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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유해발굴을 통하여 드러난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
(평양 11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29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유해발굴을 통하여 드러난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범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싸할린은 조선동해와 오호쯔크해사이에 있는 로씨야의 섬이며 한개 주로 되여있다. 이 지역의 남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전까지 수십년동안 일제의 점령지역으로 되여있었다. 20세기초에 있은 로일전쟁후 일제가 그 땅을 가로타고앉았던것이다.

바로 이 싸할린에도 일제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원한이 슴배여있다.

얼마전 싸할린주에서는 일제강점시기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조선사람들의 유해 1,600여구가 발견되였다. 이번에 발견된 유해들이 싸할린에서 죽은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의 전부는 아니며 일부에 불과할뿐이다. 싸할린남부지역의 공동묘지들에 대한 조사가 계속되고있다. 앞으로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의 유해는 계속 나타나게 될것이다.

보호시설도 없는 탄광이나 광산의 페갱속에 묻혀버린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산판에서 넘어지는 통나무에 맞아 목숨을 잃고 락엽이나 잡관목속에 던져진 이들도 있을것이다. 짐승취급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다가 눈도 제대로 못 감고 죽은 사람들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반세기이상의 세월이 지나서야 해골이 되여 이 세상에 모습을 다시 드러낸 1,600여명의 조선인강제련행자들,

그들은 무엇을 원하였는가.조국과 민족을 향해, 자기들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호소하였는가.

일제에 의해 강제련행당한 조선청장년들은 840만여명이다. 그들중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싸할린으로 붙잡혀갔다.

살아돌아온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망통지서도 받지 못한 가족들도 많다.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은 너무도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었다. 죽음의 고역장에서 맞아죽고 얼어죽고 굶어죽었다. 인간의 존엄은커녕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가지지 못하였다. 말이나 소보다도 못한 노예였다.

일제강점시기 강제로동에 시달리는 조선사람들의 참혹한 모습을 목격한 한 일본인은 《조선사람들은 노예들이였다. 그에 비하면 죄인은 도리여 편안하였다. 밀차를 두명이 미는데 뒤에서는 몽둥이를 든 감독이 따라가며 뛰지 않으면 매질을 했다. 나는 말을 가지고있었는데 그 말도 그렇게까지 부리지 않았다.》라고 증언하였다.

이것이 바로 부정할수 없는 당시의 현실이였다. 나라를 빼앗긴탓에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은 일제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면서도 가슴에 사무친 원한을 풀수 없었다. 오늘은 그들의 원한을 알아주고 풀어줄 강하고 존엄있는 조국과 민족이 있다. 일제의 강제련행과 살륙만행에 치를 떨면서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라난 끌끌한 후손들이 있다.

우리는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의 유해들에서 일제에 대한 원한의 목소리를 듣고있다. 그 유해들을 통해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강제련행범죄의 력사를 다시한번 더듬어보고있다.

이번에 싸할린에서 발견된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의 유해를 통해서 알수 있는것처럼 일제는 저들이 침략하고 강점하는 지역마다 조선사람들을 끌고다녔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후 일제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나라들과 태평양일대의 수많은 섬들에까지 조선청장년들을 끌고다니였다. 일제가 있는 곳은 모두가 조선청장년들의 죽음의 고역장, 인간생지옥이였다.

《조선총독부》의 재무국장이였던 미즈다 나오히로는 당시 자국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륙해군요원으로서 조선인로무자를 보낸것은 대동아전쟁발발이래 상당히 많은 수에 달하였는데 그가운데서도 1941년 9월이후 해군의 요구에 따라 남방에서 긴급토목작업에 종사시키기 위하여 해군작업애국단으로 3만 2,248명을 알선해보낸것이 가장 많은것이였으며 륙군의 요구에 따라 조선내에는 물론 내지(일본렬도), 중국만저우 및 남양방면에 다수의 요원을 알선해보냈다.》(《태평양전쟁종말기 조선의 치정》 155~156페지)

이 보고서는 일제가 강제련행한 조선사람들을 저들이 강점한 모든 전선지역에 끌고다니면서 짐승과 같이 혹사하였다는 사실을 실증해주고있다.

아직 흑막속에 묻혀있기는 하지만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남방지대에 강제련행된 조선사람의 수를 외국의 한 도서는 100만~150만명으로 추정하고있다. 일제침략군은 중국대륙을 비롯하여 윁남, 캄보쟈, 타이, 먄마,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평양상의 여러 섬들과 일본군대가 강점한 도처의 전장, 주둔지, 항구 지어 전선기지의 분견소라고 하는 전투장에까지 강제련행된 조선인남녀청년들을 군대로무자로, 일본군위안부로 끌고다니다가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여기에 일제에 의해 감행된 살인만행의 일단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1942년 8월 일제강점군이 도사리고있던 과달카날섬에 미해병대가 상륙작전을 개시하자 오까무라소좌는 공군기지건설에 내몰았던 조선인로무자 2,000여명을 미군에 투항할 우려가 있다는 리유로 일부는 밀림속에 몰아넣어 굶어죽거나 병들어죽게 하였으며 나머지는 직접 제손으로 쏴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일본도서 《제국륙군의 최후》 14~16페지)

자료에 의하면 지옥의 섬이라고 널리 알려진 일본의 하지마탄광에서 일하였던 조선인사망자 121명중 63명은 사고로, 15명은 타박상과 내장파렬로 죽었다. 타박상과 내장파렬이 사망원인이라는것은 곧 타살이라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이렇게 일제에 의해 살해당한 조선사람들의 유해는 세계 곳곳에 묻혀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군수기업체들과 탄광 등에 끌려가 혹사당하다가 현지에서 사망한 조선인강제련행자 5,600여명에 대한 자료가 확인되였다.

이외에도 새롭게 발굴되고있는 자료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인강제련행과 일본군위안부범죄와 같은 과거죄악을 청산하려 하지 않고있다. 일본집권세력은 그 무슨 《자원적인것》이라느니, 《돈벌이를 위한것》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조선인강제련행자들과 일본군위안부들은 물론 우리 민족을 모독하고 우롱하는 망발을 서슴지 않고있다. 일본이 오그랑수를 쓰며 과거청산을 회피하려 하면 할수록 우리 군대와 인민의 반일감정은 더욱 높아질것이다.

일본은 과거청산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과거죄악을 묵여두는 일본의 앞날은 결코 밝지 못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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