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20일부 《로동신문》은 《연백벌농민》이라는 제목의 정론을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장마의 흔적은 가셔지고 들판에 곡식들이 무르익는다.
대자연의 횡포에도 끄떡없이 단결의 힘 더욱 굳세게 뻗치며 위대한 나의 조국은 앞으로만 나아간다.
한없이 귀중한 사회주의대지에 낟알향기 풍겨주는 하나하나의 이삭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바로 이 귀중한 땅을 위하여, 승리의 가을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도 있었다.
세계의 그 어느 대지에 세워놓아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질 그런 참된 농민에 대한 이야기를 현장에서 보고 들은 그대로 전하는 우리 가슴은 미여진다.
* *
리성진, 그는 연백벌농민이였다.
나이는 44살, 연안군 송호리 5작업반 농장원이였다.
참으로 평범한 농사군이였다.
군에서 열리는 소관리공열성자회의에 참가해본 일이 한번 있고 평양견학을 한번 가본것밖에는 자기의 포전과 마을을 떠나본 일이 없는 순박한 소관리공이였다.
남들에게서 언제 한번 싫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이 순박하게 살다가 인적없는 들판에서 희생되였다.
연백벌에 태풍8호의 위협이 다가들던 7월 26일 밤이였다. 석포천의 물은 한도를 넘었다.
서해바다로 흐르는 석포천이 연안군 송호리일대에서 밀물과 합세하여 소리치며 불어나고있었던것이다.
바다기슭에 듬성듬성 도드라져오른 풀판들에 17마리의 소들이 있었다. 바쁜 농사철을 보낸 소들이 인가와 떨어진 조용한 환경에서 쌍붙임시기를 맞던중이였다.
움씰거리며 높아지는 물결을 보면서 고삐가 매인 소들은 공포에 떨었다. 통채로 물속에 잠기고있었던것이다.
4명의 농장원들은 향방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17마리의 소들과 2시간나마 전투를 벌렸다.
시시각각 불어나는 물,물속깊이 꽂힌 말뚝을 찾아내여 고삐를 풀어주어야 했다. 그 다음엔 고삐를 쥐고 소들을 뚝으로 몰고 나와야 했다.
소를 끌고 한걸음 나가면 물살은 두걸음을 밀어놓았다. 소들은 물살에 몸뚱이를 맡긴채 떠내려가려고만 하였다. 《어서 가자, 어서! 이놈아, 어서 나가자!》
키를 넘는 물속에서 소와 싸우며, 폭우와 싸우며 농장원들은 한치한치 강뚝으로 전진하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제방뚝에는 벌써 여라문마리의 소들이 우뚝 서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마리 끌어낼 때 리성진동무는 3마리, 4마리씩, 총 11마리나 끌어낸것이다.
구원된 소들이 제방뚝에 줄지어섰다.
《다 나온것 같소. -》
그들은 소들을 세여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다섯, 열여섯…》
어찌된 일인가. 열여섯에서 셈세기가 끝나는것이다.
다시 세여보았다. 분명 열여섯이였다.
《한마리가 없소. -》
쇠뭉치가 그들의 머리를 텅 치는것만 같았다.
《내가 가보겠소. -》
리성진동무의 목소리였다.
관리공들은 일시에 그의 팔을 잡아챘다.
《안되오. 이제 다시 들어가면 죽소. -》
그러나 물속으로 첨벙 뛰여드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헤염을- 잘 치지- 않나. -》
사품치는 물결속에 멀어지는 목소리,
11마리나 끌어낸 그가 무슨 힘이 더 있단 말인가. 그들은 전지불을 켜들었다. 그러나 전지불은 얼마 나가지 못하였다.
비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얼마나 센지 살이 아팠다.
어둠을 썰면서 퍼붓는 비, 입벌린 악마처럼 사품치며 높아지는 물결, 그외에는 보이는것이 없었다.
그들이 애타게 찾는 마지막소는 70~80m밖에서 물살에 떠내려가고있었다.
