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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을 수장한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
(평양 2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과거 일제가 조선민족을 대상으로 감행한 범죄의 력사에는 《우끼시마마루》폭파사건도 기록되여있다.

패망한 일본은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강제로 일본땅에 끌고가 저지른 만행이 공개되는것이 두려워 조선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1945년 8월 22일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했던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고향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을 듣고 일본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에 올랐다.

그러나 아오모리현 오미나또를 출발한 배는 조선의 부산항이라는 초기의 목적지와는 달리 일본의 해안선을 따라 남쪽방향으로 항행하였다. 8월 24일 오후 교또부 마이즈루항입구 해안선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곳에서 항행하던 《우끼시마마루》는 갑자기 요란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침몰되고말았다.

하여 배에 타고있던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이 순간에 수장되고말았다.

사건발생후 일본반동들은 함장을 내세워 이 사건이 《기뢰에 의한 침몰사고》라고 하면서 사망자수를 극히 줄여서 발표하고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시체가 있는 동강난 배를 바다속에 내버려둔채 사건을 력사의 흑막속에 덮어버리였다.

《우끼시마마루》침몰사고는 기뢰에 의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며 일제의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조작에 의해 감행된 범죄적만행이였다.

《우끼시마마루》의 출발과 침몰에 이르기까지의 전과정에 대한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지금까지 조사발굴된 자료들이 증명해주고있다.

배의 이전 승조원은 배가 출항시에 얼마 되지도 않는 연료를 가지고 떠났다고 하면서 이것은 《우끼시마마루》가 애당초 부산항까지 항행할 계획이 아니였다는것을 보여준다고 증언하였다.

기뢰에 의한 침몰이라는것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당시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가는 항로는 기뢰해제가 끝난 안전항로였다.

당일날 련합군의 선박항행금지요구에 따라 많은 배들이 무사히 통과한 마이즈루항로에서 유독《우끼시마마루》가 기뢰에 걸려들었다는것은 상식적으로도 있을수 없는 일인것이다.

사실들은 《우끼시마마루》가 사전에 면밀히 세워진 폭파계획에 따라 배안에 장치한 폭발물에 의해 폭파침몰되였다는것을 립증하고있다.

일본이 그때로부터 66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을 《불가피한 사고》로 묘사하면서 그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있는것은 철면피성의 극치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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