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14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만민복지>사회의 진면모》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다.겉보기에는 좋은것 같지만 실지는 그렇지 않다는것을 이르는 말이다.제국주의자들이 《만민복지》사회라고 입을 모아 떠드는 자본주의사회야말로 빛좋은 개살구라고 해야 할것이다.
복지사회라면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너나없이 행복하게 살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번창한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로인민대중에게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썩고 병든 사회이다.그것은 심각한 집문제 하나만 놓고봐도 알수 있다.
집은 인간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필수적요소의 하나이다. 집은 사람들을 추위와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단란한 가정의 행복한 생활을 담보하여주는 삶의 보금자리이다. 자기의 집, 자기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려는것은 근로인민대중의 한결같은 념원이며 사활적인 생활상요구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절대다수 근로인민대중의 이 간절한 숙망은 한갖 꿈에 지나지 않는다.
-집이 없는 어린 처녀애가 맨발로 남의 집앞 한쪽구석에 옹크리고앉아 추위에 떨며 성냥을 팔고있다.그러나 누구도 성냥을 사주지 않는다. 처녀애는 성냥가치를 한가치한가치 켜며 그 불에 추위를 덜어보려고 한다.그에게는 그 불길이 마치도 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인다. 그는 으리으리한 집의 난로앞에서 몸을 덥히고있는듯 한 환각에 사로잡힌다.이튿날 사람들은 성냥묶음을 손에 쥐고 얼어죽은 처녀애의 시체를 보았다.
…
이것은 어느 한 작가가 지금으로부터 160여년전에 쓴 동화 《성냥파는 아이》의 내용이다.
그때로부터 한세기반이상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만민복지》사회라고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러한 집없는 사람들의 가긍한 모습들을 볼수 있다.
2003년 일본잡지 《세까이슈호》는 현재 세계적으로 집없는 사람수가 약 1억명에 달하는데 그중 미국에 200여만명, 유럽동맹 성원국들에 250여만명이 있으며 일본의 도꾜와 오사까에만도 1만 8,000여명이 집이 없어 한지에서 지내고있다고 하였다. 2005년 1월 22일 일본내각부가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단 하루만이라도 자기 집을 쓰고살고싶다.》고 하소연한 응답자비률은 79%에 달하였다고 한다.
세계에는 집문제를 안고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처럼 그렇듯 심각한 집문제를 그러안고있는 나라는 없다. 지하도와 하수도 등 약간이라도 몸을 들이밀데가 있는 곳은 다 집으로 되는것이 바로 미국사회이다. 그러한 집 아닌 집마저도 차지할수 없는 사람들은 하늘을 지붕으로, 땅바닥을 침대로 삼고 살아갈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다가 그들에 대한 정부당국의 무시정책에 있다.
언제인가 미국의 한 기자가 정부당국자에게 《집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있는가?》고 들이댄적이 있었다.그러자 그는 《그것은 정말 미국의 수치이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부유족속들의 화려한 주택주변을 떠돌아다니는 집없는 사람들을 시끄러운 존재로 여기며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질것을 바라는 반동지배층의 의향을 대변한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2009년 3월에 캘리포니아주의 쌔크러멘토우시에 수백명의 집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움직이는 천막도시》가 나타나 경찰이 이 《도시》를 시외로 내모느라 소동을 피운것은 그것을 더욱 뚜렷이 실증해준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집문제해결을 위한 항의투쟁을 벌리고있는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집을 달라.》, 《따뜻한 방에서 자고싶다.》는 웨침소리가 미국땅의 곳곳에서 울리고있다. 그러나 그들의 피타는 웨침이 정부당국자들의 귀에 들릴리 만무하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주민들은 자그마한 집 한채를 가지려고 하여도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그것은 세대주가 괜찮은 회사직원인 경우 4명의 가족이 먹지도 입지도 않고 10여년동안 수입의 전액을 바쳐야 할 금액이라고 한다. 그러니 보통사람들이 자기 집을 가진다는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노무라 히사꼬라고 하는 일본사람은 《〈1억국민중산층〉의 허황한 내막》이라는 글에 이렇게 썼다.
《정부는 일본의 국민생활을 <1억중류>로 표현하고있다. 말하자면 1억의 일본국민모두가 중산층수준의 생활을 하고있다는것이다.정부의 이 허황한 소리는 일본의 광범한 계층들속에서 쓴웃음을 자아내고있다.》
서방어용선전기구들이 《만민복지》라고 부르짖는 자본주의사회의 진상은 이렇다.
도대체 자본주의사회가 가난으로 비애와 절망에 빠져 불우한 나날을 보내는 수백, 수천만 근로인민대중에게 무슨 희망과 혜택을 주며 복을 주는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정신, 육체적인 고통과 불행과 죽음뿐이다.이러한 사회를 《만민복지》사회라고 말할수 없다.
자본주의사회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기의 집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돈없는 절대다수 근로인민대중의 숙망이 절대로 실현될수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의 반인민성과 관련되여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아무리 물질적부가 증대된다고 하더라도 그 재부가 인민대중의 복리증진과는 인연이 없다.리득을 보는것은 돈있는자들, 권세있는자들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주택건설은 철저히 돈벌이를 위한것으로 되고있다. 건설업체들은 돈많은 특권족속들의 주문이나 청부를 받아 그들을 위한 호화주택과 유흥장들을 건설하고있으며 그것들을 막대한 돈을 받고 팔고있다.이러한 조건에서 돈없는 사람들이 집을 사서 쓰고살수 없는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나 정부는 일부 특권계층의 리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착취계급의 도구에 불과하다. 때문에 근로인민대중이 집이 없어 한지에서 살건말건 상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는 자본주의로 남아있는 한 빛좋은 개살구외에 다른 그 무엇으로 될수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