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월 22일발 조선중앙통신)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반제자주의 리념밑에 민족을 단합시켜 반일민족해방운동을 줄기차게 벌려나가시기 위하여 주체6(1917)년 3월 23일 조선국민회를 무으시였다.
당시 조선의 반일운동은 본질적약점을 가지고있었다.
민족주의자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운다고 하였지만 옳바른 투쟁방도를 찾지 못하고 사대주의사상에 물젖어있었으며 심한 분산성과 자연발생성을 극복하지 못하고있었다.
반일단체들은 대중속에 뿌리박지 못하고 몇몇 사람들을 망라한 비밀결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것마저 서로 련계가 없이 제가끔 흩어져 활동하였다.
현실은 인민대중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그들에게 투쟁방향과 방도를 정확히 밝혀주며 반일운동을 통일적으로, 조직적으로 지도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민족해방위업을 자체의 힘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혁명조직결성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봉화리를 활동거점으로 정하시고 여러 지역에 나가 인민들의 동향과 독립운동실태를 깊이 료해하시였다.
동지들을 만나 조직결성의 필요성을 강조하시고 준비사업을 다그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으며 당면하게 핵심들을 장악하고 키우도록 하시였다.
빈틈없는 준비를 갖추신 그이께서는 평양 학당골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다.
이것은 일제의 무단통치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 광범한 인민대중속에 뿌리를 박은 가장 크고 혁명적인 반일지하조직이였다.
조선국민회가 결성됨으로써 반일력량의 통일을 이룩할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민족해방운동은 힘차게 전진하게 되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