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7일발 조선중앙통신)27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승리의 7.27이 전쟁도발자들에게 준 교훈》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수도 워싱톤에는 흑백을 전도하는 《조선전쟁기념비》가 있다. 그것은 미제가 조선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쟁도발자로서의 저들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목적에서 세운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데 있다. 이 《기념비》는 침략의 상징인 미국의 성조기를 향해 걸어가는 미제침략군병사들을 형상하고있다. 이것은 사실상 미국인들이 새로운 조선침략전쟁에 떨쳐나설것을 고취하고있다. 다시말하여 미국인들이 지난 조선전쟁방화자들의 뒤를 이어 피로 얼룩진 성조기를 들고 새로운 조선침략전쟁에 참전하라는 호소나 같은것이다. 한사코 힘으로 우리 인민을 저들의 노예로 만들고 삼천리조국강토를 탐욕의 아가리로 집어삼키려는 미국의 침략적본성과 야망은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오산하고있다. 력사는 침략과 략탈을 업으로, 유희로 여기며 다른 나라와 민족의 희생의 대가로 생존해가는 미제침략자들이 조선전쟁에서 어떤 운명에 처하였던가를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아래의 두장의 사진은 그에 대한 력사의 증견자이다.
끝간데없이 세워진 무수한 십자가들, 전쟁대포밥이 되여 조선전쟁에 뛰여들었다가 무주고혼의 신세가 된 졸개들의 무덤앞에서 공포와 수심에 잠겨 서있는자는 미제1해병사단장 스미스이다. 두차례의 세계대전에 참가하였던 그는 학살과 파괴, 략탈을 전업으로 삼아온 전쟁광신자였다. 화약내풍기는 싸움터마다에서 남다른 쾌락을 느껴온 이자는 조선전선에 흉물스러운 낯짝을 들이밀며 《승리》를 확신하였다.
당시 미제침략군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조선전쟁을 도발하면서 미군부우두머리들은 72시간안에 《전쟁을 결속지을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여론은 미국이 우리 인민을 어린아이손목을 비틀듯이 가볍게 이길수 있다고 속단하였다.
인디안들의 해골더미우에서 생겨났으며 끊임없이 벌려온 침략전쟁들에서 《전승》만을 자랑해온 미국, 이러한 침략자들이 창건된지 불과 얼마 안되는 청소한 우리 공화국을 단숨에 짓뭉개려고 자기 나라 륙군의 3분의 1, 공군의 5분의 1, 태평양함대의 대부분 그리고 15개 추종국가군대와 남조선괴뢰군 및 일본군국주의자들을 포함한 200여만명의 방대한 병력을 조선전쟁에 동원하였으니 누군들 그들의 《승전》에 대해 의심하였겠는가.
그러나 전쟁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미국은 3일이 아니라 3년동안이나 전쟁을 치르고서도 력사상 체험해본적이 없는 대참패를 당하였다.성조기에 새겨진 미제의 《승리》와 《영예》의 《전통》은 조선전쟁에서 풍지박산이 났다. 미국과 서방의 숱한 전쟁책략가들, 《명장》이라고 일컫는자들이 품을 들여 준비한 군사전략과 작전들이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기묘하고 독창적인 전략전술과 전법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사진이 보여주듯이 조선전쟁에서의 참패를 만회하기 위한 《크리스마스총공세》에 참가하였던 미제1해병사단은 장진호반에서 무리로 녹아났다.
크리스마스성찬을 고향에 가서 먹게 될것이라고 희떱게 고아대던 그들이 제명을 못살고 십자가밑에 영원히 묻히게 되였다. 숱한 병졸들을 땅속에 묻은 사단장 스미스는 《패전장군》에 《무덤장군》이라는 더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스미스의 초췌한 몰골과 졸개들의 죽음은 그대로 조선전쟁에 뛰여든 미호전광들의 비참한 말로였고 미제의 패배상의 축소판이였다. 조선전쟁시기 미제8군사령관이였던 워커는 우리 인민군적후부대의 매복에 걸려 즉사하였는가 하면 미제24사단장 띤은 목숨을 건져보려고 허줄한 병사복을 입고 도망치다가 우리 인민군대의 나어린 병사에게 포로되는 희비극을 연출하였다.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있었던 남북전쟁때에 바위같이 방어를 잘했다고 하여 《바위련대》라는 별칭을 받았던 부대를 둔 일명 《상승사단》이라고 하던 미제24사단은 대전에서 완전히 괴멸되였다.
미국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조선전쟁에서의 《미군의 손실은 미국이 다섯번의 대전쟁 즉 독립전쟁, 1812년전쟁, 메히꼬전쟁, 미에(미국-에스빠냐)전쟁 및 필리핀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다 합친것보다 2배이상 더 많다.》라고 전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패자의 몰골로 정전협정문건에 조인하는 《유엔군》사령관 클라크를 보라.
1951년도에 철직된 맥아더나 《하기 및 추기공세》를 벌렸다가 톡톡히 쓴맛을 본 릿지웨이보다도 클라크의 처지는 더욱 가련하였다.
-나는 정부의 지시를 수행함으로써 력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띠게 되였다.
클라크의 치욕은 곧 미국의 치욕이였다. 조선전쟁에서 제국주의우두머리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는 산산이 깨졌다. 미국은 패전의 고배를 마시며 세계면전에서 대망신을 당하였다. 조선전쟁에서의 패배로 하여 미제국주의의 내리막길의 시초가 열렸다.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기간 조미대결은 계속되여왔으며 여기에서 미국은 언제나 패자의 수치를 면치 못하였다.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 《EC-121》대형간첩비행기사건과 판문점사건, 조미핵대결…
미국의 도발에 의한 첨예한 조미군사적대결전들은 매번 미국의 굴복과 사죄로, 우리의 승리로 결속되였다.
미국은 지나온 조미대결력사가 보여준 심각한 교훈을 똑똑히 새겨야 한다.
원쑤들에 대한 적개심과 필승의 신념으로 가슴 불태우고있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승리의 7.27만이 있을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