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오늘 조선과 중국 두 나라 군대와 인민은 조중친선협조관계가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줄기차게 발전하고있는 력사적인 시기에 조중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체결 50돐을 공동으로 뜻깊게 기념하고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중국의 지도자들과 함께 주체50(1961)년 7월 11일 조중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심으로써 반제공동투쟁속에서 맺어진 조중친선의 전통이 온 세상에 힘있게 과시되였다.
조중 두 나라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서로 손잡고 긴밀히 지지협조하면서 조중친선의 오랜 력사적뿌리를 마련하였으며 세기와 세기를 이어 인류해방투쟁사에 길이 빛날 혁명적의리의 아름다운 장들을 수놓아왔다.
경애하는 김일성주석께서는 일찌기 혁명투쟁의 첫 시기부터 조중인민의 반일통일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독창적인 로선을 내놓으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로고를 다 바치시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주석께서는 동녕현성전투(1933.9)를 통하여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공동행동의 빛나는 장을 펼치시고 조선혁명가들의 영웅적기개와 반일인민유격대의 전투적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도록 하시였다.
그후에도 라자구전투(1934.6), 무송현성전투(1936.8) 등 중국항일부대들과의 군사작전을 승리적으로 조직지휘하시여 그들의 전투사기를 높여주고 통일전선을 다시한번 튼튼한 궤도우에 올려세우시였다.
주석께서 동북구국군 총사령이였던 왕덕림을 반일성전에 다시 뛰여들게 하신 이야기는 조중인민의 항일혁명사에 뜨겁게 아로새겨져있다.
일제의 사면포위에 빠진 왕덕림을 장개석의 남경정부마저 랭대하던 1933년 1월 그이께서는 얼마 안되는 대원들을 친솔하시고 수백리길을 달려가시여 와해직전의 구국군부대에 뜨거운 의리와 덕망을 베푸시였다.
왕덕림은 반일공동투쟁의 변함없는 전우로 믿어주시는 그이의 두터운 신의와 대해같은 은덕에 격정을 터뜨리며 끝끝내 반일항전에 나서게 되였다.
주석께서는 1930년대 중엽 국제당이 중국동북지방에서 활동하고있는 항일부대들을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로 갈라 편성할데 대한 의견을 내놓았을때에도 혁명적의리에 넘치는 용단으로 대답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부대가 국경지대에 진출하여 조선혁명에 주력한다고 해서 중국항일부대들과의 공동투쟁을 약화시킬수는 없다고 단호히 선언하신 그이께서는 오히려 많은 지휘성원들을 중국항일부대에 보내주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1940년대 후반기 중국에서 전국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있을 때에도 항장원화(장개석과 싸워 중국을 도와준다는 뜻)로 중국인민과의 친선단결과 전투적우의를 더욱 두터이하시였다.
당시 전 중국에 대한 지배를 꾀하고있던 장개석도당은 심양, 사평, 장춘, 길림 등 큰 도시들과 철도, 대도로들을 점거하였으며 남북만의 넓은 지역에로 점령지역을 급속히 확대해나가고있었다.
중국 동북민주련군은 동만과 북만의 일부 지역을 제외한 동북의 넓은 지역을 내주고 압록강계선에로 후퇴하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 료녕군구 사령원이였던 소화는 김일성주석께 긴박한 정황을 알려드리고 단동에 오시여 도와주실것을 요청하였다.
그때 단동시교외에서는 적아간의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적비행기들의 기총사격이 그칠새 없었다.
하지만 주석께서는 일신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곳을 찾으시여 전쟁의 근본적전환을 위한 전략전술적대책들을 명쾌히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당면하여 농촌지역에 강력한 근거지를 꾸리고 그에 의거하여 적후에서 대부대기동전과 유격전을 널리 전개함으로써 적들의 력량을 약화소멸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싸우다 정 곤난하면 백두산으로 들어가라, 조선은 당신들의 믿음직한 후방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후날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은 석상에서 소화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단동에까지 건너오시여 도와주신 은혜를 잊을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주석동지의 그 말씀에서 힘을 얻고 싸워 승리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지원하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전체 조선인민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무로 된다고 하시면서 우수한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을 동북지방으로 파견하여주신 그이께서는 중국공산당 조직부장이였던 진운이 모택동주석의 특사로 평양에 왔을때에도 뜨거운 혁명적우의로 도와나서시였다.
