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9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20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유린한 죄행은 계산되여야 한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1875년 9월 20일은 일본침략자들이 《운양》호침입사건을 조작한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136년전 바로 이날 일본침략자들은 무력을 통한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리조봉건정부를 굴복시키고 예속적이며 불평등한 침략조약을 강압적으로 조작할 목적밑에 《운양》호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날강도적인 《강화도조약》을 조작하였으며 무력에 의한 조선침략의 서막을 열어놓았다.
우리 인민은 오래전부터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하고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물수 없는 뼈아픈 상처를 남긴 일본침략자들의 죄악에 대해 한시도 잊지 않고있다.
19세기 후반기 후진자본주의국가로 등장한 일본은 조선침략교리인 《정한론》을 부르짖으면서 그 실현에 달라붙었다. 그 첫 공정으로 일본은 1875년 5월 침략선 《운양》호를 부산항에 불법침입시켰다. 파렴치한 일본침략자들은 뻔뻔스럽게도 그것을 《정기적인 연습항해》라고 정당화해나섰다. 일본침략자들은 그 무슨 《발포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위세를 돋구었다. 그들은 조선이 저들의 힘앞에 위압되여 스스로 굴복할것이라고 타산하였다. 하지만 일이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그해 9월 일본침략자들은 항로를 측량한다는 구실밑에 《운양》호를 강화도앞바다에 또다시 침입시켰다.
남의 령해에 들어가자면 해당 나라의 사전승인을 받는것이 국제법상요구이며 국제관례이다. 당시 조선봉건정부는 불법침입한 일본침략선이 즉시 물러갈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무리는 그에 응하지 않았다. 사전에 군사정탐임무와 강화도공격임무를 받고왔기때문이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륙군대장 야마가다는 《1875년 9월 <운양>호 함장 이노우에소좌는 조선연해안으로부터 청나라 우장에 이르는 해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암암리에 조선에 대한 시위운동을 실시하라는 내적훈령을 해군성으로부터 받았다. 》고 하였으며 참의 기도는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이미전부터의 목적을 단숨에 달성하려고 하였다. 》고 토설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치밀한 계획밑에 물이 떨어졌다는 구실을 내대면서 우리 나라의 중요한 요새로서 그 어느 나라 함선도 사전허가없이는 드나들수 없는 초지진포대근처에까지 들어왔다. 강화해협과 초지진을 지키고있던 우리 나라 수비병들은 일본침략무리들을 단호히 격퇴해버리였다. 그러나 《운양》호의 침략무리들은 저들의 기도를 버리지 않고 방어가 약한 섬들에 기여들어 포대를 파괴하고 민가에 불을 지르며 평화적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우리 나라 수비병들은 일본침략무리들에게 된타격을 가하여 그들을 쫓아냈다. 이것이 바로 일본침략자들이 조작한 《운양》호사건의 진상이다. 《운양》호사건의 전과정은 그것이 조선측의 발포를 유도하여 사건을 확대함으로써 그것을 구실로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며 《정한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일본의 계획적인 군사작전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보여주었다.
《운양》호사건후 일본침략자들은 다음단계에로 넘어갔다. 일본정부는 그해 11월 《정한외교》정책의 변종인 《평화협상외교》정책을 내놓고 리조봉건정부에 예속적인 《수호통상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이른바 《방안》이라는것을 꾸미였다. 그 《방안》이란 첫째로, 《운양》호사건의 진상을 은페하고 모든 책임을 조선측에 넘겨씌워 《사죄》와 《배상》을 인정시킨다는것이며 둘째로, 군사적수단에 의한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조선측을 강박하여 《굴복》시킨다는것이였다.
1875년 11월말 일본외무경 데라지마는 부산에 파견되는 외무성리사관 히로쯔에게 일본전권대표를 조선에 파견한다는 내용의 외교문서를 조선측 관리에게 전달할것을 지시하면서 조선측이 저들의 문서를 접수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일단 통고할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히로쯔는 12월 부산에 도착하여 부산왜관에 온 왜학훈도 현석운에게 외교문서를 전달하였다. 현석운이 문서를 보내온 리유를 따지자 히로쯔는 군함 《운양》호가 청국의 우장으로 항행하던 도중 포격을 받았고 일본조정이 그 실상을 알아보기 위하여 특명전권대신 구로다를 사신으로 파견하니 조선측에서 그들을 보호해줄것을 바란다고 하면서 만약 사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성에 쳐들어갈것이라고 위협해나섰다. 이러한 날강도적인 망발에는 《운양》호사건의 책임을 조선측에 무작정 넘겨씌우며 군사적힘을 배경으로 리조봉건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는 기도가 내포되여있었다.
