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기사 달력>>2011년 5월 13일기사 목록
로동신문 《반드시 결산되여야 할 식민지총독정치의 죄악》
(평양 5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15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반드시 결산되여야 할 식민지총독정치의 죄악》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난 세기 전반기 일제는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전대미문의 악독한 식민지총독정치를 실시하였다. 일제의 총독정치는 본질에 있어서 세계지도우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조선민족을 멸살시킬것을 노린 가장 야만적이고 략탈적인 식민지폭압통치였다.

1910년 8월 강도적인 방법으로 불법비법의 《한일합병조약》을 날조한 일제는 그해 10월 1일부터 우리 나라에서 극악무도한 군사봉건적식민지통치방식인 총독정치를 실시하였다.

일제의 총독정치의 야수성과 략탈성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의 현지사환군인 《총독》이 행정, 립법, 사법, 군사지휘권 등 무제한한 권력을 틀어쥐고 마구 휘두르게 한데서 잘 알수 있다.

일제는 강압적으로 날조한 《조약》에 따라 《총독》이 우리 인민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작전들에 군대와 경찰무력을 임의로 동원하고 조선민족의 넋과 귀중한 문화유산, 전통을 말살하며 조선의 풍부한 자연부원과 경제적잠재력을 마음대로 략탈해갈수 있는 파쑈적인 악법들을 제정, 공포할수 있게 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력대 조선《총독》들을 모두 군국주의적이며 폭력적인 기질이 농후한자들로 선발하였다.

악명높은 군국주의자인 데라우찌는 조선초대《총독》의 자리에 앉기 바쁘게 《조선사람은 일본의 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라고 공공연히 줴치면서 우리 인민을 야수적으로 탄압, 학살하기 위해 미쳐날뛰였다.

일제는 조선강점 첫 시기 가장 야수적인 식민지통치방식인 무단통치를 실시하였다. 무단통치의 기본특징은 일제가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 인민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완전히 짓누르고 식민지노예로 지배한데 있었다. 일제는 무단통치의 간판을 내걸고 우리 인민의 정치적자유와 생존권을 말살하는데서나 경제적수탈을 감행하는데서뿐아니라 심지어 사상문화생활을 유린말살하는데서까지도 군사적폭력과 헌병, 경찰의 강권을 마구 휘둘러댔다.

1910년 12월 데라우찌가 공포한 이른바 《범죄즉결령》에 따라 일제는 우리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거미줄처럼 뻗은 헌병 및 경찰기구의 우두머리들에게 법적수속이나 재판도 없이 조선사람들을 마음대로 처형할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파쑈폭압적인 《범죄즉결령》에 따라 일제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붙여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체포, 투옥, 학살하는 야수적만행을 저질렀다.

무단통치시기 일제는 식민지통치의 경제적지반을 강화하기 위해 그 무슨 《토지조사사업》이니, 《림적조사》니 뭐니 하면서 우리 나라의 비옥한 토지를 강탈하고 울창한 산림들을 마구 도벌하였으며 민족산업의 발전을 악랄하게 가로막았다.

일제의 야만적인 무단통치는 우리 인민의 민족적분노와 울분을 폭발시켰다.

1919년 3월 1일 일제식민지통치를 반대하는 우리 인민의 애국적봉기는 삽시에 온 나라 방방곡곡에 퍼져갔다. 국내뿐아니라 조선사람이 살고있는 해외의 많은 곳에서도 대중적인 반일투쟁이 세차게 일어났다.

이에 질겁한 일제는 방대한 침략무력을 동원하여 3.1인민봉기에 떨쳐나선 애국적군중을 야수적으로 탄압, 학살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가혹한 파쑈폭압도 나라의 독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굳센 투쟁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3.1인민봉기후 교활한 일제는 종래의 헌병경찰제도에 기초한 야만적인 무단통치로부터 이른바 《문화통치》에로 이행하는 식민지정책을 실시하였다.

일제가 떠벌인 《문화통치》란 조선인민에 대한 《문화적개발》 즉 사상문화적예속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식민지적폭압과 략탈을 강화하는것이였다.

일제는 《문화통치》의 간판밑에 조선에 대한 잔악한 군사통치의 본질을 가리우기 위해 앞으로 《총독》은 무관만이 할수 있던것을 문관도 할수 있다는것, 헌병경찰제도를 《철페》하고 《보통경찰제도》로 넘어간다는것, 관리나 교원들에게 칼을 채우던것을 《페지》한다는것 등을 요란스레 선전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총독정치의 범죄적성격과 목적을 가리우기 위한 기만술책에 불과하였다.

