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사람들은 일찌기 일본렬도에 진출하여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들중에는 조선의 민족문화를 보급하는데서 큰 역할을 한 도리도 있다.
도리는 6~7세기 일본에서 활동한 조각가, 공예가로서 가죽가공, 목공, 염직, 조각 등 여러가지 작업을 하는 집단의 책임자였다.
그의 가문이 일본에 건너간것은 522년이였다.
도리의 할아버지인 사마달등은 일본의 야마다 사까다촌에 지어놓은 초당안에 불상을 안치하고 불교문화를 전파하였으며 아버지 역시 일본에서 불상제작의 시원을 열어놓은 사람이였다.
아스까문화의 발전에서 당당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는 도리의 대표작으로서는 일본땅에서 가장 오래된 조각품으로 불리우는 아스까사의 금동장륙불상과 법륭사의 금동석가여래삼존상 등을 들수 있다.
도리는 아스까사의 거대한 금동장륙불상을 완성한 후 절간문을 마스지 않고 그것을 금당안에 설치하여 사람들을 놀래웠다고 한다.
법륭사의 금동석가여래삼존상은 623년 일본왕실로부터 의뢰받아 창작한것이였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당시로서는 어렵고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동조각과 함께 금도금의 기법을 적용한 매우 세련된 금동불상들이 기본이였다.
고구려식과 백제식을 결합한 이런 양식을 두고 일본사람들은 오늘까지도 도리양식이라고 하고있으며 도리는 일본조각사의 시초를 열어놓은 사람으로 불리우고있다.
도리와 같이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가진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일본문화는 마침내 개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