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김일성주석과 인연을 맺고 행복한 삶을 누린 수많은 사람들가운데는 로씨야의 평범한 공민인 야.떼.노비첸꼬도 있다.
그는 조선이 갓 해방되였을 때 주석단에 날아든 수류탄을 자기의 희생성을 발휘하여 처리함으로써 김일성주석을 보위한 국제주의전사이다.
당시 그의 영웅적위훈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노비첸꼬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졌다.
오직 한분만이 노비첸꼬의 위훈에 대하여 잊지 않으시고 그의 삶을 빛내여주시였으니 그분이 바로 김일성주석이시였다.
주석께서는 그가 부상을 크게 당하긴 하였지만 나이로 보아 아직 살아있을수도 있다고 하시며 그를 찾도록 일군들에게 과업을 주시였다.
노비첸꼬가 씨비리의 한적한 고향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주석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며 주체73(1984)년 5월 이전 쏘련에 대한 력사적방문의 길에서 그를 불러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김일성주석과 노비첸꼬사이의 감격적인 상봉이 근 40년만에 이루어지게 되였다.
그를 만나신 후 주석께서는 일군들에게 조선사람도 아닌 노비첸꼬가 그러한 희생성을 발휘한것은 영웅적이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노비첸꼬는 주석을 만나뵈온 때로부터 불과 며칠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게 되였다.
그에게 돌려주시는 주석의 뜨거운 사랑은 세월과 더불어 더해만갔다.
노비첸꼬를 친우로, 친동생으로 불러주신 주석께서는 그가 자주 조선을 방문하여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도록 하시고 최상의 수준에서 모든 편의를 보장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그를 여러차례나 만나주시였으며 그의 가족에게도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노비첸꼬의 부인을 만나시여서는 오른팔이 없는 남편과 온 가족을 돌보느라고 수고를 많이 했다고 하시며 평범한 농촌녀성이 겪은 남모르는 심정까지 헤아려주시였다.
주석의 친어버이사랑속에서 일찌기 부모를 잃고 외로이 자란 노비첸꼬는 비록 불편한 몸이였지만 가족과 함께 행복을 누릴수 있었다.
하기에 그는 김일성주석이시야말로 숭고한 도덕의리를 지니신 위인중의 위인이시라고 격찬하며 그이를 가장 가까운 친형님으로 믿고 따랐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