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8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 《녀성의 존엄과 권리를 짓밟는 세상》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얼마전 새로운 유엔기구인 《유엔녀성》이 창설되였다. 유엔부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전하면서 세계적으로 만연되고있는 남녀차별을 없애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며 녀성들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데 《유엔녀성》창설의 목적이 있다고 언명하였다.
공정한 여론이 녀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력사적성과》로 묘사하고있는 《유엔녀성》창설은 현시기 녀성문제가 국제적으로 심각하게 제기되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돌이켜보면 자기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며 지위를 개선하려는 녀성들의 투쟁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 특히 1909년 3월 8일 생존권과 정치적권리를 요구하여 대규모적인 시위와 파업을 단행한 미국의 시카고녀성들의 투쟁은 극심한 녀성천시사회인 미국사회는 물론 자본주의세계전반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이날의 시위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녀성으로 태여난것이 《죄》가 되여 천대와 멸시, 차별의 대상으로 되여온 미국녀성들의 쌓이고쌓인 울분과 분노의 폭발이였으며 남자들과 꼭같은 존엄과 권리를 요구하는 녀성들의 대중적항거였다.
시카고녀성들의 투쟁을 계기로 지구상에 전세계근로녀성들의 국제적명절이 생겨난지도 어느덧 10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온갖 불평등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려는 녀성들의 념원은 세계적범위에서 실현되지 못하고있다. 특히 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사회의 당당한 성원으로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며 일해나가려는 녀성들의 지향이 무참히 짓밟히고있다.
인권의 페허지대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녀성들이 그 첫째가는 희생물로 되고있다.
2007년 1월 일본의 후생로동상이란자가 녀성을 《아이낳는기계》라고 모독하고 이딸리아수상이 녀성을 상품처럼 대통령에게 《선물》하였다고 말한것을 비롯하여 자본주의나라 정객들속에서 종종 튀여나오는 듣기에도 거북하고 저렬한 소리들은 녀성의 인권과 존엄을 유린하는 자본주의사회의 그릇된 녀성관을 투시해볼수 있게 하는 단적실례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녀성들은 인권유린의 기본대상으로 되여 현대판노예로 전락되고있으며 그들의 존엄은 부유족속들에 의하여 여지없이 짓밟히고있다. 세계적으로 인신매매로 하여 근 250만명이 성폭행을 당하거나 강제로동에 종사하고있는데 그 대부분이 소녀들을 포함한 녀성들이다.
최근 2년동안에만도 미국에서는 10만여명의 녀성들이 매매되고 약 5만명의 녀성들이 성노예살이를 강요당하였다. 미국에서 성행하는 현대판노예산업을 두고 미국신문 《인터내슈널 헤랄드 트리뷴》이 《노예제도, 인신매매를 반대하는 새로운 전쟁을 개시할 때는 왔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한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인신매매범죄조직들이 떠들어대는 무용수선발, 료리사채용, 미용사모집 등 그럴듯 한 직업광고들에 속아 이 섬나라에 끌려온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동유럽출신의 수많은 녀성들이 《성산업》에 종사하고있다. 그들은 일본의 《성산업》경영주들에게 팔린 순간부터 모든 자유와 권리를 잃고 갖은 학대와 멸시속에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고있다.
변태적인 성욕을 추구하는자들의 시달림도 헐치 않은데다가 《주인》들의 학대 또한 가혹하기 그지없다. 만일 반항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야만 하는것이 그들의 기막힌 운명이다. 이러한것은 일본뿐아니라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잃은 수많은 녀성들이 상품화되여 인신매매의 희생물로 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부르죠아정객들이 《만민평등》, 《인권존중》을 부르짖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녀성들에 대한 혹심한 차별과 멸시, 박해는 례사로운 일로 되고있다.
생존권은 인간의 초보적인 권리이다. 물질적, 정신문화적재부를 창조하는 활동에 자기의 힘과 지혜를 바쳐가는 녀성들의 성실하고 헌신적인 노력에는 응당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녀성들의 처지는 참으로 한심하다.
반인민성과 반동성으로 하여 실업이 불치의 병으로 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업은 녀성들을 괴롭히는 첫째가는 원쑤이다. 녀성들이 직업을 얻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그것은 최근년간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로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오랜 력사와 자금력을 자랑하던 기업체들이 줄줄이 파산되고 《경영손실》을 메꾼다는 미명하에 기업체들이 저저마다 대대적인 해고소동을 벌리고있는 형편에서 더욱 그렇다.
자본주의나라 녀성들은 녀성이라는 단 한가지 리유로 기업체들에서 첫번째 해고대상으로 되고있다. 그들은 리윤추구에 눈이 어두운 경영주들로부터 무지막지한 사직을 강요당하고있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일자리를 제일 힘들게 얻는것도 녀성들이고 제일 쉽게 떼우는것도 그들이다.
요행 직업을 얻은 녀성들의 경우에도 로동생활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있다. 미국에서 녀성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은 남성들이 받는 임금의 76.2%에 불과하다. 이딸리아에서는 녀성근로자들이 남성근로자들에 비해 평균 16%나 적은 임금을 받고있다. 최근년간 오스트랄리아에서는 남성근로자와 녀성근로자사이의 임금격차가 17%로 늘어났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녀성빈궁자수가 날을 따라 늘어나고있는것은 사회적불평등과 녀성차별에 기인된다.
인간의 존엄과 정치적권리는커녕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실업과 빈궁에 쫓기는 자본주의나라 녀성들은 모성의 권리마저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녀성들이 돈에 목이 매여 태여난지 불과 10분도 되나마나한 갓난아이를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아이를 버리는것을 허용하는 법을 등대고 23명의 자식을 버리는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당장 해산을 앞둔 임신부가 돈이 없어 한지에서 해산하는 비극이 수시로 빚어지는것이 다름아닌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현실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성행하는 녀성들에 대한 폭력범죄는 수많은 녀성들의 정신과 육체를 사정없이 파괴하고있다.
가정은 녀성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나라 녀성들에게 있어서 가정은 행복의 요람이 아니라 《지옥》으로, 불행과 고통의 근원으로 되고있다.
유럽리사회가 발표한 조사자료에 의하면 유럽적으로 녀성들의 12~15%가 폭력범죄의 피해자로 되고있다고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평균 3일에 1명의 녀성이, 영국에서는 평균 일주일에 2명의 녀성이 가정폭력범죄에 의해 목숨을 잃고있다. 이딸리아에서는 폭행을 당한 녀성들이 670여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가정폭력행위가 얼마나 극심한가 하는것은 미국에서 《가정폭력방지법》이라는 괴이한 법까지 만들어지고 결혼증서를 발급할 때 《가정폭력부가세》를 받아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능히 짐작할수 있다.
오늘 자본주의사회에서 녀성으로 태여난것이 《죄》로 되여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의 버림을 받고 가정에서도 박해와 멸시의 대상으로 되고있는 수많은 녀성들이 삶에 대한 희망과 포부를 잃고 비관과 절망, 타락한 생활에 빠져드는가 하면 범죄의 길로 굴러떨어지거나 자살의 길을 택하고있다.
자본주의라는 썩어빠진 토양에 뿌리내린것으로 하여 인생의 막바지에서 모대기며 시들어가는 녀성들의 불우한 처지는 반인민적이며 반동적인 사회제도가 존재하는 한 언제 가도 달라질수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