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2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23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승리의 력사는 끝없이 흐른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해마다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류는 흰눈송이 내리는 12월을 한없는 격정과 기쁨속에 뜻깊게 맞이하였다.
그러나 어이 알았으랴. 축복의 꽃보라마냥 쉬임없이 내리던 하얀 눈송이가 애도의 눈보라가 되여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실줄이야.
지금으로부터 20년전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우리 인민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열화같은 흠모와 절대적인 신뢰의 뚜렷한 발현이였으며 진보적인류에게 있어서 경사중의 경사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는 장군중의 제일장군, 명장중의 제일명장이시였다.
인류력사의 갈피에는 어느 한 전투나 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장군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포성없는 전쟁에서 련전련승을 이룩하신 령장은 없었다.
인류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전진은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과의 치렬한 투쟁속에서 이루어진다.
위대한 선군령장을 모시여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강화발전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전에서 언제나 승리만을 기록해왔다.
지난 20세기 말엽을 더듬어보자. 당시 랭전이 종식된 후 자주적발전을 지향하는 진보적인류는 엄중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강권과 전횡이 날로 로골화되고 침략과 전쟁책동이 공공연히 벌어졌다. 특히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악랄한 책동은 극도에 달하였다.
세계는 조선을 지켜보았다.
―인구도 령토도 작은 조선이 어떻게 나올것인가.
조선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김정일최고사령관께서 포수의 모자를 쓰시고 최전연을 시찰하시였다. 북조선에 대한 서방련합의 고립, 압박책동이 최절정에 이른 이때 적과의 거리가 1,200m에 불과한 최전연에 신출귀몰하는 김정일장군이 뜻밖에 나타나신것이다. 장군의 사격술은 너무도 명성이 높아 그분께서 〈사냥터〉에 이르시자마자 온갖 맹수들이 꼬리를 사리였다.》
이것은 영국군추격기비행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으며 나토군사령부에서 일한적이 있는 오랜 군사전문가인 로버트가 쓴 글이다.
총을 쏘아 이기는 장군보다 총을 쏘지 않고 이기는 장군이 진짜장군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장군님이시야말로 백두의 배짱과 담력, 탁월한 령군술로 천만대적도 무릎꿇게 한 천출명장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제국주의세력의 횡포한 핵사찰소동, 반공화국책동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선포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라는 통장훈을 부르시였다. 그것은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킨 대결단이였다.
지난 1990년대 조선반도에 핵위기사태가 빚어졌을 때에도 오만무례한 제국주의세력은 때를 만난듯 반공화국소동에 열을 올리였다.
―과연 이 사태가 어떻게 막을 내릴것인가.
현실은 서방언론들이 제나름대로 떠들어대던 예상과는 반대로 미국의 경수로제공담보로 막을 내린것이였다.
이것은 위대한 선군령장을 모신 조선의 승리였다.
유럽의 한 기자는 김정일최고령도자에 의한 조선의 정치, 군사, 외교적면에서의 승리는 1960년대 미국의 《푸에블로》호사건에 이은 제2회전의 승리이다라고 피력하였다.
그의 이 말을 한 외국인은 나는 그 승리가 3회전의 승리이며 미국과의 1회전은 이미 60년대가 아니라 50년대에 치르어졌다고 생각한다, 조선은 11회전, 2회전에서도 이겼지만 오늘의 3회전에서도 승리하였다고 정정하였다.
위대한 백두령장을 모시여 우리는 언제나 백승만을 이룩하였다.
우리 장군님이시야말로 동서고금 그 어느 정치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독특한 선군정치로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수호하시고 진보적인류의 운명, 세계자주화위업의 전진과 승리를 담보하신 세계정치원로, 희세의 정치거장이시였다.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은 승리를 확신하고있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선군정치를 높이 받들고 우리 군대와 인민은 앞으로도 경애하는 장군님 그대로이신 존경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언제나 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전에서 백승만을 떨칠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