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이였던 한덕수의 서거 10돐 중앙추모회가 21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
추모회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양형섭,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과 내각 부총리 강능수,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영대, 정권기관, 사회단체, 종교단체, 교육기관, 성, 중앙기관 일군들, 유가족들, 평양시내 근로자들, 사회주의조국에 체류하고있는 총련일군들, 재일동포들이 참가하였다.
경상북도 경산군의 빈농가정에서 태여난 한덕수는 젊은 시절에 일본으로 끌려가 나라 없는 설음을 뼈아프게 체험하면서 일찍부터 재일동포들의 생존권을 위한 로동운동을 조직지도하였다.
그는 조국해방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서한 《재일 100만 동포들에게》를 받들고 광범한 동포들을 어버이수령님의 두리에 묶어세우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으며 새 조국건설을 위한 애국사업에 모든 힘을 다 바치였다.
그는 공화국의 해외공민단체인 총련을 결성하고 46년간 총련의장으로 사업하였다.
의장은 주체90(2001)년 2월 21일 94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인 양형섭은 추모사에서 공화국의 해외공민단체인 총련을 결성한것은 그가 세운 가장 큰 애국적공적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따르는 길에 시련과 난관이 겹쌓였지만 한덕수는 추호의 동요와 변심을 몰랐으며 총련의 모든 애국사업을 수령님께서 의도하시고 바라시는대로만 이끌어나갔다.
한덕수에게 있어서 제일 큰 보람과 긍지는 이역땅에 있어도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속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투쟁한다는것이였다.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를 비롯한 그가 지은 노래와 시들은 오늘도 총련의 새 세대들이 수령과 조국을 알고 애국애족의 한길을 변함없이 이어나가도록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나날에도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재일조선인운동의 필승의 기치로 틀어쥐고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투쟁하였으며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력사가 이역땅에서도 영원히 흐르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바치였다.
그의 고결한 충정은 총련을 김정일동지께 무한히 충직한 주체형의 해외교포조직으로 세기와 세대를 이어 강화발전시킨데서도 높이 발휘되였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도서들을 수많이 집필하고 출판하여 총련조직과 재일동포사회에 배포하도록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탄생기념일에 즈음하여 해외교포조직으로서는 처음으로 2.16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을 조국에 파견하고 2월의 명절을 경축하는 여러 정치행사들을 성대하게 조직진행하여 온 일본땅이 위인칭송의 열풍으로 들끓게 하였다.
그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총련은 내외반동들의 비렬한 모략책동이 우심하고 재일동포사회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환경속에서도 위대한 장군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상의 순결체, 조직적전일체로 줄기차게 강화발전되여올수 있었다.
그는 조국과 민족을 끝없이 사랑하고 민족적자존심이 남달리 강한 참다운 애국자였으며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고 사회주의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다.
자기의 것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고 남을 쳐다보는것을 제일 경계한 그는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대외사업에서도 한번도 일본말을 쓰지 않았으며 동포들속에서 우리 말을 배우고 쓰는 운동, 조선사람찾기운동을 적극 벌려 재일동포들이 대를 이어 민족성을 지켜나가도록 하였다.
그의 노력에 의하여 오늘 동포들이 사는 일본땅에는 초급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민주주의적민족교육체계가 정연하게 세워져 동포자녀들이 조선민족의 넋을 지닌 애국인재로 훌륭히 자라나고있다.
그는 높은 조직적수완과 원숙한 령도예술을 지닌 관록있는 정치활동가였다.
한덕수의 한생은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몸과 마음 다 바쳐 받들어모신 열혈충신, 유능한 정치활동가, 참된 애국자의 훌륭한 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총련 의장의 중책을 맡겨주시고 그가 조국을 방문하면 중요한 국사도 뒤로 미루시고 오랜 시간 접견해주시고 현지지도의 길에도 함께 다니시면서 원숙한 지도력과 풍모를 지닌 해외교포활동가로 키워주시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건강과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여 그가 로당익장의 활력으로 일해나가도록 보살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를 영예의 김일성훈장수훈자, 김일성상계관인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중로력영웅, 조국통일상 수상자로, 명예원사, 교수, 박사로 내세워주시고 평양경공업대학을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으로 명명하도록 하시였으며 생일 때마다 은정어린 축전과 귀중한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또한 그의 건강을 위해 여러가지 조치들도 취해주시고 조국의 유능한 의료일군들과 귀중한 약재들도 보내주시였으며 그가 서거하였을 때에는 재일조선인운동의 원로,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대표하는 명망높은 활동가로 높이 평가해주시고 조의대표단도 일본에 보내시여 조국과 총련에서 추도회도 크게 하도록 하여주시였다.
그리고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고 그를 원형으로 한 예술영화를 창작하도록 하시여 총련일군들과 새 세대 동포들이 그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따라배우도록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믿음과 사랑속에서 한덕수는 우리 조국과 민족이 기억하고 세상이 아는 참다운 혁명가, 열렬한 애국자로, 관록있는 해외교포활동가로 명성을 떨칠수 있었다.
연설자는 어버이수령님을 따라 시작한 애국충정의 길을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세기를 이어가며 억세게 걸어온 민족의 참된 아들인 한덕수의 고귀한 생애와 투쟁공적은 조국청사에 빛나게 아로새겨져 전진하는 주체혁명위업, 총련애국위업과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라고 강조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