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7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 《절대로 덮어둘수 없는 일제의 날강도적인 문화재략탈범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우수한 문화를 창조하여 그 이름을 세상에 떨쳤다.
유구한 세월 우리 인민의 뛰여난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깃든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들은 지난날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수많이 파괴, 략탈당하였다.
얼마전 한 외신은 일본에 있는 우리 나라 문화재가 수십만점에 달한다고 보도하였다.
오늘 국제적으로 과거범죄를 성근하게 반성하고 청산하는것이 추세로 되고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도이췰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과거범죄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실지행동으로 자기의 잘못을 씻고있다. 이것은 죄악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현시대와 력사의 흐름에 발을 맞추려는 의지를 보여주는것이다.
조일간에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력사적문제들이 수다하다. 여기에서 과거 일제의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 략탈범죄는 철저히 결산되여야 할 문제들중의 하나이다.
지난 세기 전반기 일제는 40여년간에 걸쳐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가혹한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보인 문화재들을 닥치는대로 무참히 파괴하고 략탈하였다. 우리 나라 문화재에 대한 일제의 파괴와 략탈은 전대미문의 파렴치하고 악랄한 범죄였다.
도자기 하나만을 놓고보자.과거 우리 민족이 창조한 도자기문화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에 눈독을 들인 일제는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우리 나라의 도자기략탈에 몰두하였다.
1909년 일본의 도꾜에서 고려자기대전람회가 열렸었다. 여기에는 수많은 고려자기들이 출품되였다. 이 전람회에서 처음 공개된 전시품들의 대부분은 우리 나라 무덤도굴품으로서 일제침략자들이 훔쳐간 고려자기들이였다. 그 다음해에 간행된 전람회사진첩의 해설글에는 《이런 고려자기는 단 한점도 지상에서 그것을 볼수 없고 모두 고분에서 파내고있다. 지금 우리 일본인들이(조선의) 어디라도 들어가있으니 만일(고분에)있는 물건이라면 반드시 출토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씌여있었다.
서울에 있던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시장에서는 일본도적놈들이 갓 도굴하여 흙이 더덕더덕 묻은 고려자기들이 거래되였다. 이를 두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고적조사과 주임을 지낸 후지다 료사꾸는 《고분을 파괴하고 그 유물을 백주에 점방에서 파는것과 같은 현상은 세계가 넓다 하더라도 조선이 유일한 례에 속한다.》라고 실토하였다. 고려자기만이 아니라 청화, 진사 등으로 이름높은 리조자기들도 일제침략자들에 의해 일본각지로 대량 흘러들어갔다. 일본의 지방도시에 불과한 오사까의 오사까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는 근 800점의 조선도자기들이 전시되여있다. 지방도시의 한개 미술관에 이렇듯 많은 우리 나라의 가치있는 도자기유물들이 있을진대 일본의 전국각지에 널려있는 우리 나라 도자기유물은 얼마나 많겠는가.
일본인들자신이 밝힌데 의하더라도 도꾜국립박물관에는 도자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이 4만점이나 비치되여있다.또한 《네즈미술관》에는 일본자본가였던 네즈라는자가 략탈해간 우리 나라 도자기와 기타 진귀한 문화유물들이 수천점이나 소장되여있다. 일본각지의 박물관, 미술관, 대학, 절간, 미술학교, 기관, 개인들의 수중에는 도자기, 금속공예품, 불상, 옥돌공예, 초물, 자개박이공예품, 그림, 도서, 활자 등 수없이 많은 우리 나라의 다종다양한 문화유물들이 있다. 고려자기만 하여도 일본 전국각지에 수만점이나 있다고 한다.
실로 우리 나라 문화유물에 대한 일제침략자들의 략탈행위는 전대미문의 날강도적인 문화재강탈범죄였다.
민족문화재에는 력사발전과정에 형성되고 계승된 민족의 성격과 전통,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책동의 한 고리로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행위를 미친듯이 감행하였던것이다.
일제는 조선강점초기에 벌써 고적유물탐험가 세끼노를 두목으로 한 단체를 구성하여 10년간에 걸쳐 전조선령토에 있는 우리의 민족유산에 대한 전면적이며 전문가적인 조사를 진행하였고 총 15권에 달하는 《조선고적도보》를 작성하였다. 이 목록에 기초하여 《통감》 이등박문은 조선문화유물《조사, 수집》령을 발포하고 조선민족유산략탈을 법적기초우에서 제도적으로 감행하였다. 이등박문은 공민왕릉에서만도 10여차량의 보물을 파갔다. 일제가 조선강점시기 200여기의 왕릉, 1만 1,000여기의 고분에서 파낸 보물의 량은 막대하였다. 이등박문의 뒤를 이은 초대《조선총독》 데라우찌는 《고적 및 유물보존교칙》을 추가발포하고 《총독부》의 권력을 발동하여 현장봉쇄 등으로 계엄상태를 조성한 속에서 조선민족유산에 대한 략탈을 감행하였다. 일제는 이렇게 훔쳐간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일본의 《국보》로 등록하고 박물관까지 차려놓고 뻐젓이 전시하였다.
일제는 《보물의 소유자는 <조선총독>의 명령에 의하여 그것을 관립 또는 공립박물관과 미술관에 바칠 의무가 있다.》는 법령을 발포하고 조선에서 략탈하여간 금관, 장신구, 고려상감자기, 청동거울, 불상을 비롯한 많은 우리 나라 문화재들을 도꾜 우에노박물관에 가져다놓은 후 뻔뻔스럽게도 그것들을 저들의 《국보》, 《중요문화재》, 《중요미술품》 등으로 세상에 공개하였다.
일제가 패망한지도 반세기가 훨씬 넘은 오늘까지 그들이 략탈해간 우리 나라의 문화재중에서 공개되지 않은것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현재 일본에는 우리 민족의 수많은 유물이 박물관들과 전시대, 서점들과 응접실 등에 비치되여있다. 오죽하면 일본사람들까지도 《일본<국보>라고 세계에 자랑하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다 그 미를 찬양하고있는 작품의 거의 모두가 대체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인가. 그중에서도 <국보>중의 <국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거의 모두가 실로 조선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이는 력사가들도 립증하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다.》라고 고백하였겠는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정신, 물질적유산인 우리 나라 문화재에 대한 일제의 무지막지한 파괴, 략탈범죄는 조선민족의 문화전통과 넋을 짓밟고 민족자체를 말살할것을 노린 천추에 용납 못할 죄악이다.
일본은 지난날 근 반세기에 걸치는 일제의 조선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파괴, 략탈한 특대형범죄에 대해 성근하게 인정, 사죄하고 략탈해간 모든 문화유물들을 전부 반환해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