《성진동무- 나오라- 빨리 나오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세사람은 말뚝처럼 굳어졌다.
바로 코앞에서 음메- 하는 소리가 들린것이다.
세사람은 돌연히 물속을 헤가르며 다가갔다. 그처럼 애태우던 마지막소가 구원된것이다.
그런데 그는? 성진동무는?
불시에 공포감이 온몸을 싸늘하게 했다.
《성진동무- 어디 있소. -》
그들은 정신없이 소리쳤다.
아무리 애타게 찾아도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사품치는 물속을 하염없이 헤매였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맥이 진할대로 진하였던 리성진동무는 마지막힘을 다하여 소를 떠밀고는 거세찬 물살에 휘말려간것이다.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물을 터는 암소에게서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연백벌농민들은 소가 우는것을 처음 보았다. 송아지를 떼낼 때만 운다고 생각했던 소가 진짜로 울고있었던것이다. 무엇을 알아서 소가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바다로 떠내려갔던 성진동무의 시체를 찾아낸것은 다음날 아침이였다. 소관리공은 잠자듯 조용히 눈을 감고있었다.
리성진!
온 마을이 그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참된 실농군을 잃었다고 온 농장이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깊은 밤 논판에 떨어져있는 벼 한단을 보아도 탈곡장에 안고 가던 량심적인 인간, 평시에 그리도 소박했건만 어려운 시각엔 성난 사자처럼 용감한 열혈의 인간이였던것이다.
그가 소를 떠밀며 걸어갔던 발자국들이 묻혀있는 풀판을 바라보면서 송호사람들은 가슴이 찢기듯 아팠다. 연백벌을 제 살점처럼 사랑한 소관리공에 대한 생각으로 포전에 나가는 시간도 빨라졌다. 그가 구원한 소들이 송아지를 더 많이 퍼치기 바라서 먹이감을 메고 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서였는가. 죽음보다 더 큰 그의 소박한 한생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했기때문이다.
자연재해는 많은것을 잃게 한다.
그러나 위대한 당, 고마운 제도가 있는 한, 위대한 당과 자기의 제도를 지키려는 인간의 삶이 숨쉬는 한 잃는것보다 얻는것이 더 많아진다.
뙤약볕밑에 흘린 땀, 폭우를 이겨낸 의지, 고귀한 희생은 절대로 헛된것일수 없는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렇다.
농민의 본분을 다하여 보습을 쥔채 숨진 농장원도 있고 뜨락또르를 구원하다가 희생된 사람도 있다. 그들이 바친것이 헛될수가 있는가. 아니다. 그들의 최후는 수십만정보의 알곡류실에 비할수없이 큰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한 가족들과 작업반원들, 협동농장원들은 한없이 진실한 인간을, 끝없이 성실한 실농군을 잃었지만 보다 큰것이, 보다 고귀한것이 력사에 남았다.
리성진동무는 위험에 처한 소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쳤지만 수천수만의 물질적인것에 비할수 없는 위대한 정신적재부를 남긴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사회주의제도에서 사는 매 공민들이 자기 임무를 어떻게 마지막까지 책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것을 보기 드문 모범으로 남긴것이 리성진동무의 삶이며 최후이다.
조국은 매 사람에게 한가지의 임무를 준다.
누구에게는 물관리공의 임무를 주고 누구에게는 모판관리공의 임무를 준다. 누구에게는 석탄을 캘 임무를 주고 누구에게는 기계를 만들 임무를 준다. 의사와 교육자도 있고 리발사, 미용사, 취사원도 있다. 그 어디에서 일하든 공민들에게는 한가지씩 임무가 차례지는것이다.
리성진동무에게도 그렇게 받은 임무가 있었다.
소를 관리하는것이 그가 받은 임무였다.
