문화재를 파괴략탈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무직건달군들과 무뢰한들을 조선에 들여보내여 우수한 문화재들을 마구 략탈하는 한편 어용학자들을 《조사》의 미명하에 파견하여 문화재략탈을 감행하게 하였다.

청일전쟁전야에 수많은 밀정들을 들이밀었는데 《학자》로 가장하고 먼저 기여든자는 도꾜대학에 적을 둔 야기였다. 1893년 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도를 싸다니면서 삼국시기 무덤이나 고인돌을 《조사》하는 학자행세를 하였다. 20세기초에도 부산과 서울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문화유적들을 내탐하였으며 무덤을 도굴하고 유물들을 략탈하였다.

1904년에 기여들었던 시바다도 청일전쟁과 로일전쟁, 《한일합병》 등 일본의 검은 마수가 뻗치는 곳마다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였다.

문화재략탈의 척후병으로 들어온자들 가운데는 세끼노와 도리이도 있다. 도리이는 1905년에 일본침략군의 호위까지 받으면서 광개토왕릉비와 장군무덤을 비롯한 많은 고구려고분들을 도굴하였다.

1902년 도꾜제국대학 교수였던 세끼노는 1902년 6월부터 8월까지 경기, 부산, 경주, 대구지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의 유적과 고건축을 처음으로 조사하고 그와 관련한 내용을 《조선건축조사보고》에 담아 정부에 제출하였다. 1909년에 다시 조선에 기여들어 문화유적에 대한 보다 세밀한 작업에 착수하였다.고건축물을 조사하는 한편 고분들도 적지 않게 파헤쳤으며 전국의 주요유적들을 샅샅이 내탐하였다.

1905년 도꾜제국대학 연구생이였던 이마니시도 조선유적유물략탈의 척후병으로 이름을 날리였다. 신라고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경주, 서울, 부여 등 지역을 돌아치며 조선문화재략탈의 주요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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