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7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사상과 리념, 주의주장보다 민족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긴 남조선의 애국적기업가들가운데는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도 있다.
일찌기 《기업으로 애국한다.》는 지조를 품은 그는 자기 한생의 거의 전부를 기업에 바치였지만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맛보지 못하였다.
그러던 그가 말년에 《참다운 애국은 통일》이라는 신념을 품고 극적인 인생전환을 하게 되였다.
당시 집권세력과 뜻이 다르다는 리유로 기업활동에서 각종 저애와 정치적압력을 받던 정주영은 오래전에 떠나온 북으로 마음이 향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용단을 내려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그는 고향 통천과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금강산을 돌아보면서 조국통일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자》에 접하게 되였다.
로작을 통하여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지어 남조선의 집권상층이나 대자본가, 군장성들과도 단합할것이라는 그이의 뜻을 받아안은 그는 격동을 금할수 없었다.
드디여 그는 기업전략을 공화국과의 협력교류로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걸음을 내짚었다.
반통일세력들의 방해책동을 물리치며 통일애국의 길에 나선 그의 진정을 귀중히 여기신분은 바로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주체87(1998)년 10월 30일 평양에 온 정주영과 그 일행을 만나주신 그이께서는 정주영을 《명예회장선생》으로 정답게 불러주시며 체류기간 불편한 점들은 없었는가고 물어주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는 정주영선생이 배짱이 세고 한번 하자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내미는 성미를 가지고있는분으로 알고있다고 따뜻한 고무도 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민족이 잘되고 잘살게 하자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언제나 손잡고나갈것이라고 하시며 북남사이의 협력교류와 관련한 《현대》의 사업방향을 적극 지지해주시였다.
남조선으로 돌아가던 날 기자들과 회견한 그는 김정일동지의 위인적풍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남조선의 한 기자가 북에 갔다오더니 변한것 아닌가, 왜 자꾸 장군님, 장군님 하는가고 묻자 그는 내가 세상을 다니며 장군이란 장군은 다 만나봤어도 진짜 장군은 김정일장군님이 처음이라고 대답하였다.
그후 그는 금강산관광개발을 다그쳐 1998년 11월 동해에 첫 관광선을 띄움으로써 북남경제협력의 물고를 터놓았다.
2000년 6월 공화국을 방문한 그를 또다시 만나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주영선생은 민족이 화해하는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와 다름없다고, 그 공적은 앞으로 력사에 큰 장을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2001년 3월 21일 그가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민족분렬사에 류례없는 조의대표단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된 조전과 화환을 보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평양의 보통강기슭에 그의 애국심이 깃든 체육관이 일떠섰을 때에는 류경정주영체육관으로 명명하도록 해주시여 그가 민족을 위한 길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도록 하여주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