소관리공! 누구나 선듯 맡기 힘든 어려운 직종이다. 조선예술영화 《자신에게 물어보라》에서 나오는것처럼 소똥밑에 묻힌 인생으로 살지 않겠다는 도시처녀의 말을 우연한것으로 볼수는 없다. 그러나 리성진동무는 그 임무를 더없이 달게 여기였다.
임무수행은 직업에 대한 애착심으로부터 시작되는것이다.
리성진동무는 어느 하루도 자기가 소관리공이 된것을 천하게 여긴적이 없었다. 소똥냄새를 구수하게 맡을줄 아는 사람이 진짜농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가 받은 임무를 하늘처럼 크게 본것이다.
가장 책임적인 사람에게 소를 맡긴다는 작업반장의 말을 그는 언제나 잊지 않았다. 땅을 다루는 농민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소관리이자 농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연백벌을 한없이 사랑하였다.
내가 관리하는 소가 연백벌을 간다고 생각하면 어느때건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래서 소들마다 《연백》이라고 불렀다. 태여나는 송아지들도 모두 그렇게 불렀다.
농민의 생활은 매일의 반복되는 일과속에 흘러간다.
이 반복되는 일과속에서 임무집행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앞선 사람과 뒤떨어진 사람으로 갈라지게 된다.
수십년간 반복되는 일을 모범적으로 수행하자면 성실하고 량심적이여야 하며 또한 꾸준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그렇다.
이 세상 모든 일가운데서도 농사일처럼 반복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절기에 따라 반복되는 로동속에서 자기의 성실성을 고수한다는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농민은 세상에서 제일로 근면하고 속이 깊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것이다.
리성진동무는 23년간 같은 임무를 수행하였다.
소는 아침과 낮에는 물론 밤에도 여물을 먹으며 부지런한 일손을 요구하였다. 여물을 먹인 다음에는 깨끗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30~60분간 쉬우며 새김질을 할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다 첫 이슬을 머금은 풀을 특별히 좋아하니 아침일찍 풀판에 내주어야 했다.
모든 부림소들이 그러하듯이 성진동무가 부리는 소들도 땀을 많이 흘리였다. 그러니 매일과 같이 피부를 잘 손질해주지 않으면 안되였다. 여물을 먹이는것과 부리는것, 놀리는것을 잘 조직하지 못하면 소의 작업능력을 높일수 없었다. 이처럼 최대의 성실성을 요구하는 소관리를 그는 23년간이나 꾸준히, 훌륭히 해낸것이다.
자기 초소를 하루같이 성실히 지키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공민들의 모든 직업, 모든 직종이 조국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속에서 치차처럼 맞물려져있는것이다. 어느 하나도 허술한것이 없다. 실례로 신발수리공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하여도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어 사회발전에 저애를 줄것이다.
그런데 혹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해보다가 힘들거나 먹을알이 없어보이면 보다 좋은 일자리를, 같은 직장에서도 좋은 자리, 쉬운 일감을 찾지 않는가.
리성진동무는 언제 한번 소관리를 못하겠다고 말해본적이 없었다. 구실을 대본적도 없었고 어떤 리유로 휴식을 청해본 일도 없었다. 궂은일을 버리고 마른일을 할 생각을 해본적은 더우기 없었다.
마을에서 제일먼저 이슬차며 밭으로 나갔고 영농공정마다 제일 많은 짐을 달구지에 실어나르군 하였다. 환자가 생기면 깊은 밤에도 군소리없이 일어나 소달구지를 끌고 병원으로 향하였다. 이것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함없는 행동이였다.
리성진동무는 실력있는 소관리공이였다.
그의 실력은 임무수행의 가장 큰 힘으로 되였다. 무슨 일을 하나 해도 과학적인 사고에 기초하지 않으면 시간을 허비하고 실수도 많으며 결국 집단에 손해를 주게 된다.
리성진동무에게는 어떤 조건에서도 소를 책임질수 있는 능력이 준비되여있었다.
그가 남보다 헤염을 잘 치게 된데도 까닭이 있었다.
