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1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일제의 조선강점을 전후한 시기 줄기차게 벌어진 반일의병투쟁가운데는 강계일대에서 용감히 싸운 의병들의 투쟁도 있는데 차천리가 바로 그가운데 한사람이다.
1907년 여름 일제에 의해 강계진위대 분견대가 강제해산되자 그는 이 일대의 포수들과 애국적인민들을 묶어세워 반일의병대를 조직하고 투쟁에 떨쳐나섰다.
그는 강계를 중심으로 하여 험한 산발을 넘나들면서 일제침략자들을 족치는 한편 적들이 꾸려놓은 침략기관들을 파괴소각하였다.
1910년 가을 반일투쟁을 계속할 목적으로 의병들을 이끌고 중국 동북지방으로 가서 독립군에 참가하여 무장활동을 계속 벌리였다.
주체8(1919)년 3.1인민봉기이후에는 독립군단체인 서로군정서의 별동대(의용군)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그후 참의부에 편입되여 중앙경호대 대장으로 있었다.
말년에 푸쑹(무송)현에서 살던 그는 주체16(1927)년 겨울방학때 연예선전대를 이끄시고 이곳에 오시였던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게 되였다.
후날 김일성주석께서는 강계의병대장으로서 유명한 차천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하루에 천리씩 걷는다고 해서 차천리라고 불리웠다고 하시면서 인민들을 묶어세워 의병을 조직해가지고 일제놈들과 싸웠다고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평범한 포수였던 차천리는 이렇듯 위인의 기억속에 이름난 반일의병대장으로, 애국지사로 후세에 전해지게 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