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15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국제적관심을 모은 회담》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얼마전 파키스탄외무상이 인디아를 방문하였다. 뒤이어 두 나라 외무상들의 회담이 진행되였다. 이것은 국제여론의 관심을 모았다.
그럴만도 하였다.지리적으로 볼 때 인디아와 파키스탄은 서로 이웃하고있는 나라들이다. 하지만 두 나라 관계는 지리적위치와는 달리 가깝고도 먼 나라들사이나 다름없었다.
카슈미르문제 등이 그 요인이였다.
카슈미르는 중국, 파키스탄, 인디아, 아프가니스탄과 접하고있는 군사전략적요충지이다.카슈미르문제는 바로 이 지역의 령유권을 둘러싼 인디아와 파키스탄사이의 분쟁문제이다.
카슈미르를 놓고 두 나라가 분쟁의 소용돌이속에 말려들게 된 동기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와 관련된다.독립전까지만 해도 인디아와 파키스탄은 영국식민지로 있었다.두 나라가 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난것은 1947년 8월이였다.
당시 영국은 《독립법안》에 카슈미르는 자기의 의사에 따라 인디아나 파키스탄에 귀속될수 있다고 모호하게 규정해놓았다.
그때부터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파키스탄과 인디아사이에 대립과 마찰이 시작되였다.쌍방사이의 마찰은 빈번히 군사적충돌로까지 번져졌다.오늘까지도 카슈미르문제는 두 나라사이의 불신을 조장하는 근원으로 되여오고있다.
더우기 2008년에 있은 인디아에서의 뭄바이동시테로사건은 모처럼 마련되였던 인디아와 파키스탄사이의 평화회담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회담은 중단되였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을 지향하는 두 나라의 노력은 계속되였다.
지난 2월 쌍방은 중단되였던 포괄적인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하였다.두 나라사이의 수뇌자회담이 열렸다.회담에서는 두 나라사이의 평화적대화를 재개하고 쌍무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립장이 표명되였다.
특히 군사적방법으로가 아니라 오직 대화의 방법으로 카슈미르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것이 언급되였다.최근년간 분할된 카슈미르지역의 두 소재지를 이어주는 도로가 개통되고 두 나라 지역들사이의 렬차운행이 재개된것은 카슈미르분쟁문제를 평화적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두 나라의 립장과 노력의 결실이였다.
그런데 별안간 지난 7월 인디아의 뭄바이에서 3차례의 폭탄폭발이 일어났다. 불과 몇분을 사이에 두고 련이어 발생한 폭탄폭발로 수십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이번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2008년의 뭄바이동시테로사건의 악몽을 되살려주는것이였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여론이 이미 계획된 인디아와 파키스탄외무상회담의 가능성에 의혹을 표시한것은 우연하지 않다.
그러나 회담은 예정대로 열렸으며 두 나라 외무상들은 한자리에 마주앉았다. 이것은 오래동안 쌓이고쌓인 불신을 해소하고 쌍무관계를 개선하려는 인디아와 파키스탄의 정치적의지를 다시금 보여주었다.
실지로 쌍방은 실천적인 걸음을 떼고있다. 회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는 카슈미르문제와 관련하여 호상신뢰를 보장하기 위한 방도들을 밝히였다.
또한 두 나라 려객들과 순례자들이 카슈미르에서 분계선을 통하여 대방나라에 들어가는것을 허용하였다.이전에는 1947년의 전쟁때 흩어진 가족만이 뻐스를 타고 카슈미르의 실제적인 통제선을 통과해 량측에로 오갈수 있었다.입국자들의 체류기간도 4주로부터 6개월로 연장하며 여러차례 려행할수 있게 허용하였다.앞으로 쌍방은 무역에서 상품종류를 늘일데 대한 문제, 중요하게는 9월 파키스탄에서 핵신뢰구축조치를 위한 회담을 계속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회담후 인디아외무상은 비록 우리의 앞길에는 여전히 도전이 가득차있다는것을 충분히 인식하였지만 나는 두 나라의 관계가 정상궤도에 들어섰다고 자신있게 말한다고 언명하였다.파키스탄외무상도 두 나라 관계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하였다.
인디아와 파키스탄의 관계개선움직임은 두 나라 인민들의 공통된 지향과 념원에 부합되며 남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정보장에 리롭다.때문에 대결과 충돌을 없애고 평화와 안정, 발전을 이룩하려는 두 나라의 긍정적움직임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