송호리는 산이 없는 고장이다. 그러니 소에게 신선한 풀을 먹이자면 먼길을 걸어야 했다. 소에게 신선한 풀을 더 많이 먹이기 위하여 늘 마지막풀판까지 찾아가군 하였다.
풀판을 찾자면 바다기슭에 나가야 했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바다기슭의 도드라져올라온 땅에 풀들이 돋아나군 했다. 이 풀판에서 저 풀판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그는 헤염치기에 숙달하였던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어서였던가. 아니면 작업반장이 지시하였던가. 부림소에게 보다 좋은 먹이조건을 마련해주려고 스스로 그렇게 한것이였다.
헤염치기만이 아니였다. 그는 소관리공이였지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아이들에게서도 배웠다. 기술적인 문제를 론의하는 마당에서는 눈 한번 깜빡 안하고 햇솜처럼 빨아들이였다.
소관리에서도 1등, 논밭을 가는데서도 1등, 짐을 나르는데서도 1등인 그의 실력은 바로 이런 꾸준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모든 일을 론리적으로 하였다. 사업과 생활에서 스스로 제기하는 요구성이 가장 높은 결과를 안아올수 있다는것을 그는 자기의 꾸준한 행동으로 보여준것이다.
《그가 갈이한 땅에서는 농사짓기가 정말 헐했습니다. 온몸으로 땅을 가꾼 사람이였지요. 그러고도 자기가 한 일을 장하게 생각지 않았답니다.》
함께 일한 농장원들의 이 말에는 실로 많은것이 담겨져있다.
중요한것은 하는 일과 대가에 대한 문제이다. 조국에 기여하려는 마음이 큰가,덕을 보려는 마음이 큰가 하는것이다.
임무수행과정에 생기는 이 두가지 요구중에서 두번째 요구가 우세한 사람도 있다. 나라를 살지우는것이 아니라 나라의 살점을 뜯어먹는 사람들이 많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치려는 사람보다 받으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라가 허약해지고 결국 조국은 번영의 길을 걸을수 없는것이다.
리성진동무는 소에 대한 사랑에 자기의 모든것을 바쳤다.
평시에 그는 조국,애국,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외워본적이 없었지만, 그 어떤 아름다운 문학적표현이나 심오한 철학을 말하면서 생활한것이 아니지만 제 난 그대로 솔직하고 근면하게 건강한 소를 키워내고 그 소와 함께 대지를 살지웠다. 바치는것만 알고 대가를 모르는 인간이였다.
고난의 길에서 여물을 대지 못하여 소를 바치겠다고 하는 관리공들이 있었다. 그렇듯 준엄한 나날에도 리성진동무는 자기 소만이 아니라 영양실조에 걸린 다른 소들까지 맡아 1등품으로 만들어주군 하였다.
사실 그의 집은 농장에서 제일 고난을 겪었다.
아버지를 잃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불구인 어머니를 돌보면서 그가 겪은 일들을 상상 못한다. 안해는 마음씨가 착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네 자식을 부둥켜안고 겹치는 고난속에서 안해는 동요한적도 있었다.
《그는 진국이였답니다. 》라고 곱씹어 말하고 또 말하는 안해의 눈물속에는 많은것이 비쳐져있었다.
고난도 슬픔도 함께 겪은 안해가 머리숙인채 조용히 하는 그 말을 어찌 무심히 들을수 있으랴.
안해는 남편의 모든것을 안다. 온 집안이 애써 마련한 부업자금도 모두다 소를 위하여 바친 남편이였다. 자기가 배고픈것은 생각지 않고 소가 배고파하는것을 가슴아파하며 기른 개를 모두 잡아먹이고 뱀도 잡아먹이였다.
가정앞에 나라를 세워놓고 산 참된 인간이였기에 그 순결한 량심앞에서 다른 생각을 할수 없었다는 안해의 고백은 얼마나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가.
이렇게 온 가산을 바쳐 남의 소까지 살려냈지만 돌려줄 때에는 은혜갚음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편안한 모습으로 소를 주인에게 넘겨주군 하였다.