리조봉건정부와 공식회담을 벌릴수 있는 합법적인 구실을 마련하였다고 생각한 일본은 1876년 1월초 구로다를 전권대표로 하여 30여명으로 이루어진 전권대표단과 800명의 병력을 실은 6척의 침략함선들을 파견하였다. 일본침략함대는 조선령해에 대한 측량과 무력시위를 벌리면서 2월 4일 강화도 초지진앞바다에 기여들었다.
파렴치한 일본침략자들은 일방적으로 회담장소를 강화부 관청건물로 하며 전권대표들과 수행원, 의장병들의 숙소를 제공할것을 강요해나섰다.
리조봉건정부측이 이것을 일축하자 일본침략자들은 저들의 병력수를 4,000명으로 과장하면서 숙소문제가 곤난하면 400명이라도 상륙시켜야 하겠다고 생억지를 쓰면서 이제 곧 2,000명의 병력이 추가되여올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2월 10일 초지진앞바다로부터 기동하기 시작한 일본침략함대는 갑곶진에 이르러 《례포》의 명색밑에 대포를 사방 쏘아대며 화약내를 마구 풍기였다. 그 다음날 강화부 서대문안의 련무당에서 열린 회담전야에도 일본침략자들은 《기원절》(《건국절》)을 기념한다고 하면서 함포를 쏴대여 회담장을 공포분위기에 휩싸이게 하였다.
이렇게 일본은 대포와 군함으로 리조봉건정부를 로골적으로 협박, 공갈하여 불법무효한 《강화도조약》을 조작해냈다. 《강화도조약》은 철두철미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일본통치층의 모략의 산물로서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존엄, 리익을 란폭하게 침해하는 불평등한 조약 아닌 《조약》이였다.
불법무효한 《강화도조약》을 코에 걸고 일본은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깊숙이 침투하였으며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무력으로 조선을 완전히 비법강점하고 40여년동안에 걸쳐 전대미문의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 재난을 들씌웠다. 특히 조선민족말살을 노린 조직적이며 의도적인 조선인학살만행은 그 어느 침략력사의 갈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극악한 범죄였다.
일제는 조선강점 전기간 우리 민족을 지구상에서 영영 없애버리기 위하여 조선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살륙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붙잡아 총으로 쏴죽이고 때려죽이고 칼로 찔러죽였으며 생매장하거나 불태워죽이는 치떨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야수들은 지어 산 사람을 끓는 물에 집어넣어 죽였는가 하면 눈알을 뽑고 사지를 찢어죽였으며 손바닥에 쇠못을 박거나 코와 귀를 자르는 등 짐승도 낯을 붉힐 잔인한 방법으로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마구 학살하였다. 이렇게 일제가 살해한 조선사람의 수는 100여만명이나 된다.
식민지통치기간 일제는 모자라는 인적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840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 랍치하여 중세기적인 노예로동을 강요하였고 전쟁대포밥으로 써먹었다. 일제는 또한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강제련행, 랍치, 유괴하여 성노예로 만들었으며 그들의 대부분을 학살하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조선식민지통치기간 일제가 저지른 죄행을 꼽자면 끝이 없다.
이처럼 일본은 우리 인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가해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본은 과거 우리 인민에게 끼친 저들의 극악무도한 반민족적, 반인륜적범죄를 고의적으로 숨기며 흑막속에 덮어버리려고 획책하여왔다. 이것은 과거범죄에 대한 비렬하고 철면피한 책임회피이며 인륜도덕과 정의에 대한 로골적인 도전이다.
남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가 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하는것은 법적, 도덕적의무이며 국제관례이다. 지난날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하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본의 죄행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려는 우리 인민의 의지는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제사회는 일본이 지난날에 저지른 죄악을 하루빨리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 나라와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종식시킬것을 바라고있다. 조일관계가 개선되는가 못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일본의 과거청산여부에 달려있다.
일본은 우리 인민의 대일감정과 변천된 오늘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하루빨리 불미스러운 과거를 청산하여야 한다. 이것만이 일본이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자기의 법적, 도덕적의무를 다하고 국제무대에 떳떳이 나설수 있는 길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