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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해외교포운동의 명망높은 활동가》
(평양 2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21일부 《로동신문》에는 한덕수 서거 10돐에 즈음하여 쓴 개인필명의 글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삶을 빛내인 해외교포운동의 명망높은 활동가》가 실렸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선군의 기치밑에 장구하고 간고한 투쟁의 길을 헤치며 승리하여온 우리 혁명의 영광스러운 력사에는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 수많은 애국충신들의 고귀한 넋이 수놓아져있다. 그들속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조국의 통일과 부강번영을 위한 애국사업에 한생을 바친 혁명의 원로, 로혁명가, 참된 애국충신이라고 높이 평가하신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이였던 한덕수동지도 있다.

한덕수동지가 서거한 때로부터 10돐이 되는 날을 맞으며 우리는 조국과 혁명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한생을 바친 오랜 혁명가이며 해외교포운동의 명망높은 활동가였던 한덕수동지의 빛나는 생애와 고귀한 투쟁공로를 경건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게 된다.

한덕수동지의 한생은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을 지니고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진심으로 받들어모신 견결한 혁명가의 삶이였으며 조국과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몸바쳐 옹호한 참된 애국자의 고결한 생애였다. 그의 고귀한 한생은 우리의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당과 수령을 어떤 신념과 량심으로 받들어모시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서 어떻게 삶의 순간순간을 빛내여야 하는가를 산모범으로 감동깊이 보여주고있다.

한덕수동지는 해외에서 애국활동을 시작한 때로부터 심장의 고동을 멈추는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지니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헌신적인 투쟁으로 해외교포운동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주체적인 재일조선인운동의 개척자이고 총련의 조직자이며 명망높은 해외혁명활동가였다.

한덕수동지의 한생에서 핵을 이루는것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충실성이며 바로 그것으로 하여 그의 혁명적생애는 우리 일군들과 당원들, 근로자들의 훌륭한 본보기로 되고있다.

일제의 날강도적인 《을사5조약》에 이어 《정미7조약》의 날조로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우기 시작하던 해에 경상북도 경산군의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한덕수동지는 일찍부터 남다른 애국의 열정과 정의감을 가지고 침략자들을 끝없이 미워하였으며 스무살 되는 해에는 일본땅에서 로동생활을 하면서 재일동포들의 민족적존엄과 생존을 위하여 앞장서 투쟁하였다.

그 나날 한덕수동지가 일제의 류혈적인 탄압에도 굴함없이 계속 싸울수 있은것은 백두광야에서 항일대전을 벌리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끝없이 우러르며 마음의 기둥으로 믿고 따르는 신념과 의지가 있었기때문이였다.

이러한 그였기에 해방직후 간또지방조선인회 책임자가 되여 불과 두달만에 재일본조선인련맹을 결성할수 있었다.

조련은 결성하였지만 한덕수동지에게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앞날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게다가 조선민족의 재생을 달가와하지 않는 불순세력들의 탄압과 방해책동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때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재일동포들의 운명을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재일조선인운동의 실태를 헤아려보시고 《재일 100만동포들에게》라는 력사적인 서한을 보내주시여 재생과 희망의 밝은 빛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서한을 받아안은 한덕수동지의 감격과 기쁨은 참으로 컸다.

한덕수동지는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동료들에게 이렇게 토로하였다.

《이번에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서한을 받아안고 내가 생각하게 되는것은 우리 조선민족의 유일한 령도자는 오로지 김일성장군님 한분밖에 없다는것이요. 나는 이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였소. 나는 어제도 그러하였지만 앞으로도 김일성장군님의 심복자가 되겠소.》

한덕수동지는 그 맹세대로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서한을 심장으로 받들고 재일동포들을 수령님과 공화국정부의 두리에 더욱 튼튼히 묶어세우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투쟁하였으며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실현하기 위한 애국사업에 모든 힘을 바치였다.

주체37(1948)년 12월 23일은 한덕수동지의 한생에서 가장 뜻깊고 의의깊은 날들중의 하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재일조선인경축단 단장으로 조국에 왔던 한덕수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사나운 풍랑을 헤치며 동해를 건너온 경축단성원들을 만나주시기 위하여 어느 한 방에 들어서시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는 순간 한덕수동지의 가슴은 쇠물처럼 끓어번지였다.

(아, 저분이 우리 민족이 낳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시구나! 이분이시야말로 우리 겨레가 운명을 맡기고 따를 민족의 태양이시고 영명한 령도자이시다!)

이런 북받치는 격정으로 하여 한덕수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는 오늘 일본에서 온 여러분들과 만나게 되여 대단히 기쁩니다, 여러분들이 조국으로 올 때 풍랑이 심했다고 하는데 사나운 겨울날씨에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을 때까지도 쏟아져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재일조선동포들은 자주독립국가의 해외공민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재일조선동포들은 높은 애국심을 가지고 공화국정부를 지지옹호하며 공화국정부의 시책을 받들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애국활동을 힘차게 벌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난생처음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된 한덕수동지는 조선사람을 위하여 조선의 실정에 맞게 정치를 펴나가시는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비범한 예지에 거듭 감격하고 탄복하였다.

