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7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파렴치한 독도강탈야망을 버려야 한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얼마전 일본자민당소속 국회의원들이 울릉도를 방문하려고 시도하다가 쫓겨났다.
한 외신은 일본국회의원들이 울릉도에 찾아오는것은 관광목적이 아니라 독도문제를 국제적인 쟁점문제로 하겠다는것이라고 까밝혔다.
최근 일본반동들은 령토팽창과 재침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분별없이 날뛰고있다.
미국의 한 신문이 독도와 조선동해의 명칭을 표기한 글과 지도를 실었을 때에도 일본정부는 《용납할수 없다.》느니 뭐니 하며 이 신문사를 산하에 두고있는 다우 죤즈사에 항의를 들이대면서 복닥소동을 피웠다. 이보다 앞서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일본정부에 독도에 대한 《령유권》주장을 중지할것을 요구하는 한 단체의 공동선언에 서명하였을 때에도 일본정계에서는 《용서할수 없다.》느니, 《현직에서 사임해야 한다.》느니, 《견식이 부족한 행동》이라느니 뭐니 하는 소리들이 튀여나왔다.
이처럼 일본반동들은 력사적사실을 외곡날조하여 독도를 강탈하려고 파렴치하게 행동하고있다. 령토팽창에 환장한자들만이 할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망동이다.
독도가 력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우리 나라의 고유한 령토이라는것은 세계가 공인하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랜 옛날부터 경상도사람들은 독도를 돌로 된 섬이라고 하였다. 독도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로부터 유래되였다.옛날부터 물개의 일종인 해려가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유명한 독도주변 해역에는 낙지, 고등어, 멸치, 곱등어, 고래, 전복 등 자원이 많다. 이런것으로 하여 독도주변 해역은 오늘도 큰 어장으로 되고있다.
우리 선조들은 A.D.500년 이전 시기에 벌써 독도를 발견하고 그곳을 어업거점으로 리용해왔다. 일본이 독도를 발견한것은 그로부터 1,000년이 훨씬 지나서였다. 우리 나라는 A.D.512년에 독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시키는 국가적조치를 취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그로부터 근 1,400년이 지나서야 날강도적으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소속시키는 행정조치를 취하였다.
력사는 절대로 외곡할수도 부정할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이 독도가 저들의 《고유한 령토》라고 우겨대는것은 그들이 령토팽창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 무지막지한 강탈자들이라는것을 만천하에 여실히 드러내보여준다.
올해에 들어와 일본반동들의 독도강탈행위는 매우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다.지난 2월 일본 시마네현에서 그 무슨 《다께시마(독도)의 날》을 《기념》하는 광대극이 펼쳐졌다. 거리마다에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선전하는 방송차들이 나돌고 《시마네현고시 40호》 등을 소개하는 소책자들이 배포되였다.
1905년 2월 22일 일제가 조작발포한 《시마네현고시 40호》는 아무런 유효성도 없는 불법적인 문서이다.독도지배를 추구한 일제의 교활성과 비렬성은 《시마네현고시 40호》의 날조과정을 놓고봐도 잘 알수 있다.
당시 일제는 독도탈취를 위한 마당에 저들이 직접 뛰여드는 경우 일어나게 될 국제적물의를 피하기 위해 이미 독도수역에서 비법적인 어업활동을 벌리고있던 일본민간인 나까이를 추동하여 《어업독점권신청》을 하게 하고는 그것을 저들의 농상무성, 해군성, 내무성, 외무성 등이 《심의》하는 방법으로 독도를 강탈할 흉계를 꾸미였다.
1905년 1월 나까이의 《청원》을 접수한 일본내각은 그해 2월 15일 시마네현 지사에게 독도를 《일본령토에 편입》한다는것을 고시할것을 지시하였다.
이렇게 되여 1905년 2월 22일 독도의 《일본령토편입》에 대한 비법불법의 《시마네현고시 40호》가 조작되였다.
그러나 일제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두려워 《시마네현고시 40호》를 공포하지 못하였을뿐아니라 그것은 정부의 관보에도 실리지 못하고 겨우 지방신문인 시마네현의 《산잉신붕》에 간단히 실렸다고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일본의 독도강탈책동은 더욱 교활하고 악랄해졌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는 주로 독도에 대한 저들의 《령유권》을 력사적 및 법적견지에서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증명》시키는 방법을 썼다. 그 이후에는 독도《령유권》을 기정사실화하고 《법》적으로 고착시키며 사회적으로 《인정》시키는 수법을 써왔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사이에 일본국회 및 시마네현 의회에서 독도와 관련한 문제가 무려 150여차례나 론의된 사실이 그 증거로 된다.
일본반동들은 이 기간 외무위원회, 참의원 예산위원회, 안전보장위원회, 국제문제위원회 등 국회의 여러 부문 위원회들에서 독도문제를 국가적견지에서 다각적으로 《론의》, 《결정》하는 놀음을 벌리였다. 특히 1996년 유엔해양법협약의 국내비준과 1998년 일본남조선《어업협정》의 타결을 전후한 시기에 126차례에 걸쳐 독도문제를 상정, 론의한 사실은 일본이 독도강탈책동에 적극 달라붙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일본반동들은 이처럼 국회 등에서 독도문제를 제멋대로 《심의》, 《결정》하고 《법》적으로 고착시키는 한편 국내외적으로 일본의 독도《령유권》선전깜빠니야를 맹렬히 벌리였다.
1996년 정초 《독도는 력사적으로 일본령토의 일부》라고 한 당시 외상 이께다의 망언을 계기로 더욱 본격화된 독도《령유권》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억지주장은 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 되풀이되고있다. 그들은 2005년에 시마네현 의회를 부추겨 《다께시마의 날》이라는것을 제정, 공포하고 그것을 《년례행사》화하고있다.
이뿐이 아니다. 수십명의 일본인들이 본적지를 독도로 옮겼다.이것은 일본반동들이 독도강탈책동을 본격적으로 다그치고있다는 위험신호이다.
일본반동들은 독도에 본적지를 옮긴 일본인들을 섬에 《정착》시키고 《자위대》가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무력을 상륙시키려 하고있다.
사실들은 독도에 대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강탈이 눈앞의 현실로 닥쳐오고있다는것을 시사해준다.
우리 나라를 해외침략의 첫번째 대상으로 선정한 일본반동들은 독도에 재침의 첫 자욱을 찍으려 하고있다.
지금 일본반동들은 조선반도《유사시대응》과 우리의 《핵 및 미싸일위협》 등을 운운하며 조선재침준비와 그 합법화책동을 전례없이 다그치고있다.지난해 일본은 《2010년 방위백서》를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일본은 독도《령유권》을 쪼아박고 우리의 《핵 및 미싸일문제》를 걸고들었다.
지난 2일 일본내각회의에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올해 《방위백서》가 확정되였다.
이것은 일본반동들이 독도를 한사코 강탈하고 이곳을 발판으로 우리 나라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하려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강탈야망은 오뉴월의 개꿈과 같은것이다.
우리 인민은 일본반동들이 신성불가침의 우리 령토를 어째보려는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단호히 짓부셔버릴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독도는 영원히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로 남아있을것이다.
일본반동들은 우리 인민의 의지를 똑바로 보고 날강도적으로 독도를 강탈하려는 허황한 꿈을 버려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