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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 탄생 100돐 특집《김일성조선》(3)
상비적혁명무력-조선인민혁명군 창건

(평양 3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조선에서의 민족해방투쟁은 상비적혁명무력에 의한 유격전을 기본형식으로 하여 조직전개되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라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찾으신 조국해방의 유일한 처방이였다.

조선을 강도적인 방법으로 타고앉은 일제는 그때 당시 한창 팽창의 일로를 걷고있는 신흥군사강국이였으며 현대적무기로 발톱까지 무장한 침략자였다.

이런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한다는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그들의 군사력을 타승하고 명치유신(1868년)후 일본이 60여년동안 이룩해놓은 모든 인적, 물적, 재정적력량과의 소모전에서 승리자가 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반면에 1930년대 조선의 국력은 너무도 약했으며 군사력에 대하여서는 론할 여지조차 없었다.

현대적산업에 토대한 경제의 장성과 신식군사력은 고사하고 황궁을 지킬 군대마저 온전한것이 없는것이 20세기 초엽 조선의 현실이였다.

그러다보니 일제에게 나라를 통채로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전으로 일본제국주의와의 전면전쟁을 선포하시였다.

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 관한 명백한 리론이 없던 당시의 력사적환경에서 이 로선을 제시한다는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그때까지 무장투쟁의 형식으로는 정규전과 유격전의 두가지가 알려져있었는데 기본은 정규전으로, 유격전은 일시적이며 보조적인 수단으로 인정되고있었다.

이것은 조선의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는 리론과 경험이였다.

국가적후방과 정규군은 물론 민족군대의 전신으로 될만한 그루터기조차 없었던 조선이 정규전으로 일제와 맞선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이러한 실태로부터 조선인민이 벌리게 될 항일무장투쟁은 상비적인 혁명무력에 의한 유격전이 기본전투형식으로 되여야 한다는 과학적이며 창조적인 결단을 내리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주체20(1931)년 겨울밍위에거우회의에서 정규전이 아니라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벌려야 일제침략군과 싸워 승리할수 있다는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신것은 식민지민족해방투쟁사에 특기할 일대 사변이였다.

이처럼 상비적인 혁명무력에 의한 변화무쌍한 유격전을 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내세우신 그이께서는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당시 반일인민유격대)을 창건하시여 항일대전의 총성을 더 높이 울리시고 유격전쟁사를 승리로 수놓아가시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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