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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과 다까기 다께오
(평양 7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

어린이들의 흐름
바다의 물결같고
이 바다 물결우에
즐겁게 떠있는
배와도 같으신분

이 즉흥시는 조선을 방문한 일본 《요미우리신붕》 론설위원회 고문이였던 다까기 다께오가 주체60(1971)년 12월 31일 저녁 학생소년들의 설맞이모임장소인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면서 읊은것이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궁전에 도착하시자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장내를 진감하고 《아버지!》, 《아버지원수님!》하고 부르며 저저마다 그이의 넓은 품에 안기는 어린이들과 선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어쩔수 없었다.

접견석상에서 그는 주석께 《저는 지금 대단히 흥분되여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의 많은 나라 국가지도자들가운데서 어린이들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지도자는 오직 김일성각하 한분이시라고 생각하기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1972년 1월 그는 주석을 또다시 만나뵙고 조선에 대한 방문기 《령도의 예술가 김일성》을 집필하였다.

이 기사가 수십회에 걸쳐 《요미우리신붕》에 련재되였을 때 그는 일본반동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집을 저당잡히고 안해마저 잃었지만 주저와 동요를 몰랐다.

다까기 다께오는 일조문화교류협회를 결성하고 조일 두 나라 인민들사이의 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1973년 봄 어느날 일본을 방문하고있던 조선기자동맹대표단이 그의 집을 찾았다.

그들로부터 주석께서 대표단이 일본에 가면 꼭 다까기 다께오선생을 만나 자신의 인사와 함께 선물도 전달하고 선생의 부인이 세상을 떠난데 대해 조의를 전할것을 당부하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그는 매우 감동되였다.

1975년 5월 조선을 방문한 그를 만나주신 김일성주석께서는 나는 오늘 하루동안을 선생을 위하여 보내기로 하였다, 오늘은 당신이 일조문화교류협회 리사장이고 나는 공화국의 주석이라는 직분을 떠나 옛친구로서 담화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주석께서는 그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하려 한다는것을 아시고 70고령인 그의 건강이 념려되시여 특별비행기를 띄우도록 하시고 유능한 의사까지 보내주시였다.

그가 도서 《백두산에 타오르다》 제1부와 제2부를 집필하였을 때에는 친히 보아주시였으며 그 책을 조선에서도 출판하도록 하시였다.

그에 고무된 그는 더욱 분발하여 제3부를 집필하던중 끝내 쓰러지고말았다.

최후를 예감한 그는 제자들에게 조선민족은 김일성주석을 중심으로 반드시 통일을 이룩하고야말것이다, 이것이 력사가 나가는 방향이다, 일본사람들은 이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나는 평양에서 생을 마치고싶다고 말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그의 사망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가슴아파하시면서 신문에 부고도 내고 공화국의 해당 사회단체들에서 조의도 표시하도록 하시였으며 몸소 자신의 명의로 유가족들에게 조전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그를 원형으로 하는 예술영화도 만들도록 하시였다.

참으로 사상과 정견, 신앙과 국경을 초월하여 맺어진 숭고한 우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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