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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의 성과 본
(평양 3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사람들의 성과 본은 예로부터 같은 피줄끼리 집단적으로 살아온 생활방식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 실장 정성호(남자,37살)는 성은 고대시기 문자를 사용하면서 씨족갈래를 표현하기 위해 쓰기 시작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세시기에 이르러 성은 수백개에 달하였다.

가장 흔한 성으로는 김, 리, 박, 정, 최, 윤, 류, 홍, 신, 한 등이고 두자로 된 성은 남궁, 독고, 선우, 황보, 부여, 사공, 석말 등을 들수 있다.

조선에서 성은 남자측의 혈족관계를 나타내는 칭호였으며 녀자들 역시 결혼을 하여도 자기 성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조선에서의 성은 력사적으로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적뉴대와 단결을 강화해온 기초로 되였다.

성이 많이 생겨나고 그것만으로는 혈연관계를 표시하던 본래의 기능을 원만히 수행할수 없게 되면서 본이라는것이 나타나게 되였다.

본은 같은 성안에서 시조가 다른 갈래를 고장이름으로 표시한것이다.

본은 성앞에 붙여 김해 김가, 전주 리가, 밀양 박가 등으로 부른다.

같은 본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리조시기에는 본안에서도 서로 자기 가문의 유명한 학자, 정치가, 명장 등을 조상으로 내세워 갈래를 달리하였다.

리조시기 본이 가장 많은것은 김가와 리가, 최가, 박가 등이였다.

조선에는 성과 본이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혼인을 맺지 않는 관례가 있는데 이것은 우수한 후대들을 낳아 키우기 위한 고심과 경험적인 고찰에 의하여 생겨난것이라고 볼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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