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30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중국의 원유도시 다칭》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원유도시 다칭은 중국공산당의 령도에 의하여 나라의 공업전선의 주요기지로 솟아났다.허이룽강성의 쑹넌평원에 자리잡고있는 인적드문 황량한 초원에서 처음으로 원유가 나옴으로써 다칭이라는 이름을 가진 원유도시의 력사가 시작된지도 어언 50여년이 되였다.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창건 10돐을 앞두고 바람세찬 이곳에서 중국인민이 그처럼 고대하던 원유가 솟구쳐올라 명절의 경사에 경사를 더해주었다.
당의 호소를 받들고 3만여명의 중국인민해방군 군인들과 수천명의 과학자, 기술자, 청년들이 이곳 북방의 땅으로 달려와 《철인》(무쇠사람)의 정신,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중국원유공업의 새 력사를 아로새겼다.
그들은 첫 3년동안에 860여㎢의 유전을 개발하고 생산을 늘이기 시작하였다.
세월과 더불어 드넓은 유전구역에 철탑들과 시추기들이 숲을 이루고 자동차도로와 철길이 여기저기 뻗어나가 원유도시는 날을 따라 더욱 약동하는 기상을 떨쳐왔다.
오늘 다칭은 큰 규모의 원유생산기지로뿐아니라 원유가공, 화학, 방직공업 등 여러 공업부문을 갖춘 종합적인 원유공업도시로 전변되였다.
다칭의 도시건설은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였다.
현대적인 거리들이 형성되고 살림집구역마다에 상점, 식당, 학교, 유치원, 탁아소, 병원, 영화관을 비롯한 문화후생 및 교육시설들이 즐비하게 들어앉았다.시중심에 있는 청소년궁전, 체육관, 수영관, 극장 등 현대적건물들이 더욱 이채를 띠고있다.
다칭의 오늘의 현실은 이곳 로동계급이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사회주의길을 따라 확고히 나아감으로써 꽃펴날수 있었다.
그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오직 중국공산당만을 믿었으며 당의 령도를 받드는 길에 자기들의 미래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생산과 건설을 다그쳤다.
그들은 자체의 힘으로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면서 내부예비를 찾아내고 기업관리를 개선하고 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벌려 생산의 지속적인 장성을 유지하였다.
다칭유전에서는 지난 50여년동안 정치사상사업을 확고히 틀어쥐고 거기에 기술혁신을 결합시켜 도합 20여억t의 원유를 생산하였다.이것은 전국적인 원유총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는것으로 된다.
유전에서는 8,250여건의 과학연구성과를 이룩하였는데 그중 1,700여건이 국가의 상을 받았다.
여기에서 생산되고있는 원유는 경제발전을 다그치는데 크게 이바지하고있다.
또한 유전의 많은 간부들과 로동자들이 새로 개발되는 전국각지 유전들에 파견되여 나라의 원유공업을 떠밀고나가는 핵심력량으로 되고있다.하기에 중국사람들은 다칭유전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경제발전에 대해 생각할수 없었을것이라고 말하고있다.
다칭로동계급의 투쟁경험과 주인다운 일본새는 중국인민의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전략적목표실현을 추동하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