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9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서거일(9.22)을 맞으며 조선녀성들은 광범한 근로녀성들을 교양하고 계몽각성시키기 위한 출판물창간사업에 바치신 그이의 불멸의 업적을 다시금 되새겨보고있다.
해방직후 조선에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령도밑에 당, 정권기관의 기관지들을 비롯한 일련의 출판물을 창간하기 위한 사업이 벌어지고있었다.
그러나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일군들속에는 지식수준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출판물을 원만하게 만들 사람이 없었다.
주체35(1946)년 2월 어느날 중앙녀맹청사를 찾으신 녀사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이 계신 후 중앙녀맹일군들이 그 문제를 놓고 토론을 많이 한다는데 자신께서도 의견을 나누고싶어 나왔다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그동안 토의된 의견들을 말씀드리면서 어떻게 하나 3.8절전으로 창간호를 내볼 작정이라고, 론설과 기사 몇건을 묶어 20~30페지정도로 만들면 우리 힘만으로도 능히 가능할것 같다고 하였다.
녀사께서는 장군님의 의도를 받들고 녀성동맹기관지를 빨리 내오려는 동무들의 심정은 충분히 리해할만하다고, 그러나 목적지향성없이 아무렇게나 만들어 녀성동맹기관지가 나왔다는 소문이나 내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하시며 편집문제로부터 녀성출판물발행을 위한 물질적준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해 6월 녀맹일군들을 만나주시고 녀성잡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으로 모든 녀맹조직과 녀성들을 튼튼히 무장시키고 그들을 새 조선건설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상적무기로 되여야 한다고 하시며 잡지편집안이 완성되도록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잡지의 제호를 달 때였다.
《문화부녀》, 《민주녀성》, 《해방부녀》라고 단 세개의 표지안을 보신 녀사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동맹의 이름을 조선민주녀성동맹이라고 지어주시였는데 조선녀성의 얼굴이 잘 나타나게 잡지의 이름을 생각해보는것이 좋겠다고, 잡지의 이름을 간결하면서도 새 조선의 녀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이 잘 나타나게 만들어보자고 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일군들과 편집성원들은 녀사와 함께 주석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주석께서는 잡지제호가 중요하다고, 민주녀성동맹의 기관지제호는 《조선녀성》이라고 달면 어떤가,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조선녀성들의 출판물이 아닌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숙동지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잡지 《조선녀성》의 창간호는 1946년 9월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