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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인민대중의 념원이 짓밟히는 반동적인 사회》
(평양 11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30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 《인민대중의 념원이 짓밟히는 반동적인 사회》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생존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자본주의나라 근로자들의 항의시위가 련일 계속되고있다. 방대한 경찰무력이 동원되여 탄압소동을 벌리고있다. 이 과정에 중상자까지 발생하고있다.

경찰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있다. 항의시위참가자들은 자기들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싸울 의지를 표명하고있다. 항의시위대렬은 날을 따라 늘어나고있다. 바빠난 통치배들은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리고 항의시위참가자들을 마구 잡아들이고있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벌어지고있는 항의시위는 필연적현상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이다. 자본주의사회는 계급적대립과 사회적불평등을 가져오며 근로대중에 대한 소수 지배계급과 착취계급의 압박을 동반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를 극소수 자본가들의 무제한한 탐욕으로 전환시키고 사회의 적대적모순이 극도에 이르게 한다. 오늘 그것이 폭발하고있는것이다.

현실은 엄격한 심판관이다. 자본주의는 모순이 가득찬 사회이다. 자본주의옹호자들이 외워대는 《자유민주주의》, 《복지정책》, 《인민적자본주의》 등은 한갖 기만에 불과한것이다. 그들은 이런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자본주의의 《영원성》을 보여주려 하고있다.

자본주의변호론자들이 열심히 부르짖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보자.

그들이 표방하는 《민주주의》는 근로인민대중을 위한것이 아니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극소수 착취계급을 위한 가짜《민주주의》가 있을뿐이다.

참다운 민주주의는 근로인민대중의 의사를 집대성한 정치이다. 다시말하여 근로인민대중의 의사에 따라 정책을 세우고 그들의 리익을 구현하며 근로인민대중에게 참다운 자유와 권리, 행복한 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주는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소수 착취계급에게는 《민주주의》를 실시하지만 근로인민대중에게는 독재를 실시하고있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부르죠아의회제와 다당제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표방하고있지만 그 배후에서 정치를 좌우지하는 실제적인 조종자는 대독점자본가들이다.

자본주의나라 국회에서는 대독점체들의 대리인들이 정사를 좌우지하고있다. 자본주의나라 정객들은 대독점자본가들의 리익의 대변자들이며 사환군들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대독점자본가들의 리익에 배치되는 그 어떤 정책도 작성될수 없다. 미국의 력대 대통령들이 대독점체들의 리익의 충실한 대변자들이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실증해주고있다.

다당제도 허울에 불과한것이다. 자본주의의 표본이라고 하는 미국만 놓고보아도 대독점체들의 리익을 대변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엇바꾸어가며 량당정치를 실시하고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간판만 다를뿐 같고같은 부르죠아정당들이다.

자본주의나라에서 근로인민대중을 위한 정책이 실시될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본주의나라들은 형식적인 의회제나 다당제마저도 그것이 반동적인 통치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될 때에는 하루아침에 집어던지고 로골적인 파쑈통치를 실시한다.

제국주의어용나팔수들이 자본주의나라들을 《자유의 왕국》으로 자처하는것도 궤변이다. 자본가계급이 모든것을 지배하고 근로인민대중이 정치생활에서 제외되고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참다운 자유란 있을수 없다.

자본주의나라 통치배들은 저들의 독점적지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의 자유를 구속하고있다. 미국에서는 10여개의 정탐기관들이 국가기관들은 물론 병원, 식당들에까지 저들의 앞잡이를 박아넣고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탄압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돈있는 사람들만이 누릴수 있는 자유, 소수 착취계급을 위한 자유가 있을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바란다는것은 그야말로 시궁창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것과 같은 허황한짓이다.

자본주의사회는 겉으로는 부유하고 잘사는 사회인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놓고 자본주의변호론자들은 《인민적자본주의》를 운운하고있다. 《복지사회》라고 선전하고있는 미국에서 근로인민대중이 들고일어나 시위투쟁을 벌리고있는 현실은 《인민적자본주의》의 허황성을 립증해주고있다.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가 안고있는 악성종양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물질적부가 아무리 많이 생산되여도 물질생활에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있다. 자본가계급의 탐욕은 한계를 모르고 커가고있다. 그들은 더 많은 리윤을 짜내기 위해 근로인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략탈을 강화하고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유한자들은 더욱 부유해지고있는것이 자본주의사회의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인구의 1%밖에 안되는 특권층이 사회적재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있다. 특권층, 부유층의 재부는 계속 불어나고있다.

얼마전 일본의 《도꾜신붕》은 《미국에서 최부유층의 소득 대폭 증가, 격차확대 부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에서 지난 28년동안에 1%밖에 안되는 부유층의 재산이 약 275% 늘어났다고 밝히였다.

반면에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계속 줄어들고있다. 그들은 항시적으로 일자리걱정, 치료걱정, 집걱정, 먹고 살 걱정, 자식들을 공부시킬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로동자가 온전한 집 한채를 마련하자면 수십년동안 먹지도 입지도 않고 번 돈을 다 밀어넣어야 한다.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들은 병이 나도 돈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있다.

부유한자들은 비인간적인 수요를 만들어내고 아무런 가치도 없고 보람도 없는 사치하고 부화방탕한 생활에 막대한 재부를 탕진하고있다.

자본가들은 가난한 사람들때문에 사회가 어지러워지고있는것으로 묘사하고있다. 언제인가 미국의 한 자본가가 그 무슨 요망서를 당국에 정식 제출한바 있다. 집이 없어 한지에서 떨며 방랑하는 숱한 거지들때문에 《복지사회》인 미국의 영상이 심히 훼손되고있다는것, 때문에 그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둬넣는것이 상책이라는것이 그 주요내용이였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변호론자들이 외워대는 《복지사회》의 진면모이다.

자본주의야말로 돈많은 부자들에게는 천당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썩고 병든 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사람들의 배척을 받는것은 당연하다.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나라들에서 항의시위참가자들이 자기들을 99%로 규정하고 한줌도 안되는 착취계급에게 사회적재부가 집중되는 현 상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하며 투쟁하고있는것은 그때문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살려는것은 자주적인간의 본성적요구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주적인 인간의 참된 삶이란 없다. 미국의 VOA방송이 전한데 의하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있는 항의시위참가자들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술을 가지고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고있는 중산층이라고 한다. 비록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는 발전될수 있어도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근로인민대중의 념원이 실현될수 없다는것은 명백하다.

압박이 있는 곳에서는 반항이 있고 반항이 있는 곳에서는 투쟁이 일어나는 법이다. 인류가 창조하는 물질적부는 력사와 함께 증대되지만 근로인민들은 착취와 압박, 무권리와 빈궁에 더욱 시달리고있다.

이것은 착취사회의 필연적결과이다. 자본주의의 물질적부가 늘어날수록 부익부, 빈익빈의 량극대립은 더욱 격화되고있으며 자본주의를 헤여나올수 없는 위기에 몰아넣고있다.

현시대는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으로 되는 자주성의 시대이다. 이것은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넘어가는것이 력사발전의 법칙이라는것을 말해준다.

력사는 자본주의를 매장하고 자주의 궤도를 따라 전진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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