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축구는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운동종목의 하나이다.
1843년 처음으로 경기규칙을 명문화하고 축구구락부를 조직한 영국을 흔히 근대축구의 발상지로 꼽고있다.
하지만 B.C. 206년경에 중국에서는 축구와 비슷한 경기가 있었다.
놀라운것은 중국의 옛 문헌인 《구당서》에 고구려사람들이 공을 잘 찬다는 대목이 있고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도 신라시기의 화랑들이 축구시합을 곧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있는것이다.
《축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세나라시기의 이 민속놀이는 넓은 공지에 장대를 량쪽에 세워놓고 그우에 그물을 친 후 7~8명씩 짝을 지어 가죽주머니로 만든 공을 발로 차서 그물우로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였다.
그런즉 조선의 축국은 현대의 축구와 럭비, 롱구 등이 적당히 절충된 전통적민속놀이였다고 볼수 있다.
1897년 조선에서 있었던 최초의 현대축구시합에서도 이 민속놀이의 흔적이 나타났다.
그때 선수들은 갓을 벗고 망건차림에 배자를 입고 짚신을 신은채 경기장에 나왔는데 인원수는 제한이 없었고 두 팀의 인원이 같으면 되였다.
꼴문은 없었고 공이 문지기 머리우로 넘어가기만 하면 득점으로 인정하였다.
경기시간도 제한이 없어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선수들이 많아 경기를 더이상 할수없을때까지 진행되였다.
당시 《척구》라고 불리웠던 이 최초의 서양식축구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주로 외국어학교출신들과 궁내부의 어전통변인(통역관)들이였다.
서양교사들로부터 외국어와 함께 체육을 배운 이들은 그후 《대한척구구락부》를 만들어 현대축구를 국내에 보급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이처럼 조선은 오랜 축구전통을 가지고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