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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일제가 감행한 인적자원략탈의 전모(5)
(평양 2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일제는 1940년대 초에 《징병》제의 실시를 서둘렀다.

그것은 일제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력침공과 태평양지역의 식민지리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일간의 무력충돌과 관련된다.

일제는 중일전쟁에서 궁지에 빠진 어려운 처지를 만회하기 위하여 전쟁전략물자를 확보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동남아시아와 남양군도(남태평양의 섬들)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이것은 미제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진출을 가로막는 동시에 태평양지역에서 미제가 차지한 식민지리권을 크게 침해한것으로 되였다. 이로 인하여 생겨난 미일간의 대립과 모순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으로 폭발하였다.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일제는 중국전선과 함께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 걸치는 넓은 전선에 많은 병력을 더욱 증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로부터 일제는 방대한 규모에서 병력을 확보하려고 획책하였다.

전쟁개시전인 1940년 일본군 륙군병력은 일본과 조선에 11개 사단, 만주에 51개 사단이였다.그러나 일본륙군성과 참모부는 태평양전쟁개시후인 1941년 12월중순에 새로 병력을 보충하여 태평양전선에 20여만명을 투입할것을 예견하면서 중국관내에 6개 사단, 만주에 1개 사단과 3개 땅크사단의 신설 그리고 일본에서 53, 54사단의 동원계획을 결정하였다. 그뿐아니라 해군병력과 항공병력도 크게 보충하려고 하였다.

일제는 1944년까지만 하여도 새로 275만명이상의 륙군을 증강할 목표를 세우고 조선에서도 《징병》제를 실시하여 병력을 보충하려고 꾀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총독부》정부총감 다나까는 《전선의 확대, 병력의 증강은 필연적으로 청장년의 징모범위의 확대를 요구하는데 이르렀다.여기서 종래의 지원병제도를 그만두고 징병제도를 설정하여 조선사람들에게도 본래의 일본인과 같이 병역이 부과되였던것이다.》고 뇌까리였다. (《조선근대사료연구집성》제3호, 우방협회, 조선사료연구회, 1960년, 223~224페지)

이처럼 일제는 태평양전쟁개시를 계기로 방대한 무력증강을 기도하였으며 그에 따른 병력을 더욱 확장하는데 조선청장년들을 끌어들일것을 획책하였던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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