이것이 시련을 겪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였던가. 농장에는 또 얼마나 큰 고무가 되였던가. 진심으로 하는 일은 수천마디의 말을 대신하는것이다.
본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할수 있는 한계점을 만들어놓고 그 이상 초과되는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한번 시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계속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일을 시키지 않는편이 나을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의 응당한 본분을 수행하면서도 얼마나 알아주는가를 따져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리성진동무는 남을 위하여 남모르게 바친것, 농장을 위하여 소리없이 걸은 길들을 응당한것으로 여기였기에 총화때나 평가할 때 그것을 계산해본적이 없었다.
바친것만큼 덕이 온다.
소품평회때마다 그가 키운 소들은 1등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23년간 혼자서 13마리의 송아지를 생산해낸것도 놀라운 일이였다. 그가 키우는 소들은 하나같이 실하고 생활력이 강하였다. 앞몸통이 특별히 든든하고 뼈가 굵었으며 근육과 힘줄이 발달하여 걸음도 빨랐다. 그러니 작업이 능률적일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성실한 소관리공을 만난 송호협동농장 5작업반은 언제나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였다. 논갈이도 밭갈이도 1등이였고 가을걷이도 1등이였다.
임무에 충실한 사람은 집단의 사랑을 받기마련이다.
무슨 일을 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자리를 크게 차지하는 사람으로 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집단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로 사는가 하는것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인것이다.
리성진동무는 작업반이 기다리는 사람이였다.
작업반이 기다리는 사람,이것이 성진동무의 락이고 보람이였다. 그래서 소를 몰고 다녔지만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일을 맡은 희열에 넘쳤고 생활이 곤난할 때도 언제나 마음이 평안하였다.
목숨을 내대야 하는 어려운 시각에 나오는 영웅적행동은 평시생활의 연장이다.
맡은 임무를 체질화하면 그것이 어느때건 영웅적행동으로 이어진다.
리성진동무가 폭우가 쏟아지는 물속에서 많은 소들을 끌어내고도 마지막 한마리를 위하여 또다시 물속에 뛰여든것은 절대로 지어낼수 없는 행동이다. 자기 일을 성실히 해온 평시생활의 발현인것이다.
사품치는 물속에서 소 한마리를 건져냈다고 하여도 얼마나 장한 일인가. 또한 큰물이 났는데 소 한마리 류실된것을 사람이 잘못된것에 비할수 있는가.
폭우속의 물안에서 11마리나 되는 소들의 고삐를 풀어내오고 마지막 한마리까지 끝내 조국의 대지에 세워준 행동에는 새겨볼수록 참된것이 있어 눈물이 난다.
그는 평시에 차곡차곡 모아둔 고상한 정신세계의 모든것을 다하여, 다지고다져온 실력의 전부를 바쳐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것이다.
뿌리를 들여다보기는 헐치 않다.
말없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생각이 많은 법이다.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나누는 사람들은 속이 깊다. 그가 일생토록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무슨 말을 하고싶었는지, 소원은 무엇이였는지, 인생의 가장 깊은 뿌리라고 할수 있는 이런 세계를 생을 마친 뒤에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리성진동무에게는 두가지의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당회의가 열릴 때마다 당원이 되지 못한 허전함을 안고 말없이 일어서군 하였다. 그의 마음속에서 입당청원서는 리수복영웅의 시와 나란히 놓군 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인생의 시였다. 당원이 되자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남보다 일을 많이 하였다.
다른 하나의 간절한 소원은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연백벌농민의 인사를 드리는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 지팽이를 승용차에 두신채 내리시여 연백벌을 찾으신 이야기가 전해진 때부터 어느 한시도 떠나본적이 없는 소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기쁨드린 연백벌의 농사소식을 안고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인사를 드리는것은 언제나 그의 간절한 소망이였다.