한덕수동지의 가슴속에는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만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참다운 길이라는 신념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였다. 그리고 한생을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로 살며 수령님을 따라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의 길에 한몸바칠 불같은 맹세가 꽉 차넘쳤다.

한덕수동지에게 있어서 재일조선인운동이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자주독립국가의 해외공민된 긍지와 영예를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은 그의 인생을 꽃피워주고 참다운 애국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준 위대한 은인이시였다.

재일조선인운동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49년에 미제는 공화국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재일동포들의 단합된 힘에 겁을 먹고 일본반동들을 내몰아 재일동포들의 첫 통일전선조직체인 재일본조선인련맹을 강제로 해산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재일본조선인련맹 의장으로 활동하던 한덕수동지도 가슴쓰라린 일을 당하게 되였다. 하지만 미일반동들은 위대한 수령님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한덕수동지의 신념과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그는 내외의 온갖 원쑤들의 반동공세를 물리치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활동을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주체40(1951)년 1월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이 결성되게 되였다. 그러나 일부 지도층은 남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조선혁명을 외면하고 남의 나라 혁명에 복무하는 그릇된 길로 나아갔다.

한덕수동지는 사대주의, 민족허무주의에 물젖은 민전지도층의 책동으로 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이 겪게 된 가혹한 시련을 통하여 목숨보다 더 귀중한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품임을 심장의 더운 피로 깨닫게 되였다. 그는 막막한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는 재일조선애국자들에게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그냥 앉아있으면 영영 끝장나고 만다, 파멸상태에 직면한 재일조선인운동을 구원하는 길은 오직 하나,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 실태를 보고드리고 가르치심을 받는 길밖에 없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우리 재일조선인운동을 존망의 위기에서 꼭 구원해주실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들을 적극 고무해주었다.

한덕수동지는 더 지체함이 없이 재일조선인련락원을 조국으로 파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정황이 매우 긴장한 속에서도 조국을 찾아온 재일조선인련락원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재일조선인운동이 옳바른 길로 나아가려면 남의 나라 혁명에 복무할것이 아니라 자기 조국과 자기 민족을 위하여 참답게 복무하는 민족적애국운동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재일조선인운동을 공화국정부의 지도밑에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며 재일조선인들의 민족적권리를 지키고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복무하는 민족적애국운동으로 전환시키는것, 이것이 오늘의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고 재일조선인운동을 구원하는 길이며 재일동포들의 념원과 지향에 맞는 참된 애국의 길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깊은 가르치심에 접한 한덕수동지는 눈앞이 확 트이는 환희와 함께 말로는 다 표현할수 없는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아, 진정 위대한분이시다. 이제는 재일조선인운동이 보검을 가지게 되였다.)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리익으로부터 출발하여 해외교포운동이 자기 조국, 자기 민족을 위한 민족적애국운동으로 되여야 한다는 이 위대한 로선전환의 방침이 있음으로 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은 주체의 한길을 따라 승리적으로 전진할수 있었다. 그 나날 한덕수동지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수령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투철한 수령관이 더욱 뿌리깊이 자리잡게 되였다. 그는 어버이수령님의 주체적인 해외교포운동사상과 령도를 받들어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과정에 드디여 주체44(1955)년 5월 25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를 결성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로선전환방침을 관철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을 민족적애국운동으로 방향전환하고 주체사상을 지도리념으로 하는 공화국의 참다운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을 결성한것은 한덕수동지가 세운 가장 큰 공로이다.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덕수동지를 만나신 기회에 그때 일을 회고하시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한덕수의장동지는 일본반동들의 가혹한 탄압과 박해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투쟁하였다고, 자신께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깊이 감동되군 하였다고 하시면서 한덕수의장동지가 총련을 결성하였기때문에 우리는 일본땅에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를 가질수 있게 되였다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한덕수동지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오르는 뜨거운것을 가까스로 삼키였다.

한덕수동지는 총련을 무어주시고 주체형의 해외공민조직으로 자랑떨치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고도 영예와 공로의 앞자리에는 언제나 해외일군들을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 그 은정에 목이 꽉 메였다.

(아, 수령님! 어쩌면 수령님의 그 품은 이다지도 넓고 은혜로우십니까!)

한덕수동지는 총련이 결성된 첫날부터 의장의 중책을 지니고 내외반동들의 온갖 방해책동을 용감하게 이겨내면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상과 령도를 재일조선인운동에 구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그리하여 총련은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계층별단체들과 수많은 부문별사업체들을 망라한 재일동포들의 대중적애국조직으로 튼튼히 꾸려졌으며 재일조선인운동은 자기 나라 혁명에 참답게 복무하는 주체의 애국애족운동으로 강화발전되였다.

