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1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17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을사5조약>에 비낀 날강도의 본색》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제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을사5조약》의 날조로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통채로 빼앗고 근 반세기동안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 백년숙적이다.
침략적이며 예속적인 《강화도조약》의 강압체결로부터 시작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의 실천적단계에 들어선 일제는 《보호국》이라는 미명하에 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합법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책동에 달라붙었다.
1905년 10월 27일 악명높은 《한국보호권확립실행에 관한 각의 결정》을 채택한 일제는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조선에 들이밀어 《을사5조약》을 날조하려고 책동하였다.
1905년 11월 9일 《한국황실위문》이라는 미명하에 일본왕의 특사로 한성(서울)에 기여든 이또는 막후에서 친일주구단체인 《일진회》를 조종하여 일제의 《보호》통치를 청원하는 매국운동을 벌리도록 부추기였다.
일제의 사촉을 받은 매국역적들은 가증스럽게도 《국권을 보존하고 민복을 증진》시키자는 따위의 《보호청원서》를 일본반동정부에 제출하는 광대극까지 벌리였다. 이것은 마치 조선인민이 일제의 《보호통치》를 지지하여 《청원》하고있는것처럼 하려는 일제의 교활하고 음흉한 술책의 산물이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일제와 매국역적들의 흉악한 책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이또는 1905년 11월 13일 백주에 침략군을 끌고 조선왕궁에 뛰여들어 일본왕의 《칙서》를 고종앞에 내놓으며 《조약》체결의 필요성을 력설하였다. 《칙서》에는 《동양평화》와 《조선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조량국사이에 《친선》과 《협조》를 강화하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에 두어야 한다는것과 함께 만일 조선의 황제가 일본왕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그 후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위협공갈로 된 날강도적인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또한 《칙서》에는 조선이 일본의 《보호》하에 들어가더라도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기만적인 회유도 담겨져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일제의 강도적인 침략적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05년 11월 15일 이또는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로 하여금 왕궁을 완전히 포위하게 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고종의 방에 또다시 뛰여들어 《보호조약》초안을 내놓으면서 무조건 받아들일것을 강박하였다.
고종이 《조약》체결에 끝내 응하지 않자 이또는 1905년 11월 17일 일제침략군을 동원하여 왕궁을 봉쇄하고 친일역적 리완용을 사촉하여 《보호조약》을 날조하기 위한 대신회의를 소집하게 하였다. 이날 일본공사 하야시의 주관하에 열린 대신회의에서는 일부 대신들이 일제가 강요한 《조약》체결을 완강히 반대하였다.
회의가 저들이 바라는대로 속결되지 않자 이또는 하세가와와 함께 밤 11시에 저들의 침략무력을 끌고 회의장소에 뛰여들어 대신들을 한명씩 지명하여 죄인을 문초하듯이 조약에 대한 가부를 강압적으로 따졌다.
참정대신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이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또는 《…8명중 5명은 찬성했으니 조약은 합의》되였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을사5조약》을 날조하였다.
순전히 강압과 무시무시한 총칼의 위협 등 포악무도한 수법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날조된 《을사5조약》은 철두철미 불법무효이다.
《을사5조약》의 허위성은 우선 체결되지도 않은것을 《체결》되였다고 공포한 허위문서라는데 있다. 리조봉건정부측에서는 애당초 조약체결을 위한 전권대표임명도 하지 않았으며 조약체결을 위한 쌍방사이의 예비회담, 본회담과정도 없었다. 또한 일제가 떠드는 《조약문건》이란 고종황제의 수표도 《국새》날인도 받지 못한 협잡물로서 하나의 휴지장에 불과한것이였다. 고종황제는 처음부터 《조약》의 체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악한 일제는 고종황제로부터 그 어떤 위임권도 받지 못한 한갖 매국각료에 지나지 않던 외부대신 박제순의 도장을 훔쳐 찍는것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하였던것이다.
다음으로 《을사5조약》의 허위성은 조약문건으로서의 그 어떤 체모도 갖추지 못하였다는데 있다. 그것은 《조약》제목자체가 없는것을 보고도 잘 알수 있다. 일제는 제멋대로 날조해낸 허위조약을 《한일협상조약》이라고 불렀고 우리 인민은 을사년에 조작된것으로 하여 《을사5조약》으로 부르고있다.
《을사5조약》의 허위성은 또한 무시무시한 총칼의 위협속에서 강압적으로 날조되였다는데 있다. 《조약》날조를 전후하여 일제는 3만~4만의 침략군으로 한성을 포위하고 강권과 칼부림속에서 《을사5조약》을 날조하였다.
참으로 《을사5조약》은 일제의 강박과 위협공갈속에 날조된 세계력사상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불법무효의 날강도적인 허위문서였다.
오늘 일본반동들은 《을사5조약》의 허위날조행위로 우리 나라를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저들의 과거죄행에 대해 성근히 반성하고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해보려는 어리석은 야망밑에 재침책동에 피눈이 되여 미쳐날뛰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오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일본반동들이 또다시 피로 얼룩진 과거의 력사를 되풀이하려든다면 선군의 위력으로 천백배의 피값을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