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일본이 과거를 성근히 청산하고 사죄, 배상할데 대한 목소리가 세계적범위에서 날로 고조되고있다.
귀무덤앞에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책동은 수백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다. 교또시(혼슈섬 중부에 있는 일본의 이전 수도)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귀무덤은 그 증견자이다.
1592-1598년 조선을 침략한 일본침략군은 도처에서 방화, 살륙, 략탈을 대대적으로 감행하였다.이른바 《전투공로》의 증거물로 조선사람의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자기 나라에 보내다가 그것들이 무게가 나간다고 하여 후에는 귀나 코를 잘라보냈다. 전쟁후반기에 들어와 침략군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조선사람을 모조리 죽이고 그 귀와 코를 더 많이 보내라는 명령을 내리였다. 사무라이들은 학살한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를 절임하여 교또로 날라가 그것으로 무덤을 만들고는 큰 의식까지 벌려놓았다. 이렇게 생겨난것이 귀무덤이다. 전쟁에 참가하였던 오까우찌 히데모또는 도서 《조선이야기》에서 《귀무덤》에 묻힌 조선사람의 수가 18만 5 738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반동들은 귀무덤 설명판에 그 유래에 대해 《히데요시공의 조선정벌때 한 장수가 적의 머리대신 귀나 코를 베서 보내온것을 히데요시공은 매우 기뻐하였다.》고 씀으로써 침략군이 저지른 만행의 전모를 은페하였다. 더우기는 《귀를 베는것은 당시의 싸움에서는 잔학행위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함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998년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 도꾜지국장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잡지 《포린 어페어즈》 11~12월호에 낸 《기억의 문제》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에서는 귀무덤의 유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일본군이 저지른 잔학행위에 대해 젊은 세대들은 거의 교육받지 못하고있다.
일본에서는 전범자 도죠 히데끼를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영화가 가장 인기있는 영화가 될 정도로 반동적인 경향을 보이고있다.
일본은 아직까지 전쟁범죄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지 않고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없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은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