한덕수동지는 누구보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적자존심이 강한 참다운 애국자였다.

그는 민족의 자주성과 존엄을 목숨과 같이 귀중히 여기였으며 재일동포들의 민족적존엄과 권리를 옹호하여 한생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한덕수동지는 재일동포들의 권리옹호문제를 민족적존엄과 자주성을 지키는 문제로 보고 그것을 침해하는 일본반동들의 온갖 민족차별정책을 반대하여 누구보다도 견결히 투쟁하였다.

그 나날 말이자 곧 민족이라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심장에 새기고 재일동포들속에서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쓰는 운동, 조선사람찾기운동을 적극 벌려 내외반동들의 민족동화책동을 막고 재일동포들이 대를 이어 민족성을 지켜나가도록 하기 위해 애쓰던 한덕수동지의 열정넘친 모습은 지금도 재일동포들뿐이 아닌 조국인민들의 가슴마다에도 깊이 새겨져있다.

한덕수동지는 자기 생애에 《김일성청년영예상을 받았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 드리는 노래》, 《백두밀영의 고향집아》,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를 비롯하여 절세의 위인들의 불멸의 업적과 은혜로운 사랑을 칭송하고 주체조선의 해외공민된 긍지와 자랑을 반영한 80편의 노래를 창작하였다. 전문 시인도 아닌 그가 해외교포운동의 책임적이면서도 무거운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그 바쁜 속에서도 이렇듯 많은 혁명적인 노래를 지은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는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높이 모시고 받드는데서 자그마한 가식과 변심도 모른 참된 량심인, 의리인으로서의 한덕수동지의 가장 깨끗하고 순결한 모습을 엿볼수 있다. 또한 애국이라는 숭고한 리념앞에 선 인간의 신조와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느끼게 된다.

참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의 산 력사의 체현자로 한생을 빛나게, 굳세게 살아온 한덕수동지야말로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믿음속에서 인간이 지닐수 있는 최상의 영광과 값높은 행복을 누려온 시대의 행운아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덕수동지를 가장 가까운 해외혁명동지로 굳게 믿으시고 그에게 온갖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총련에 한덕수의장만한 사람이 없다고 늘 말씀하시면서 그의 건강과 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자신보다 한덕수동지의 건강을 더 걱정하시면서 그에게 로당익장의 활력과 소생의 기적을 안겨주시였다.

우리 혁명의 동지애의 전통을 만대에 빛내이시며 혁명선배들을 더없이 존대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련을 애국애족의 선각자, 애국충정의 모범, 세계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로 높이 내세워주시면서 그 모든 성과를 한덕수동지의 공로로 빛내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덕수동지가 로환으로 앓을 때에도 한의장이 앉아있기만 해도 힘이 된다고 하시면서 그의 건강을 위하여 조국의 유능한 의료일군들과 귀중한 약재들도 보내주시였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각별한 정치적신임과 육친적인 사랑속에서 한덕수동지는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계관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중로력영웅, 명예원사, 교수, 박사로 조국과 민족이 알고 세상이 다 아는 열렬한 애국자, 저명한 해외교포활동가로 명성을 떨치며 값높은 인생행로를 수놓았다.

하기에 한덕수동지가 운명의 마지막시각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존경합니다.하늘보다 더 존경합니다.》라고 한 유언은 바로 해외의 이름없던 전사를 한품에 안으시여 하늘같은 믿음과 인덕으로 세기와 세기를 이어 높이 내세워주시고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분출이며 영원한 태양찬가인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덕수동지가 서거하였다는 비보에 접하시고 비통함을 금치 못하시며 의장동지의 한생에 대한 최상의 값높은 평가의 말씀도 주시고 장의를 국가적인 행사로 진행하도록 온갖 은정깊은 조치들을 다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련중앙의 명의로 된 부고도 내보내도록 하시고 높은 급의 조의대표단도 파견해주시였다. 또한 조국과 총련에서 추도회도 크게 하도록 해주시였고 친히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까지 보내주시며 애국렬사릉에서 값높은 영생의 삶을 누리도록 해주시였다.

살아있을 때에는 끝없는 영광과 행복을 안겨주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이역땅에서 숨진 로전사를 조국의 품에 안아 영생의 모습으로 빛내여주시였으니 정녕 경애하는 장군님은 혁명전사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한없이 위대하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추억속에 깊이 새겨져있고 오늘도 전진하는 선군혁명대오속에서 영생의 값높은 삶을 누리고있는 한덕수동지, 그의 삶은 참다운 혁명가, 충실한 애국자, 혁명의 귀중한 원로라는 값높은 이름으로 조국력사에 자랑스럽게 빛나고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품속에서 시작한 애국의 한길을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받들어 억세게 걸어온 훌륭한 혁명가, 민족의 참된 아들인 한덕수동지를 우리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주체혁명위업과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에 남긴 그의 고귀한 업적과 위훈은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위업, 전진하는 총련애국위업과 더불어 후세에 길이 전해질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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