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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계급적대립과 차별은 자본주의사회의 필연적산물》
(평양 7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22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계급적대립과 차별은 자본주의사회의 필연적산물》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르죠아정객들은 《국민적시책》이요 뭐요 하면서 저들이 마치 인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있는듯이 광고하고있다. 이것은 《국민》이라는 말로 저들의 반인민적정체를 가리우고 자본주의사회에 존재하는 계급적대립과 모순을 감싸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착취계급은 그 계급적본성으로 하여 인민대중과 대립되여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민대중을 억압하고 지배하는것을 계급적본성으로 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는 착취계급이 인민대중을 억압, 지배하는 사회이다.착취계급은 인민대중을 억압, 지배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특권적지위를 유지할수 없다.그것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고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날로 강화되기때문이다. 이로부터 착취계급은 자기의 특권적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인민대중을 억압하고 지배한다.

우선 자본주의나라 반동지배층은 인민대중을 정치의 대상으로만 삼고 그들을 일체 정치활동에서 제외시켜 사회에 대한 정치적지배를 실현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시하는 정치는 독점재벌들을 비롯한 착취계급의 리익을 대변하는 반인민적인 정치, 억압정치, 독재정치이다.

자본주의나라 국회는 부르죠아독재정치를 《의회민주주의》의 간판으로 가리우기 위한 위장물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나라 국회에는 독점재벌들의 대리인들이나 들어갈수 있고 근로인민의 진정한 대표들은 국회의석을 차지할수 없게 되여있다.

자본가계급은 저들의 독점적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동적인 국가통치수단들을 동원하여 근로인민대중의 혁명적진출을 가혹하게 탄압, 억제한다.

미국에는 10여개의 정탐기관들이 있다.그것들은 국내 국가기관들에는 물론 병원, 식당, 연구기관, 출판기관 등 도처에 밀정을 박아넣고 정보를 수집하며 진보적인사들을 색출하고 인민들을 탄압한다.

미국뿐이 아니다.다른 자본주의나라들에서도 인민대중의 정치적자유와 권리가 심히 유린당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치의 반동화가 심화될수록 그를 반대하는 근로인민대중의 투쟁이 강화되며 그에 따라 계급적대립과 모순이 격화되게 된다.

자본주의나라 반동지배층은 또한 그 계급적본성으로 하여 근로인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략탈을 악랄하게 감행한다. 자본주의사회는 사적소유와 그에 의하여 산생되는 극단한 개인주의에 기초한 반인민적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불피코 사회를 적대되는 계급으로 분렬시키고 계급적대립과 사회적불평등을 가져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소수 착취계급은 생산수단과 사회적재부를 독차지하고 그를 공간으로 하여 근로인민대중에 대한 무제한한 착취와 략탈을 감행한다. 그들은 근로인민대중은 죽건살건 상관하지 않고 오직 더 많이 착취하고 략탈하는데만 리해관계를 가질뿐이다.

자본가들은 로동강도를 높이며 최저임금을 지불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근로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한다. 사회물질적재부의 창조자인 근로인민대중이 초보적으로 누려야 할 생존권마저 빼앗긴채 죽지 못해 살아가야만 하는것이 자본주의사회의 비극적현실이다.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2008년에 빈궁자수는 그 전해에 비해 250여만명 더 늘어나 3,980만명에 달하였다. 2008년에 1,700만세대의 4,900여만명의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림으로써 14년래의 최고기록을 세웠다.2009년 3월에 캘리포니아주의 쌔크러멘토우시에 수백명의 집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움직이는 천막도시》가 나타나 경찰이 이 《도시》를 시외로 내모느라 소동을 피운것은 돈이 없으면 쓰고 살 집은 고사하고 사람축에도 들지 못하며 버림을 받아야만 하는 반인민적인 자본주의사회의 참혹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기업이 입는 경영손실을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수많은 근로자들을 일터에서 내쫓는 사회도 다름아닌 자본주의사회이다.

착취와 압박이 있는 곳에서는 반항이 있고 투쟁이 일어나기마련이다.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고 생존권과 로동의 권리, 민주주의적자유와 참된 삶을 요구하는 근로인민대중의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내부모순과 계급적대립을 더욱 격화시키고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자본주의나라 반동지배층이 그 계급적본성으로 하여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극도로 차별하고 증오하는것이다.

사람은 자주적이고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사회적존재이다.따라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힘있는 존재로 된다.

그러나 부르죠아지들은 사람을 귀중한 존재로 보는것이 아니라 물질적생산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상품으로 매매되는 로동력을 소유한 하찮은 존재로 여긴다.

미국은 인종주의의 아성이며 인종차별과 인간증오가 극심한 나라이다. 미국의 흑인운동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은 《그 어느때에 가서는 이 나라가 각성되여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된다는것은 자명한 진리이다.>는 나의 훈계를 진정으로 실현하게 될것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예언한 미국의 《각성》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인종차별과 인간증오는 지금도 사회생활의 각 분야에서 우심하게 나타나고있다.

특히 녀성들에 대한 성폭행은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적문제의 하나로 되고있다.미국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성폭행범죄로 해마다 약 50만명의 녀성들이 피해를 입고있다.

인간증오사상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린이들은 그 첫째가는 희생물로 되고있다.

일본후생로동성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이 나라에서는 해마다 4만건이상의 어린이학대행위가 감행되고있다. 일본에서 부모들의 비인간적인 학대행위로 목숨을 잃는 어린이들의 수는 년 평균 50~60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만도 일본에서 어린애가 뜨거운것과 찬것을 인식할수 있는 나이인가를 시험해보기 위해 빵구이로와 세탁기에 넣어 죽인 부부범죄사건, 19살 난 녀인이 2살짜리 딸을 애기목욕통의 끓는 물에 1분정도 넣어 두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힌 사건 등이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정상적인 사고력을 가지고서는 상상할수 없는 일이다.

인간증오는 착취계급, 억압자들에게 고유한것이다.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와 압박은 인민에 대한 사랑, 믿음과 결코 량립될수 없으며 착취자와 피착취자, 억압자와 피억압자사이에는 사랑과 믿음이란 절대로 있을수 없다. 그들사이에는 오직 계급적대립과 증오만이 있을뿐이다.

부르죠아반동들이 《초계급적인 사랑》과 《만민평등, 복지》에 대하여 떠벌이는것은 자본주의제도의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성격과 본질을 가리우고 계급적모순과 증오를 위장하기 위한 교활한 술책이다.

부르죠아지들은 《국민적시책》이요 뭐요 하고 《국민》이라는 표현으로 사회의 계급적대립과 모순, 인간증오현상을 덮어버리려 하고있다.

계급적대립과 차별인간증오는 자본주의사회의 필연적산물이다.

부르죠아정객들이 《국민적시책》이요, 《만민평등》이요, 《박애》요 뭐요 하고 제아무리 광고하여도 자본주의사회의 반동성과 반인민성을 결코 가리울수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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