현지지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을 신문과 텔레비죤에서 뵈올 때면 그는 행복하기도 하였고 죄스럽기도 하였다. 그런 밤에는 담배를 더 많이 피웠고 더 일찍 일터로 나가군 하였다.
우리 수령님께서와 우리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연백벌의 풍년소식을 마련하는 그날이 언제일가?
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꾸준히 소를 몰았다.
지난해 10월에 그는 처음으로 평양견학을 갔다. 이것은 그가 자나깨나 기다리던 기회이기도 하였다. 평양에 가면 금수산기념궁전에 계시는 수령님을 뵈올수 있는것이다.
주체의 최고성지에 갈 성원들이 선발되였다. 그도 그속에 끼여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일정이 변경되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수령님앞에 간다면 무슨 말씀을 드릴수 있었겠는가,어버이수령님께 연백벌의 소식을 무엇이라고 아뢸수 있는가,우리 수령님께서 송호리에서도 정보당 10t을 냈는가고 물어보시면 어떻게 대답을 드릴것인가,그렇다,나는 수령님께 떳떳이 인사드릴 모범농장원이 아니다. … 이것은 그의 심장을 치는 가장 큰 아픔이였다.
참관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성진동무가 열흘간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밭을 가는것을 보면서 온 마을이 눈물을 삼키였다. 그가 얼마나 금수산기념궁전에 가고싶어했던가. 한없이 고귀한 마음이였다.
터지는 오열을 묵새기며 오직 땅과 말하고 소와 말하며 손에 피가 지도록 보습을 박고 또 박던 그를 돌려세울 힘은 그 무엇도 없었다는 작업반장의 회고는 들을수록 가슴미여진다.
참된 농민의 마음은 헤쳐볼수록 아름다운것이 쏟아진다.
리성진동무는 고지식하였을뿐아니라 대바르고 강직했다.
꼭 필요한 말만 하는데 습관된 그가 자식들에게 반복하여 해준 말이 있었다. 《남의것을 부러워말아라!》, 이것이 고난의 행군시기 리성진동무가 자식들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이였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 텔레비죤수상기를 먼저 놓았을 때도 그렇게 말하였고 건너마을에서 새집들이를 할 때에도 그렇게 말하였다. 바친것없이 공짜를 바라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일 잘하는 사람,제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해야 한다고 가르쳐준 그,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국경선에 세워도 그는 자식들에게 같은 말을 했을것이다. 분계선앞에 세워놓아도, 단두대에 세워도 자식들에게 같은 목소리로 말하였을것이다.
강냉이밥에 된장을 찍어먹어도 내 집이 제일이고 번쩍거리는 남의것보다 소박한 우리것이 제일 좋으며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내 나라가 제일이라고 어디 가나 그는 떳떳이 말하였을것이다.
말이 적다고 노래가 없었던가. 그의 심장속에서는 언제나 전시가요가 높이 울렸다. 아버지가 노래부른적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막내딸은 그리도 자랑스럽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우리 아버진 노래를 잘 불렀어요. 아침마다 소를 끌고 나올 때면 〈이랴 이 소야 어서 가자!〉 하고 멋지게 노래를 불렀어요. 》
사랑과 증오로 불타는 계급의 심장에서만이 이런 생활이 창조될수 있다. 조국이 준 임무에 충실한 인간의 삶에는 반드시 이런 뜨거운 생활세계가 있기마련인것이다.
이 소야 어서 가자!
땅을 가꾸는것을 침략자 원쑤들과의 싸움으로 여긴 연백벌농민이였기에 그의 심장은 이런 아름다운 인생의 선률로 가득차있었던것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증오로 불타는 심장을 가진 사람은 진펄에 있어도,적구에 있어도 자기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다.
그는 물에 뛰여들면서도 이제 자기가 죽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것이다. 마지막소를 빨리 건져내고 아침에는 첫 풀을 먹이리라고 생각하였을것이다. 그리고 큰물이 가셔지면 소들을 몰고 가을걷이준비도 본때나게 하리라고 생각하였을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에게 최후의 시각을 몰고왔다.
