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수단이 북부와 남부로 갈라진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그 근원이 무엇이며 분렬이 과연 수단문제의 해결로 되는가 하는 문제가 론의되고있다.
수단분렬은 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의 직접적후과이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에 대해 공감하고있다.
수단의 하르툼에 있는 알 라쉬드전략연구쎈터의 연구원 할리드 디라르의 발언은 그 한 실례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식민지정책으로 한층 심화된 력사적이며 심리적인 감정의 축적은 이전에 남부수단인들의 마음속에 북부가 우월감을 가지고 남부를 대하고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수단은 500여개의 종족들이 살고있는 다민족국가이다. 수단이라는 나라이름은 아랍어로 흑인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수단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형태적으로 심장모양이라고 하여 아프리카의 심장이라고 불러왔다.
주민은 아랍인이 75%이며 남부지역에서는 주로 아프리카흑인이 산다. 아프리카흑인들은 여러 종족들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대체로 남부의 3개 지역에 퍼져있다. 북부와 중부에서는 이슬람교,남부에서는 그리스도교를 믿는다.
19세기 70년대부터 식민주의자들의 침입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877년부터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를 받았다. 수단인민들은 제국주의자들이 기여 든 첫날부터 식민주의자들을 반대하고 민족적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렸다. 민족적독립과 해방을 위한 수단인민들의 투쟁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후 더욱 앙양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남부수단만이라도 영구강점하기 위하여 남부의 흑인들과 북부 아랍인들사이에 반목과 리간을 조성하려고 책동하였다. 그러나 수단인민들은 북부와 남부를 분렬하여 통치하려던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1956년 1월 1일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포하였다. 독립후 수단에서는 제국주의자들의 분렬책동과 우익정당들의 치렬한 정권쟁탈전으로 정치적불안정과 혼란이 계속되였으며 자주 정권교체가 있었다. 1969년 6월에 정부는 자치를 요구하여 1963년부터 무장반란을 일으켜온 남부수단에 지역자치를 부여하였다. 1997년 4월 하르툼에서 정부와 반란분파들사이에 평화협정이 조인되였으나 내전은 계속되였다.
남부수단인인 한 정치문제분석가는 식민주의는 남부를 고립시키고 남부가 북부와 호상거래를 못하게 함으로써 두 지역사이에 이미전부터 존재해온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종교를 정치화하려는 북부의 일부 중추적인 정치인들의 시도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종교가 북부와 남부사이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 요인들중의 하나로 되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남부수단국민투표가 평화적인 분위기속에서 진행되고 북부의 정부가 즉시 분립결과를 인정하였지만 북부와 남부사이의 이른바 밀월이 오래동안 지속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석가들은 남부의 분리독립이 아프리카의 심장에 난 상처의 완치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북부와 남부사이의 새로운 충돌의 시작점으로 될수 있다고 우려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