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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비법적인 <한일의정서>를 조작한 일제의 죄악》
(평양 2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23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비법적인 <한일의정서>를 조작한 일제의 죄악》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일제가 강압적으로 《한일의정서》를 조작한지 107년이 되는 날이다. 1904년 2월 23일 일제가 《한일의정서》를 조작한 때로부터 한세기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조선인민은 그들의 불법무도한 죄행을 잊지 않고있다. 《한일의정서》조작행위는 과거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제의 악랄한 죄악중의 하나이다.

지난날 조선에 대한 군사적침략과 강점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일제의 범죄적인 《한일의정서》조작시도는 20세기초부터 시작되였다. 지금으로부터 108년전인 1903년 9월 일본외무대신은 조선주재 자기 나라 공사 하야시에게 《일한간의 비밀조약에 관한 건》이라는 비밀지령을 주었다. 뒤이어 일본정부는 《각의》에서 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통치하는것이 기본이지만 명목상으로는 《보호적인 조약》을 체결하는것이 가장 편리하다는 내용으로 된 《조선침략안》이라는것을 결정하였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군사적침략과 강점통치흉계를 《보호》의 외피를 씌운 《외교문서》조작의 수법으로 실현하려는 검은 속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그러나 일제의 교활한 이른바 《의정서》조작음모는 조선봉건정부의 완강한 반대로 실현될수 없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일제는 방향을 바꾸어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을 선행시켜놓고 《한일의정서》를 조작하기로 하였다.

일제는 1904년 2월초 미리 편성해놓았던 《파견대》에 출동명령을 내리였다. 이에 따라 일제의 《파견대》는 비밀리에 사세보군항을 출발하였다. 같은 달 9일 오전 서울에 도착한 일본침략군선발대는 위협적인 군사적행동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도서 《매천야록》은 일본침략군의 서울점령과 관련하여 《왜군이 인천에서 서울에 들어온것이 병졸이 5만명이고 말이 1만여필》로서 왕궁과 관청, 지어는 일반살림집까지 점령하였으며 《남방으로부터는 왜군이 동래를 거쳐 대구로 나아가고 남해를 거쳐 남원으로 나갔으며 군산을 거쳐 전주로 나아갔다. 그리고 서로에는 평양, 삼화, 북로에는 원산, 성진에서 호상간의 거리를 수백리로 하여 점차 료동으로 향해 나아갔다.》고 썼다. 일제가 이러한 침략행위를 감행한것은 저들의 군사적힘을 발동하여 조선에 대한 강점과 식민지통치를 합법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한일의정서》를 조작하려는 음흉한 속심에서였다.

이와 함께 일제는 조선봉건정부관리들에 대한 위협공갈과 랍치 등을 감행하였다.

당시 조선황제 고종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여 일제침략군의 위협과 공갈에서 벗어나는 한편 왕권과 내정에 대한 일제의 간섭을 막아보려고 하였다. 그것은 만일 피신이 성사되는 경우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범죄행위를 세상에 폭로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이것을 눈치챈 일본공사 하야시는 고종을 만나 저들의 행위가 조선의 《황실과 령토보존》을 위한것이라고 떠벌이면서 고종이 피신을 못하도록 저지시키는 한편 군사적으로 왕궁을 봉쇄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종이 한치도 움직일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동시에 일제는 《한일의정서》를 반대하는 조선봉건정부의 고위관리들을 제거하기 위해 저들의 무력을 동원하여 그들을 랍치, 구금하는 후안무치한 범죄행위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이러한 속에서 일제는 《한일의정서》를 조작하기 위한 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그러나 당시 탁지부대신 겸 내장원경이였던 리용익, 륙군참장 리학균 등은 일제의 《한일의정서》조작책동을 완강히 반대해나섰다. 그리하여 《한일의정서》조인이 예견된 날을 하루 앞두고 고종과 반대파세력에 의하여 파탄상태에 처하게 되였다. 조선봉건정부의 반대파세력을 그대로 두고서는 《한일의정서》를 비롯한 어떤 형태의 《조약》도 조작할수 없다고 타산한 일본공사 하야시는 서울주둔 일제침략군 12사단장에게 반대파세력체포소동을 벌리게 하고 리용익을 랍치하여 일본으로 끌어가도록 하였다.

이런 가운데 《한일의정서》의 마지막단계《체결》을 맡은 외부대신 리지용이 리용익으로부터 역적죄인이 될것이라는 위협을 받고 두려워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러자 하야시는 리지용이 달아나지 못하게 연금상태에 두도록 하고 《한일의정서》를 날강도적으로 조작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한일의정서》 제1조에는 《대한제국정부는 대일본제국정부를 확신하고 시정의 개선에 관한 그의 충고를 받아들일것》이라고 규제되여있었다.

여기에는 일제가 조선이 저들의 지시와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약》위반으로 몰아 강권을 발동하여 조선을 완전히 점령하자는 흉계가 내포되여있었다.

또한 《한일의정서》에서 일제가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때에 따라 수용할수 있다.》고 규정한것은 조선을 일본의 주권하에 예속시킨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한일의정서》는 이처럼 철두철미 일제의 강권과 위협, 강요에 의하여 조작된 불법무도한 문서였다. 다시말하여 《한일의정서》는 《보호》의 간판밑에 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기 위한 법적《담보》를 마련하려는 일제의 범죄적기도밑에 강압적으로 조작된 파렴치한 침략문서나 다름없다.

이렇게 일제는 날강도적인 《한일의정서》조작을 통해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법적조건을 마련하였다. 그후 일제는 《한일의정서》를 기틀로 하여 1905년에는 《을사5조약》을, 1910년에는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하고 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오늘까지도 《한일의정서》를 비롯하여 일제가 날강도적으로 만들어낸 조약 아닌 《조약》들의 《적법성》을 운운하고있다.

이것은 력사적진실을 외곡, 무시하고 국제법을 유린하는 행위로서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더우기 간과할수 없는것은 일본반동세력들이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선택》이였다느니, 《세계 여러 나라와의 합의》가 있었다느니 뭐니 하는 망언을 계속 늘어놓으며 일본의 과거범죄를 부정, 미화하며 정당화해나서고있는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하나 과거청산을 회피하고 침략력사를 재현하려는 범죄적흉계의 발로이다.

일본의 비렬하고 파렴치한 행위는 조선인민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조선인민은 일본의 과거죄악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으며 그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

일본은 파렴치한 력사외곡, 재침책동을 당장 중지하고 하루빨리 과거청산을 하여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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