사품치는 물의 한가운데는 속도가 빠르게 맴도는 물곬이 있었다. 성진동무는 그 물곬을 알고있었다. 그 곬을 안전하게 넘자면 고삐를 쥐고 소앞에서 더 힘껏 헤염쳐나가야 한다. 그러면 소는 고삐를 끄는대로 따라올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는 고삐를 쥐고 앞서갈 힘이 없었다. 맥이 다 빠졌던것이다.
고삐를 쥘것인가, 놓을것인가.
이것은 삶과 죽음을 판가리하는 결심이였다. 소고삐를 쥐면 혹시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삐를 쥐면 소가 물곬을 넘지 못하고 나에게로 따라오게 된다, 소가 나를 따라오면 동지들이 물곬으로 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소는 물론 동지들이 위험하지 않은가!…
그는 서슴없이 고삐를 놓았다.
그리고 평시에 부르던 노래 그대로 이 소야 어서 가라! 하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앞으로,앞으로 소를 떠밀어주었다. 주인이 떠밀어준 마지막힘으로 소는 소용돌이치는 물곬을 안전하게 넘어섰다.
그는 조국앞에 이처럼 마지막까지 가식없이 살았다.
한생을 조금도 과장없이 난 그대로 살아온 그는 누가 보지 못하는 캄캄한 물속에서도 순박한 모습 흐트리지 않고 깨끗하게 최후를 마치였다.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한 일을 다 말하지 않고 살아온 그의 한생은 그지없이 고결하다. 총쥔 병사였다 해도 그는 그렇게 살았을것이다. 먼길을 가는 과학자였다고 해도 그렇게 살았을것이다. 이 나라 어느 위치에 세워놓아도 그는 반드시 그렇게 살 사람이였다.
우리 조국은 김제원농민의 뒤에 리성진이라는 또 한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놓게 되였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연백벌농민 리성진은 이미 김제원농민과 같은 참된 애국농민, 참된 당원, 참된 영웅의 모습으로 크게 자리잡았다.
하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7월 27일 새벽 큰물피해현장에서 소들을 구원하고 숨진 리성진동무의 소행을 보고받으시고 그의 고귀한 정신세계를 온 나라가 따라배우도록 해주시였다. 그리고 본인은 물론 자식들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크나큰 정치적신임을 베풀어주시였다.
흙은 갈아엎어도 흙이다.
불에 타도,물에 잠기여도 흙은 흙이다.
갈아엎어도,불에 타도, 물에 잠기여도 본성 그대로 흙으로 남는 조선농민의 참된 량심을 알게 해준 연백벌농민의 이야기는 사람마다 자기를 돌이켜보게 한다.
조국과 집단에 필요한 일을 많이 하자면 자기것을 많이 바쳐야 한다. 땀도 바치고 걸음도 바치며 사색도 열정도 시간도 모든것을 일에 바쳐야 한다. 목숨까지도 바쳐야 한다.
연백벌농민의 최후는 자기 임무에 대한 책임성은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 그가 지켜낸 소영각소리는 대포소리보다 크다.
고난의 길에서 쓰러져도 기계설비만은 베고 죽겠다고 하였던 로동계급의 고결한 공장애와 쓰러져도 나라의 쌀독을 안고 죽겠다는 뜨거운 향토애가 하나로 합쳐진 조선의 힘은 무한대이다.
연백벌농민 리성진동무처럼 자기의 초소를 지킨다면,우리의 매 공민들이 자기의 임무를 이처럼 책임적으로 훌륭히 수행한다면 조국의 힘은 만장약되고 부강번영의 날은 더욱 빨리 다가올것이다.
그처럼 살자!
연백벌농민처럼 살자!
나라재산, 농장재산에 진실하고 소중한 모든것을 담은 리성진동무처럼 누구나 자기가 맡은 임무에 모든것을 다하여 사회주의 내 조국을 억세게 받들자!(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