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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실천 아메리카동부위원장의 조의방문기
(평양 1월 21일발 조선중앙통신)남조선 《자주민보》(인터네트)는 1월 20일 《땅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평양 그 뜨거운 눈물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유태영 6.15공동선언실천 아메리카동부지역위원장의 다음과 같은 조의방문기를 실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초강도현지지도의 나날에 겹쌓인 과로로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에 달리는 야전렬차안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서거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5일에 함경남도현지지도를 하시고 돌아오자마자 동해바다가눈보라에 젖은 옷이 아직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북변의 어느 한 곳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바로 며칠후인 24일은 북에서 《항일의 녀성영웅》으로 받드는 김정숙어머니 탄생일이였다. 뿐만아니라 김정일위원장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지 20돐이 되는 기념일이였다. 하여 김정은대장은 이를 축하하는 예술공연도 준비하는 등 성대하게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단의 준비를 하고있었다고 한다.

담당의사들은 김정일위원장에게 간곡히 말했다.

《지금 장군님의 몸상태를 보면 피로가 겹쌓였고 건강이 좋지 못하기때문에 며칠동안이라도 쉬셔야 합니다.》

하지만 김정일위원장은 의사들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도 김정은대장과 인민들이 훌륭한 예술공연을 준비하고있는것을 알고있소. 그럴수록 나는 우리 인민들을 위해 한가지라도 뭐 더 일을 해놔야 되지 않겠는가. 시간 늦잡지 말고 현지지도를 갔다와서 공연을 보겠소.》

이렇게 또 현지지도를 위하여 먼길을 떠났던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평생 자기자신을 위해서는 《넥타이 한번 제대로 매지 못하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눈물겹게 떠나가시였다.》고 북녘동포들은 통곡하고있었다.

나와 리준무는 동행하여 지난 12월 24일에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29일 평양을 떠나올때까지 줄곧 나의 머리와 가슴에 가득차있는것은 《이 지구 인류력사상에 있어서 이런 나라는 전무후무하다.》는 생각뿐이였다.

뉴욕을 출발하기전부터 서울의 신문들은 《김정일의 사망에 의심이 있다.》는 기사를 퍼뜨리고있었다.

나는 지난 20년동안 수없이 많이 북을 방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에서 말하는 《동무와 동지》라는 그들의 단어에 대한 참된 동감을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국상관련행사에 참석한 경험을 통하여 그들이 말하는 《동무와 동지》의 뜻에는 민족의식이 우선 강하고도 분명하게 포함되여있고 또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당과 정부와 국가의 일군과 대중들이 모두다 혼연일체가 되여있다는 의미를 담고있음을 직접 느낄수 있었다.

나는 1994년에 김일성주석서거당시에도 범민련 아메리카지역위원회 양은식위원장과 동행하여 이른바 《조문파동》을 경험한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매우 피상적으로 행사에만 참석하고 돌아온것 같이 느껴진다.

왜 그런가?

그때는 김일성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전혀 준비가 되여있지 않은 상태였고 또 처음 겪는 일이였기에 극히 불안정한 상태의 초상집의 모습이였다. 나아가 김일성주석이 서거하자마자 자연재해까지 련이어지면서 북부조국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수년간 겪어야 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국가적위기속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위기속에서 김정일장군이 등장하여 민중의 령도자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여 군민이 혼연일체가 되여 외세의 위협에 견결히 대항하면서 핵보유강성대국을 창건한 눈물겨운 력사적기적을 창조해냈다.

이러한 력사적 생생한 경험때문에 북녘동포들은 김정일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대하여 그렇게도 슬프게 통곡을 하고있는것이였다.

서방에서 그렇게 《허구와 거짓》이라고 선전해왔던 북동포들의 혼연일체가 틀림없는 사실임을 우리는 이번 북녘의 대국상관련행사참가를 통해 직접 보고 돌아왔다.

계획한 영결식을 앞두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있었다. 이것을 평양고려호텔의 창문을 통하여 내다보면서 나는 《하늘도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평양시민들에게는 눈이 내리고 령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날씨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28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령구차가 지나가게 될 길에 눈이 쌓이는것을 념려한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평양시민들은 남녀로소가 혼연일체가 되여 이불과 모포를 가지고 나와 아스팔트길을 덮기 시작했다. 이불과 모포뿐아니라 목도리와 겉옷까지 펴서 눈이 내리는 길을 덮고있었다.

김정일위원장의 령구차가 지나갈 길우엔 헤아릴수 없이 많은 수십만의 평양시민들과 각지의 군중들이 삽과 호미,심지어 비자루와 막대기를 들고 나와 아스팔트길우의 눈을 치고 얼음을 까고있었다.

나는 어느 한 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왜 눈을 치고 얼음을 까고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녀인의 대답은 단호했다. 《친애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편안히 가시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녀의 눈엔 눈물이 글썽하였고 목메인 음성이였다. 그런 그 녀를 보며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북은 김일성시대로부터 시작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시대까지 두 령도자가 일관된 조국사랑과 인민사랑의 리념을 실천해왔다고 주장해왔다. 어떻든 이번 대국상을 통해 《당,군,민 3위일체》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것이다.

나는 이번 조문방문을 통하여 《잔치집엔 못가더라도 초상집은 꼭 가야 한다.》즉 《애사는 꼭 가봐야 한다.》고 전해내려오는 우리 속담의 참뜻을 리해하게 됐다.

