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김일성동지
(평양 3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평양의 풍치수려한 모란봉기슭에 거연히 솟아있는 개선문.
일제의 식민지기반을 끝장내고 조선의 해방을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에는 《1925》라는 글발이 금문자로 아로새겨져있다.
주체14(1925)년!
바로 이때 김일성동지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였다.
그 어리신 나이에 그이께서는 조선혁명의 닻을 올리시여 인민대중의 심장마다에 혁명투쟁의 진리를 새겨주시고 조선혁명의 앞길을 새롭게 개척해나가시였다.
그해 1월 조선의 해방을 위한 혁명투쟁을 전개하시던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일제경찰에 또다시 체포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시고 조선을 독립할 결심을 안고 단신으로 광복의 천리길에 결연히 나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혁명의 첫 걸음을 내디디시였다.
화디엔과 지린에서 공부하시던 나날 《공산당선언》,《자본론》,《국가와 혁명》,《임금로동과 자본》등 맑스-레닌주의고전들과 수많은 혁명적인 소설들을 탐독하시는 과정에 비로소 조선의 현실에 대해 랭철하게 분석판단하게 되시였다.
마침내 조선혁명을 외세에 의존할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한다는 귀중한 진리를 터득하게 되시였다. 1926년 10월 1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에서 조선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다운 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략칭《ㅌ.ㄷ》)의 결성으로 조선혁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시였다.
그후 새날소년동맹,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그리고 농민동맹, 반일로동조합을 결성하시고 반일부녀회도 조직하도록 이끄시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들을 굳게 단결시키시였다.
1928년 그이께서 조직지도하신 지린위원중학교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지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 일본상품배척투쟁은 사상적으로 각성되고 굳게 뭉친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조선혁명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인 카룬회의!
김일성동지께서는 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하신 이 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제목의 보고를 하시였다.
《조선혁명의 진로》, 그것은 주체사상의 창시를 만방에 장엄하게 알리는 시대의 선언이였으며 조선혁명의 전략전술을 집대성한 주체로선의 불멸의 대강이였다.
그이께서는 보고에서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고 그들이 조직동원되여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수 있으며 조선혁명은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주체사상의 혁명원리와 원칙을 밝히시였다.
뿐만아니라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혁명의 동력을 로동자, 농민, 지식인, 량심적인 민족자본가와 종교인 등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으로 규정하시였다. 현 시대의 가장 과학적이며 현실적인 선군사상의 창시로 되는 독창적인 무장투쟁로선을 비롯하여 고전에서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던 조선식의 로선과 방침들을 제시하시였다.
참으로 조선의 현실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주체적인 로선과 방침들이 있어1930년 7월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와 첫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이 결성될수 있었고 조선혁명은 앙양기를 맞이할수 있었던것이다.
인민들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태양이 되여주실것을 절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이를 《김성주》라는 본명대신에 《김일성》동지라는 존함으로 고쳐부르면서 민족의 통일단결의 유일한 중심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였다.
김일성동지, 정녕 동서고금의 그 어느 위인도 받아보지 못했던 이 위대한 존함은 주체의 빛발로 민족재생의 서광을 안아오시는 그이에 대한 인민의 절대적인 신뢰와 크나큰 기대,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의 표시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