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민족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유산가운데는 정통무도인 택견도 있다.
택견은 평양에서 발생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주로 맹수들과의 싸움과 종족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리용해오던 무술은 평양을 수도로 한 단군조선건립으로 하여 조직화되고 체계화되였다.
고조선의 무술은 고구려에 의해 계승되여 보다 높은 발전을 이룩하게 되였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봄이면 전국의 무사들이 모여 사냥경기를 벌리였다.
이 경기는 말타기와 활쏘기, 창쓰기, 칼쓰기가 포함되여있고 때에 따라 주먹질, 메치기 등 권법도 쓰게 되여있는 종합적무술겨루기였다.
고구려의 무술은 조선의 중세 전기간 그 전통이 면면히 계승되여 리조시기 중엽부터는 조선권법으로 불리워오면서 점차 전국에 퍼지게 되였다.
그후 발과 다리를 위주로 한 택견으로 분화발전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택견은 《평양날파람》으로 불리우며 세상의 주목을 끌어왔다.
《평양날파람》이란 말은 무술을 숭상한 고구려사람들의 후예들이 많았던 평양지방에서 날파람있는 젊은이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조상전래의 권법과 그에 기초하여 발전된 택견을 널리 활용한데서 유래되였다.
이것은 조선의 정통무도의 하나인 택견의 발상지, 고향이 다름아닌 평양이라는것을 보여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