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정신적, 전략전술적우월성에 기초한 유격전쟁
(평양 3월 19일발 조선중앙통신)《창해일속》, 이 말은 바다속의 좁쌀알만 한 존재라는 뜻으로서 당시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을 얕보고 한 말이였다.
혁명군이 창건될 때 그 수는 불과 10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무장대오가 현대적무기로 장비한 일제의 백만대군에 파렬구를 내며 나날이 승승장구하게 된 근본비결은 사상정신적우월성에 있었다.
주체25(1936)년 여름 반일부대의 한 지휘관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찾아왔다.
그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전투들에서 거둔 성과를 몹시 부러워하면서 그이께 일본사람들은 호전성으로 싸움을 하는데 김사령은 도대체 어떤 전법으로 싸우기에 련전련승하는가고 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군인들의 정신상태라고 말씀해주시였다.
대원들의 사상정신상태가 항일대전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고 확신하신 그이께서는 무장투쟁초기부터 그들을 사상과 신념의 강자, 담대한 배짱가, 락천가들로 키우는 사업을 중시하시였다.
오늘도 조선인민은 그이의 친솔밑에 혁명군 주력부대가 193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난국에 처한 조선혁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난파이쯔로부터 압록강연안 국경일대에로 진출한 력사적인 행군을 잊지 않고있다.
이 시기 일제는 주되는 목표를 혁명군사령부에 두고 관동군 주력과 위만군 정예부대를 비롯한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겹겹한 포위망을 형성하고 지상부대와 항공대의 협동작전으로 사면팔방에서 달려들었다.
한편 혁명군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하여 간첩집단을 동원하고 삐라를 뿌리는 등 회유기만책동을 집요하게 감행하였다.
주력부대는 대강설로 키를 넘는 눈을 헤치고 설한풍을 이겨내면서 매일같이 달려드는 수많은 적들과 힘겨운 전투를 해야 하였다.
게다가 식량난까지 겹쳐 사정은 더욱 어려웠으며 소금마저 떨어져 온몸이 붓고 손과 발은 얼어터졌다.
참으로 고난의 행군이였다.
그러나 대원들은 조금도 락심하지 않았으며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투지와 불굴의 혁명정신으로 만난을 극복하였다.
피어린 항일의 나날 대원들은 혁명의 수뇌부인 사령부의 안전을 위해 날아오는 적탄도 한몸으로 막아나섰다.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개척하고 세계혁명전쟁사에서 첫 육탄영웅으로 기록된 사람도 그들속에 있었다.
적들의 갖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혀를 잘라 혁명적지조를 지킨 렬사도 두눈을 빼앗기고도 사형장에서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웨친 불굴의 녀성혁명가도 바로 조선의 항일빨찌산들속에서 나왔다.
조선에서 오늘 민족번영의 만년재보로 계승되고있는 정신적유산, 항일의 혁명전통은 이렇게 창조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비할바없는 사상정신적우월성과 함께 주체적인 전법으로 유격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였다.
그이께서 항일무장투쟁승리의 중요한 담보로 내세우신것은 정규전법과 구별되는 변화무쌍한 유격전법의 활용이였다.
이를 위하여 《유격대동작》, 《유격대상식》을 비롯하여 활동원칙과 방법들을 내놓으시고 전투들마다에서 잘 적용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싸움으로 날이 밝고 저무는 간고한 그 나날 유인매복, 동성서격, 일행천리, 망원전술 등 령활하고 새로운것이 수많이 창조적용되였다.
적들도 혁명군의 전법을 놓고 공포에 질려 일본군의 병서나 용병술에서는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고 자인하였다.
항일무장투쟁은 이렇듯 조선인민혁명군을 정신력과 전법에 있어서 우월한 불패의 강군으로 준비시키고 유격전으로 강대한 침략군의 정규전을 깨뜨린 위대한 영웅서사시로 수놓아져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