당시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이 북침전쟁도발책동에 광분하고있는 조건에서 정규무력건설을 위해 유능한 군사정치간부들과 군수물자들이 절실히 필요하였지만 그이께서는 10여만정의 무기와 탄약, 많은 량의 군복천과 의약품 등을 지원하시여 중국혁명의 승리에 크게 공헌하시였다.
약 3년간의 동북해방전쟁기간 조선인부대들과 중국동북인민해방군 부대들은 힘을 합쳐 정예를 자랑하던 100만의 국민당군과 토비부대를 격파하고 그중 70만명을 살상포로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동북을 비롯한 중국 각지에서의 해방작전에 참가한 조선청년들은 무려 수십만명에 달하였으며 적에게 강점된 도시들과 군사적요충지들을 탈환하고 전쟁국면의 전환을 이룩하는데서 강건, 박락권, 최광 등의 조선인부대들은 주도적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인민의 사심없는 지지성원을 두고 중국의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의 붉은 피가 스며있다고 하면서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다.
조중 두 나라 로세대령도자들께서 마련해주신 조중친선은 중국인민의 항미원조속에 혈연적뉴대로 더욱 억세게 이어졌으며 두 나라사이의 강력한 동맹관계의 초석이 굳건히 다져졌다.
미제가 조선전쟁을 일으키자 중국당과 정부는 항미원조보가위국의 기치밑에 우수한 아들딸들로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조선전선에 내보냈다.
모택동주석이 두 나라 동지들은 친형제와 같이 단결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공동의 원쑤를 타승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것이라고 한 말의 깊은 뜻을 새긴 지원군용사들은 무한한 희생성과 용감성을 발휘하였다.
자기들의 운명을 하나로 련결시킨 조중 두 나라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이렇듯 항일항미의 혈전들을 함께 치르면서 단결과 우의의 정을 두터이 하였다.
지난해에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전 중국인민지원군 사령부를 찾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모택동동지의 아들 모안영동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명무명의 지원군용사들이 조선전선에서 자기의 고귀한 청춘과 생명을 서슴없이 바쳤다고 하시면서 60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조선의 산과 들에 붉은 피를 뿌리며 영용하게 싸운 그들의 영웅적위훈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언제나 잊지 않고있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주은래총리와 함께 50년전에 마련하신 조중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의 체결은 장구한 혁명투쟁과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피로써 맺어진 전통적조중친선을 줄기차게 발전시킬수 있게 한 튼튼한 토대로 되였다.
이 조약에 기초하여 조중 두 나라 당과 정부와 인민은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추동하면서 모든 분야에 걸쳐 친선과 협조의 뉴대를 부단히 확대발전시켜왔다.
두 나라 인민은 호상 존중하고 련대성을 강화함으로써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지역에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짓부시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오늘 조중친선협조관계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와 중국의 새세대 령도집단의 깊은 관심속에 활력있게 발전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두 나라 로세대혁명가들의 고귀한 넋이 어려있는 전통적인 조중친선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도록 하시기 위해 새 세기에 들어와서만도 7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시고 두 나라 관계발전력사에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으시였다.
특히 올해 5월에 있은 위대한 장군님의 력사적인 중화인민공화국방문은 산과 강이 잇닿아있고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조중친선이 모진 풍파와 시련을 이겨낸 불패의 친선으로서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변함이 없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주었다.
세계인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중국방문을 력사적사변으로 평가하면서 국제관계에서 친선단결의 빛나는 본보기로 되는 조중사이의 깊고도 오랜 혈연적뉴대가 앞으로 더욱 강화되리라는데 대하여 확신하고있다.
반제자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길에서 맺어진 전통적인 조중친선의 바통은 두 나라 당과 정부와 인민들의 불변의 의지와 공동의 노력에 의해 세세년년 이어질것이며 그 생활력은 더욱 힘있게 발휘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