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이 주인된 자주독립국가건설
(평양 3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인민에게 주체의 자주독립국가건설대강을 제시하시여 그 발전의 넓은 길을 열어주신 민족의 어버이이시다.
나라가 해방되였지만 조선민족앞에는 일제식민지통치를 뒤엎는것 못지 않게 어려운 력사적이며 운명적인 과제가 나서고있었다.
해방된 이 나라, 이 민족은 어느 길로 가야 하겠는가.
이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주신분이 바로 김일성동지이시였다.
나라가 해방된지 불과 5일만인 주체34(1945)년 8월 20일 고전적로작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와 그리고 《진보적민주주의에 대하여》를 발표하시여 새 조선의 건국로선을 천명하시였다.
오늘도 개선문광장에 세워진 대형기념벽화를 바라보느라면 그해 10월 14일 수령님께서 평양시환영군중대회에 참석하시여 력사적인 개선연설을 하시는 불멸의 화폭이 다시금 되새겨지고있다.
환호하는 수십만 군중들에게 새 민주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전체 인민이 힘을 합쳐야 하며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호소하신 김일성동지.
그이의 호소는 그대로 단결의 기치밑에 진정한 인민의 새 나라를 건설해나가자는 력사적인 호소였으며 오늘도 변함없이 강성부흥을 위한 조선의 대진군을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인민이 주인된 민주의 새 나라를 일떠세우시기 위해 선차적관심을 돌리신것은 혁명적당을 창건하는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을 각 지방에 파견하시면서 조선혁명을 중심에 놓고 단결을 지향하며 여러 파들이 조직한 당들을 시급히 정리하고 조직적으로 결속된 하나의 통일적당으로 만들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당창건준비를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진행하신데 기초하여 10월 1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창립대회를 소집하시였다.
대회에서는 당중앙지도기관으로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결성되고 조선로동당의 창건이 온 세상에 엄숙히 선포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주적인 정권을 세우시여 조선민족을 세계정치무대에 당당히 내세워주시였다.
각이한 주의주장이 란무하고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첨예한 때 인민들이 자기 손으로 지방주권기관들을 세우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해방된지 2~3개월안에 북반부의 모든 지역에서 도, 시, 군, 면, 리인민위원회들이 조직되였으며 1946년 2월에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게 되였다.
민족자주적인 인민주권아래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이 성과적으로 수행됨에 따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강화발전되였다.
1948년에 이르러 전 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우는것은 매우 절실한 문제로 나섰다.
수령님께서는 1948년 신년사와 《북조선로동당 제2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에서 지체없이 미제의 단독《정부》조작음모를 저지파탄시키며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세울데 대하여 천명하시였다.
이와 함께 헌법과 국기와 국장의 제정 등 공화국창건준비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한 토대우에서 1948년 8월 북남총선거를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그해 9월 9일 김일성동지를 국가수반, 내각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가 조직됨으로써 조선인민은 자기의 자주권을 확고히 틀어쥔 민족으로 되였다.
나라의 당당한 주인으로서의 조선인민의 지위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총대를 강화해주신것으로 하여 더욱 확고히 담보되게 되였다.
그이의 크나큰 심혈속에 1946년 2월 평양학원이 창립되고 그해 6월 수상보안대가 창설된데 이어 륙해공군의 모체부대들과 함께 각 기술병종부대들을 조직할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였으며 자체의 병기공업이 창설되여 여러가지 전투기술기재들도 척척 만들어내게 되였다.
1948년 2월 조선인민혁명군은 우리 나라에서의 첫 정규적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강화발전되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은 강력한 혁명군대에 의거한 자주적발전의 길에 더욱 확고히 들어설수 있게 되였다.(끝)