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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꾸릴렬도앞바다에 수장된 조선인피해자들의 원한》
(평양 7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9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꾸릴렬도앞바다에 수장된 조선인피해자들의 원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로씨야의 깜챠뜨까반도와 일본의 혹가이도사이에 위치한 꾸릴렬도는 우리 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하지만 이 꾸릴렬도의 앞바다에도 지난날 일제에게 짓밟혀 온갖 불행과 고통만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피에 절은 수난의 력사가 비껴있다.

일제의 패망이 가까와오던 1944년 7월 9일 꾸릴렬도앞바다에서는 구일본륙군의 수송선 《다이헤이마루》가 폭침되여 거기에 탔던 수백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한꺼번에 수장되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희생자들로 말하면 침략전쟁에 미쳐날뛰던 일제가 꾸릴렬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짐짝처럼 배에 옮겨싣고 끌고가던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들이였다.

저들의 패망이 박두해옴에 따라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낀 일제는 어떻게 해서나 일본본토라도 《사수》할 목적밑에 군사전략상 요충지로 간주되는 꾸릴렬도 북쪽섬들을 군사기지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미 꾸릴렬도의 일부 섬들에 여러개의 비행장들을 건설한 일제는 전략적위치의 중요성과 안개가 짙은 이 지역의 기후조건 등을 고려하여 7개의 비행장을 더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하루라도 그 완공을 앞당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이러한 일제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히 필요되는것이 로동력이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이곳에는 거의나 사람이 살지 않고있었다. 때문에 일제는 《군속》의 명목으로 일본에 강제로 끌어온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을 이곳에 옮겨놓는 방법으로 군사기지건설에 필요한 로동력을 충당하려고 하였다. 그 실현을 위해 일제는 민용선박들까지 수송선으로 개조하였다.

《다이헤이마루》도 원래는 일본 다이요해운주식회사에서 건조한 6,284t급선박이였는데 일제의 그러한 책동에 의해 구일본륙군의 수송선으로 되였다.

《다이헤이마루》가 혹가이도의 오따루를 출항한것은 1944년 7월 5일이였다.

당시 오따루의 군사기지건설장에서는 강원도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여러 지방에서 끌려온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이 일제의 가혹한 채찍밑에서 소나 말처럼 혹사당하며 고역을 치르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비상소집을 일으킨 일제는 《이제부터 너희들은 화태(싸할린)에 가게 되였다.》고 하면서 1,000여명의 조선사람들을 강제로 《다이헤이마루》에 태운 다음 옴짝달싹 못하게 출입문에 큼직한 자물쇠까지 채우고나서 배를 출항시켰다.

그때 수송선에는 조선사람들외에 구일본군군인들도 탔으며 각종 군수물자와 건설자재, 식량 등이 적재되여있었다.

오따루를 출항한 《다이헤이마루》는 싸할린으로 향한것이 아니라 꾸릴렬도의 빠라무쉬르섬으로 항행하였다.

꾸릴렬도주변의 바다물온도는 한여름이라고 해도 매우 차거웠다.

일제침략군은 승선하기 전 저들은 여름군복대신 겨울군복을 갈아입으면서도 조선사람들에게는 다 해진 여름작업복을 내주었다.

여러날동안 해빛 한점 스며들지 않는 컴컴한 배밑창에 짐승처럼 갇힌 조선사람들이 추위와 배고픔, 배멀미에 시달리다 못해 하나둘 쓰러져가던 7월 9일 오전이였다.

갑자기 《꽝, 꽝》 하는 폭음과 동시에 차디찬 바다물이 배밑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배는 말그대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하였다. 화약내짙은 연기가 꽉 들어차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는 속에서 출구를 찾아 여기저기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사람들의 아우성소리가 배밑창을 들었다놓았다.

그러나 일제침략군이 배밑창에서 갑판으로 조선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바깥문을 든든히 막아놓았기때문에 그들중 수백명이 참기 어려운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대로 바다물속에 가라앉고말았다.

요행 빠져나갈수 있는 구멍을 찾아 배우로 올라온 얼마 안되는 조선사람들중 일부만이 구사일생으로 슘슈섬이라는 곳에 올랐다.

하지만 나라잃은 망국노의 운명이 달리는 될수 없는것이다. 일제는 겨우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에게 슘슈섬에서 인간이하의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조선사람들에게 한끼에 100g정도 되나마나한 잡곡밥과 콩깨묵으로 만든 두부 한두쪼각을 주고는 하루 15시간이상 비행장건설에 내몰았다. 너무도 일이 힘들고 배고파서 채 익지도 않은 잣을 껍질채로 먹었다가 홍문이 막혀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었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풀뿌리를 캐먹거나 쥐를 잡아먹은 사람들도 있었다. 일제침략군에게 매맞고 불구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참으로 일제는 사람의 가죽을 쓴 야수의 무리였다.

이자들은 애당초 조선사람들의 생명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짐승보다 못한 일제침략군에 의해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고역을 치르다가 생죽음을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본은 과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천추에 용납 못할 특대형죄악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오히려 《피해자》의 흉내를 내며 아닌보살하고있다.

일본은 비렬한 오그랑수로 과거청산을 한사코 회피하려고 모지름을 쓰고있다.

초보적인 량심도 없고 인륜도덕도 모르는 일본의 후안무치한 행위는 전체 조선인민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우롱이며 이중삼중의 범죄이다.

철면피한 일본에 대한 우리 인민의 적개심과 복수심은 하늘에 닿고있다.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꾸릴렬도앞바다에 수장된 조선사람들이 웨치던 원한과 분노에 찬 목소리가 쟁쟁히 들려오는듯싶다.

이 원쑤를 갚아달라.

그렇다.

우리 인민은 지난날 조선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 재난을 들씌운 일제의 극악무도한 죄행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그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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