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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준 조선인들 (11)
(평양 6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남해안과 서남해안일대 조선이주민의 대규모집단이 또다시 일본에 건너간 결과 일본에서 소국형성은 급격히 진척되여갔으며 서부일본지역은 더욱 급속히 개척, 개간되여갔다. 이를 증명하는것이 자루식쇠도끼의 존재이다.

야요이문화시기 일본의 흙깔이, 논갈이의 도구는 나무로 된 농구였다. 야요이문화시기 전기의 농구들은 조선식마제석기인 턱자귀, 통도끼 등으로 깎아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차 쇠로 된 공구들로 바뀌여지기 시작하였다. 야요이문화시기 중기와 말기의 유적들에서 자루식쇠도끼가 수많이 나온다. 이것은 야요이문화시기 전기말~중기초엽에 일본땅에 진출한 조선이주민집단이 쓰던 물건들이다. 왜냐하면 자루식쇠도끼의 분포는 곧 좁은놋단검관계 문화유물분포권과 일치하기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 쇠도끼가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비로소 나온것은 아니다. 구마모도 사이또산무덤들에서도 나온 례가 있다. 하지만 야요이문화시기 중기이후처럼 많이 나온 례는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조선이주민집단이 북규슈일대에 진출하여 자루식쇠도끼로 나무를 찍고 창대패같은것으로 나무를 다듬어 농구들을 만들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그야말로 쇠도끼는 당시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식량이였던 쌀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를 제작하는 공구로서 조선이주민집단의 독점물이였다.

바로 조선이주민집단은 자루식쇠도끼를 가지고 일본렬도의 울창한 원시림을 개간했을것이다.

어떤 일본학자는 북규슈일대에서 나온 그 시기의 자루식쇠도끼를 락랑문화와 결부시켜 마치도 그것이《대륙적》영향에 의한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 나라는 고조선시기부터 쇠부리기술을 발전시켜왔다. 또한 기원전후시기에 비로소 쇠를 가지게 된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일본 북규슈에서 나오는 자루식쇠도끼는 완전히 조선것이다.(교수, 박사 조희승)(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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