일제의 《문화통치》의 반동성과 기만성은 그들이 일대 《혁신》이라고 요란스레 광고하였던 《보통경찰제도》의 진상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일제는 무단통치시기 《조선총독부》밖에서 독립적으로 헌병경찰기능을 수행하던 경무총감부와 각 도의 경무부를 《문화통치》시기에는 헌병기능을 수행하는 부서와 경찰기능을 수행하는 부서로 가르고 경찰기능을 수행하는 기구인 경무국과 경찰부만을 《조선총독부》와 각 도청에 각각 소속시켰다. 그리고 군사경찰임무를 수행하는 헌병기구는 독립적으로 존속시켰다. 이것은 일제의 군사적폭압기구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만을 가져왔을뿐이다.

1918년에 일제의 경찰기관이 750여개였다면 1921년에는 그 수가 무려 2,960개로 급격히 늘어난 사실은 일제가 떠든 《문화통치》의 기만성을 적라라하게 폭로해주고있다.

일제는 방대한 규모로 확장된 경찰폭압기구에 의거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야수적으로 탄압하는 한편 경제적략탈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1920년대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경제적략탈에서 기본을 이룬것은 농촌수탈이며 그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룬것이 《산미증식계획》의 간판밑에 감행된 쌀의 대량적략탈이였다.

이 계획에 따라 일제는 1927년부터 1931년까지의 기간에만도 우리 나라에서 660여만석의 쌀을 략탈해갔다. 일제의 악착한 쌀략탈책동으로 조선사람들은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다 못해 정든 고향을 버리고 살 곳을 찾아 류랑의 길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총독정치를 더욱 강화할 목적으로 기만적인 《문화통치》를 극악한 파쑈폭압통치로 바꾸었다.

이 시기 일제는 대륙침략전쟁에 미쳐날뛰면서 《비상시국에 대처하여 조선반도의 안전을 도모》한다느니, 《림전체계, 교전체계》를 세운다느니 하는 구실밑에 류례없는 식민지파쑈폭압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의 파쑈폭압통치는 침략전쟁이 확대되고 그들의 패망이 가까와짐에 따라 더욱 발광적으로 감행되였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총독》으로 우가끼, 미나미, 고이소, 아베 등 일본에서 가장 악질적인 파쑈분자들을 골라보냈다.

일제는 이자들을 통하여 우리 나라를 포악무도한 파쑈적공포정치의 란무장으로, 탄압과 학살이 더욱 횡행하는 인간생지옥으로 전변시켰다.

일제가 1930년대이후 우리 나라에서 실시한 식민지파쑈폭압통치는 반혁명적폭력에 의거한 가장 로골적이고 악랄한 정치적폭압이고 무지막지한 민족말살, 경제적수탈행위였다. 이것은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이미 실시한 무단통치의 야만성과 《문화통치》의 교활성을 하나로 결합한 가장 강도적이고 포악무도한 식민지파쑈통치였다.

우리 나라에 대한 파쑈폭압통치시기 일제는 식민지통치기구에서 경찰, 헌병, 군대, 검찰, 사법 등 직접적인 군사정치적폭압기구와 폭압력량을 더욱 강화하고 각종 반동적인 악법의 련속적인 조작과 그의 폭력적인 집행을 식민지통치의 기본수단으로 삼았다. 이 시기 일제는 《문화통치》기간 우리 인민에게 형식상으로나마 허용하는척 하였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 등 초보적인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마저 송두리채 유린하였으며 우리 인민에 대한 동화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조선민족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일제는 각종 파쑈적인 《징용》, 《징병》, 《정신대》, 《공출》 등을 통하여 우리 나라에서 침략전쟁을 위해 인적 및 물적자원을 마구 략탈, 징발하였다.

악독한 일제는 《조선사람도 사람인가. 정어리도 물고기인가?》라고 줴치면서 조선사람을 애당초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짐승다루듯 하였으며 노예처럼 혹사시키다가 아무때나 임의의 장소에서 고문하거나 죽여버리였다.

참으로 지난날 일제가 우리 나라를 불법강점하고 류례없는 날강도적인 식민지총독정치를 강행실시하면서 저지른 범죄는 그 무엇으로써도 씻을수 없는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반동들은 일제의 범죄적인 조선침략력사를 외곡, 미화분식하면서 과거청산을 한사코 회피하고있다.

그들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조선에 문명을 가져다주었다.》느니, 《일본의 식민지지배는 조선사람들의 요구에 따른것》이였다느니 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망발들을 마구 늘어놓으면서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통치죄악을 정당화하려고 획책하고있다.

죄악으로 가득찬 력사를 부정하고 과거청산을 한사코 회피하는 일본의 철면피한 태도는 우리 인민의 복수심을 더욱 격증시키고있다.

과거청산은 일본의 법적, 도덕적의무이고 더는 미룰수 없는 력사적과제이다.

우리 인민은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일본의 과거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어느때든 그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

Copyright (C) KOREA NEWS SERVICE(K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