28일 영결식이 금수산기념궁전광장에서 거행됐는데 약 10만의 군인들과 약 4만의 군중들이 3시간정도를 끄떡없이 서서 영결식에 참가하고있는것을 보고 그 진행과정과 군중들의 참가질서에 대하여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것을 나는 영결식이 끝난 후에 목격하였다.

집에 돌아가려면 그 많은 군중들이 저마다 자기가 타고 온 차를 찾아가 타야 한다.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둠이 앞을 가리우고있었다.

내가 살고있는 뉴욕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교통경찰이 최소한 50~60명정도는 배치되여 교통정리를 해야만 할 상황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복잡한 수만명이 저들의 차를 기다리고 또 타고있는데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이나 군인이나 민간인봉사자는 한 사람도 없는것이였다.

그 많은 차들중에는 외교사절과 외국인의 차도 많았는데 그들에게도 주차와 통행에 아무 특권이 없는듯 했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것은 빵빵 소리를 내는 운전수들이 단 한 사람도 없이 차들이 서서히 움직이고있는 모습이였다. 나는 그때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고 또다시 생각하면서 같은 아메리카지역 동포의 차를 타고 고려호텔로 왔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영결하는 그 슬픈 날에 마음과 눈에 피눈물이 바다를 이루고있는 그 현장에서 서방세계 등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 그 험상스러운 교통순경이나 헌병들의 모습같은것은 전혀 상상조차도 할수 없는것이였다.

나는 이번 북녘의 갑작스러운 대국상에 재미동포의 한사람으로 참가하여 말로만 듣고 알고있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에서 《쪽잠,줴기밥을 드셨다.》라는 사실과 또 《핵무기보다 강한 일심단결》 등의 구호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하고 충분히 리해하고 돌아왔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남긴 업적은 무엇인가?

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뜻밖의 서거가 발표된 19일부터 평양에서 진행되고있는 추모행사들,특히 《대가족의 아버지》를 잃은 애절한 통곡의 모습,28일의 김정일국방위원장과의 장엄한 영결식과 29일의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한 중앙추모대회가 전민족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것을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혁명의 유산》을 명료하게 나의 마음속에 가득 채울수 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남긴 《혁명의 유산》에 대하여 나의 느낀바는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첫째,김정일국방위원장의 한생은 백두산3대장군으로 출생한 그의 삶의 시작으로부터 한평생을 《주체혁명의 완성》을 향하여 시종일관해왔다는 점이다.

그가 남긴 《주체혁명의 완성》은 조국통일의 완성과 직결되여있다.

오늘 세계는 그 어느곳,그 어느 제3세계나라들을 막론하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이룩한 《주체혁명의 길》을 지침으로 삼고 따르고있다.그러므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남긴 유산은 우리 민족의 유산일뿐아니라 세계적인,특히 제3세계에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고 생각하였다.

둘째,김정일국방위원장이 남긴 최대의 유산은 민족의 정신력을 집대성하여 이룩한 《핵무기보유와 위성의 발사》이다.

《고난의 행군》을 선두에서 헤쳐나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명칭만으로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명실공히 국방위원장이 되여 한많은 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채 변혁시키는 엄청난 업적을 민족앞에 유산으로 남긴것이다.

강대국들은 약소민족들을 비참하게 희생시키면서 핵시험을 수백번 진행한 후에야 비로소 핵보유국들이 됐다.그 얼마나 많은 약소국 민중들이 영국과 미국의 핵시험현장에서 비참하게 죽었으며 방사능의 피해를 당했으면서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어갔던가!

하지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총명한 두뇌로 그 누구를 희생시키거나 희생양으로 삼지 않고 또 소란을 부리지도 않고 스스로 《새 세기의 산업혁명》을 일으켜 단숨에 세계앞에 핵보유국으로 등장했다.이보다 더 큰 우리 민족에게 남긴 력사적유산이 또다시 있겠는가?

셋째,김정일국방위원장의 업적은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민족통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혁명의 위업을 계승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력사에 남을 유산을 남긴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적통치권의 계승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완벽하게 해결하였다. 당과 군대와 인민의 최고지도자로 김정은대장을 잘 가르치고 키워 내세운 력사적결단은 세계가 놀라고 주목할만 한 유산이 아닐수 없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세력이 세계 곳곳에서 약소국들을 집어삼키려고 발악을 하고있는 오늘의 국제적정세하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의 튼튼한 길을 유산으로 닦아놓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북주민들과 함께 닦아놓은 길을 파탄시키려고 미국이 《개혁개방》과 《핵페기》라는 침략적수단방법의 공세를 총집중하고있음을 절실히 파악했다.

그래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세계가 깜짝 놀라는 철통같은 통치체제를 이미 닦아놓았고 제국주의침략의 야욕을 원천봉쇄하는 《핵억제력》을 구축하는 등 만단의 준비를 해놓았던것이다.

북녘동포들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서거를 애도하며 땅을 치면서 통곡하면서도 절대로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는 리유는 바로 김정은후계자가 튼튼히 존재하여 우리 민족을 집어삼키려는 제국주의세력을 물리치고 강성대국을 건설할것이며 민족의 평화통일과업을 능히 이루어낼것임을 굳게 믿고있기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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