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0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중국인민지원군의 조선전선참전 61돐이 되였다.
이날에 즈음하여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1950.6.25~1953.7.27) 중국인민지원군 렬사들이 세운 위훈에 대하여 감회깊이 추억하고있다.
그중에서도 주체39(1950)년 10월 25일 지원군렬사들이 운산지구에서 벌린 첫 전투는 조중친선강화발전에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기였다.
당시 미제는 감은절(11월 23일)전으로 조선전쟁을 끝내고 전조선을 강점할 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감은절공세》라는것을 벌렸다.
운산지구에 주공력량을 들이밀어 그곳을 차지하고 다른 공격력량과 협동하여 인민군대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큰 규모의 침략무력을 북으로 끌어들이고있었다.
운산지구가 대격전장으로 될것이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인민군지휘관들과 중국인민지원군 지휘성원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미제침략군부대들이 운산을 노리고있는것 같다고, 재진격의 서막을 운산에서 열자고 말씀하시였다.
운산지대의 지형을 료해하시고 매복전과 기습전으로 운산지구에서 적들을완전히 포위소멸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주석의 작전전술적방침에 따라 인민군전사들과 지원군용사들은 무비의 용감성과 집단적영웅주의를 발휘하며 적들을 무자비하게 격멸소탕하고 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였다.
이 전투에서 괴뢰2군단은 2개 사단, 6개 련대가운데서 2개 련대만 남고 완전히 괴멸되였다.
미1기병사단 8기병련대도 전장에 나타나자마자 포위전멸되였다.
태천-운산계선에서 미1군단관하 부대들이 섬멸적타격을 받았다.
적들은 운산일대에서의 참패를 《운산의 비극》이라고 기록하였으며 워커는 미8군의 모든 부대들에 전면적인 퇴각을 명령하였다.
운산지구에서의 전투승리는 조중 두 나라 군대가 어깨겯고 싸워 이룩한 고귀한 전취물이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